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모습이 있다 / 이성복 > 오늘의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오늘의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舊. 테마별 시모음  ☞ 舊. 좋은시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문득 그런 모습이 있다 / 이성복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16회 작성일 18-09-18 09:52

본문

문득 그런 모습이 있다

 

     이성복 



문득 그런 모습이 있다

창밖을 바라보는 개의 뒷모습

축 처진 귓바퀴에

굽은 등뼈가 산허리를 닮은 개

두 겹의 배가 뒤에서도 보이고

펑퍼짐한 엉덩이가 무거운 개


개은 붉은 의자에 올라앉아

창밖을 내다본다

창밖엔 흰 구름이 브래지어 끈처럼

걸쳐 있고, 하늘은 푸르다

개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지금 개가 돌아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곳이

당신 방이라는 것을 아는가

대체 개의 머리는 바라보는 일에 무력해서

저렇게 비스듬히 세워진 몸뚱어리가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다


개의 위와 식도와 창자가

고무호스처럼 포개어진,

누르스름한 물컹한 다라이 같은 개의 뱃집이

창밖의 풍경을 빨고 삼키고 주물텅거리며

소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개는 거칠고 표독하거나

신경질적이지 않다

개의 볼룩한 배와 축 처진 귀가

그렇게 일러준다

하지만 곧추세운 개의 허리는

개의 의지가 우둔하고

완강하고 뻔뻔하게 그의 삶을 버티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장이라도 당신은 다가가

쓰다듬어주고

반들반들한 털 속으로 손을 넣어

긁어줄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그럴 생각이 없다


당신의 몸집보다 두 배는 굵은 개가

당신이 앉는 붉은 의자에 죽치고 있을 때

당신은 개를 불러 내려오게 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당신은 그럴 생각이 없다

퍼질러 앉아 휴식을 취하는

개에 대한 예의에서가 아니다


그것은 개가,

당신 앞에 웅크리고 있는 개가

당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오후 구름이 브래지어 끈처럼

내걸린 창가에서, 이해할 수 없는 푸른 하늘 앞에

당신의 일부가 저렇게 버티고 있는 것을

당신이 눈치챘기 때문이다


당신의 일부가 불가사의한 풍경 앞에,

난해한 오후의 햇빛 앞에 바보같이, 멍청하게

일어날 줄 모르고,

도대체 일어서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메리, 메리 혹은 쫑, 쫑 하고

부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당신은 개를 부르지 못한다

볼펜이나 담뱃값을 집어던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것은 개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부르는 것이므로

당신이 당신 자신을 부르려면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 있어야 하므로


당신은 의자를 잡아 흔들거나

발길질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맥박이 빨리 뛰고 가슴이 두근거리는데도

당신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두 겹의 뱃살과 축 늘어진 귓바퀴로

우두커니 창밖을 내다보는 개가 당신 자신이므로


지금 브래지어 끈처럼 내걸린

구름이 군데군데 잘려나가기도 하는 오후의

하늘을 바라보는 개,

그 뒤에 당신이 있다

고요한 경악과 더듬거리는 혀와

명치끝까지 올라오는 아득함이 있다


이곳은 당신의 방이다

당신은 이곳에 잘못 들어왔다

이곳은 당신의 방이다

결단코 당신은 잘못 들어온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방문을 열다가

당신은 당신 자신을 보아버린 것이다


이성복 시집 , 입이 없는 것들(문학과지성사, 2003)에서

  


이성복1.jpg

 

1952년 경북 상주 출생

서울대 불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7문학과 지성등단

2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시집  , 입이 없는 것들남해금산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481건 1 페이지
오늘의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148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59 1 12-31
148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91 2 12-31
147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25 0 12-31
147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54 0 12-27
147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69 0 12-27
147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79 0 12-27
147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48 2 12-26
147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70 0 12-26
147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24 1 12-26
147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8 1 12-24
147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52 0 12-24
147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66 0 12-24
146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63 0 12-20
146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5 0 12-20
146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42 0 12-20
146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56 0 12-19
146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65 0 12-19
146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4 0 12-18
146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31 0 12-18
146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2 0 12-18
146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39 0 12-17
146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3 0 12-17
145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6 0 12-17
145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8 0 12-14
145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85 0 12-14
145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23 0 12-14
145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45 0 12-13
145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5 0 12-13
145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86 0 12-12
145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25 0 12-12
145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51 0 12-11
145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55 0 12-11
144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92 0 12-07
144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79 0 12-07
144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45 0 12-05
144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94 0 12-05
144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76 0 12-04
144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23 0 12-04
144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64 0 12-03
144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7 0 12-03
144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93 0 11-30
144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66 0 11-30
143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99 0 11-29
143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97 0 11-29
143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51 0 11-27
143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59 0 11-27
143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20 0 11-27
143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68 0 11-26
143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87 0 11-26
143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30 0 11-26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