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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 이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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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20회 작성일 18-10-22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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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철



오늘도 나는 산새만큼 많은 말을 써버렸다
골짜기를 빠져나가는 물소리만큼 많은 목청을 놓쳐버렸다
손에 묻은 분필 가루를 씻고
말을 많이 하고 돌아오며 본
너무 많은 꽃을 매단 아카시아나무의 아랫도리가 허전해 보인다
그 아래, 땅 가까이
온종일 한마디도 안 한 나팔꽃이 묵묵히 울타리를 기어 올라간다
말하지 않는 것들의 붉고 푸른 고요
상처를 이기려면 더 아파야 한다
허전해서 바라보니 내가 놓친 말들이, 꽃이 되지 못한 말들이
못이 되어 내게로 날아온다
아, 나는 내일도 산새만큼 많은 말을 놓칠 것이다
누가 나더러 텅 빈 메아리같이 말을 놓치는 시간을 만들어 놓았나


ㅡ이기철 시집『가장 따뜻한 책』(민음사, 2005)





1943년 경남 출생

영남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72현대문학등단

시집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유리의 나날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가장 따뜻한 책

스무살에게』 『정오의 순례』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평론집 문예창작』 『인간주의 비평을 위하여

소설집 리다에서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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