물총새 사랑법 / 배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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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034회 작성일 17-07-20 09:21본문
물총새 사랑법
배찬희
1
물총새의 암컷으로 살고 싶었다.
그대, 고달픈 몸으로 지친 날개 퍼덕이며
수만 리 바다를 건널 때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습관으로
오직, 그대만의 암컷이 되고 싶었다.
2
아침이면 향내 나는 비누로 머릴 감고
그 향기로 그대의 싱그러운 새벽이 되고 싶었다.
보라!
나는 이만큼 귀해졌다.
미처 그대 곁으로 다 보내지 못한
수숩은 내 짝사랑까지도
그 향기를 입으면
당당하게 자라나 그대 곁으로 날아간다.
3
사랑일까?
아침이면 베게 높이로 쌓이는 그리움 때문에
손 뻗어 그대, 더듬지만
함께 누워도 늘 그리운 나는
사랑의 불치병 환자
그래도 사랑일까.......?
아이의 웃음소리가, 그대의 안락한 오수午睡를 깨우고
그대 꿈속에서 스친 여인까지도 눈 뒤집히게 미워지는 건
4
익숙한 커피향으로 집안을 가득 채우고
퍼내도, 퍼내어도 바닥 드러나지 않는
나의 질긴 노예근성
그대가 즐겨 마시는 황홀한 액체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잠 깨어나
항상 문 밖으로 서성이던 내 사랑도
오늘은 짱짱한 안주인 되어
그대, 하루쯤 수컷을 내려놓고 싶을 때
사뿐히 그대 업고서 푸른 하늘을 마음껏 홰치고 싶었다.
그래도 미처 전하지 못한 내 사랑 남아 있다면
발뒤꿈치 살짝 들고
그대의 마음 한 켠으로 슬쩍 들어가 아우성치자.
-나는 그대의 물총새!
- 배찬희 시집 『물총새 사랑법』(오감도, 2014) 중에서
198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산문집『바로 나였음을』
시집『물총새 사랑법』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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