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변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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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694회 작성일 18-04-13 09:13본문
표변(豹變)
이화영
허물을 벗지 않는 사물은 파멸한다
고삐를 늦추는 일식의 밤
정월 냉기 속 짐승의 몸에 촘촘하게 매화 피었다
꽃이 되어가는 표피가 총구멍처럼 뜨겁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부시게 피어나는 무늬들
나비를 쫓는 근육의 움직임은 순해서 낯간지럽고
영양을 쫓는 근육의 움직임은 고서를 넘기는 노교수의
손처럼 날렵하고 부드럽다
태어나 죽는 날까지 입을 한 벌의 슈트
심장을 향한 한 발의 탄알 같아
첫눈에 반해 세속적인 이름으로 곁에 있고 싶은
붉은 야자나무에 달이 걸렸다
몸이 몸을 위로하는 일은 슬프다
꽃들이 색으로 이야기할 때 소리 하나 없는 것처럼
목을 따는 순간 공기조차 잠시 숨을 멈추는 것처럼
리듬을 모르면서 리듬을 탄다
허물을 벗는 족속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외설적 무늬 아래 다족류 벌레가 천천히 기어가고 있다
—계간《포지션》2018년 봄호
2009년 《정신과 표현》신인상 등단
시집 『침향』『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악보』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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