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자 없는 거리에서 / 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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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359회 작성일 16-05-16 09:46본문
이 그림자 없는 거리에서
박용하
우리는 관계없는 관계였다
내가 너를 지나가듯이 너는 나를 미끄러져 갔다
얼음과 절벽의 만남
잘 지나가고 잘 미끄러지는 묘기
이 거리에서
이 눈빛 찌르는 거리에서
이 싸움 같지 않은 싸움의 거리에서
어제를 지켜볼 수 없게 우리는 사라져 갔다
이 그림자 없는 거리에서 깊이는 죄악이었고
사랑의 깊이는 최악이었다
헛된 시간을 지나가는 유령들의 화장술 속에서
이 사람 많은 거리에서 그 무엇도 아닌 사람이 그리웠다
우리는 물건이 아니었음에도 물건같이 돼 버렸다
그렇더라도 피로와 함께 야밤으로 퇴근하고
이 비루한 거리로 아침과 함께 쫓기듯 돌아와
내 사랑의 야윈 그림자를 안을 것이다
내 사랑의 투철한 결핍을 얻을 것이다
이 거리에서
이 배제의 거리에서
너의 얼룩진 숨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다
너의 잿빛 숨소리를 밟고 가는 사람이 있다
이 세상 어디를 가든, 어디에 속하든, 무수한 그대 눈빛 그림자
이 거리는 무수한 너의 거리
너는 무수한 나였다
이 이익의 거리에서
이 영업 비밀의 거리에서
말이 허망한 세상이라 해도
사람들 속에서 언어를 구할 것이다
괴로워도 여기서 이 순간들의 횡단 속에서
물결치는 호흡과 내뿜는 시선들 속에서 노래를 구할 것이다
1963년 강원 강릉 출생
1989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나무들은 폭포처럼 타오른다』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견자(見者)』『한 남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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