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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 법국의 처자들 외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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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4건 조회 1,726회 작성일 17-06-30 18:00

본문

  



시마을 7월의 초대시인으로 최형심 시인을 모십니다.


최형심 시인은 2008년 《현대시》로 등단하였으며,

2014년 《시인광장》 시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최형심 시인은 통찰을 바탕으로 한 깊은 천착으로

현실의 부조리와 아픈 내면을 기품있게 표현하고 있으며

사물 및 인간의 내재된 심리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매우 뛰어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최형심 시인의 깊이있는 작품과 함께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나시기 바랍니다.


=================================


 

법국(法國)*의 처자들 / 최형심

 

 

   (석 달 열흘 아편을 피웠다. 창밖으로 법국(法國)의 처자들이 지나가는 왜관(倭館)의 어느 골목이었다.)

 

   인력거꾼의 눈빛은 처음부터 여기 살지 않았습니다. 나는 조계지의 이양선들마냥 고독해집니다.

 

   삽살개가 버즘 가득한 아이들을 따라 저녁의 담벼락을 핥습니다. 처음 보는 꽃들이 고봉밥처럼 피었습니다. 질그릇에 낙숫물 듣는 소리를 주워 담으며 청국의 기녀들이 지나갑니다. 탕아들, 꽃밭에 무너져 태양과 내통 중입니다.

 

   목각인형을 안은 하역노동자들이 지나갑니다. 침묵을 금과 맞바꾼 처녀애들이 돌아봅니다. 그늘에 묵어가는 이들이 찬물에 밥을 말다말고 별리(別離), 하고 부릅니다. 당신은 백년 후의 목덜미를 만집니다.

 

   풋내가 가시지 않은 초가 아래 앉아 한 백년 당신을 기다려야할까요. 욕창을 가진 노파가 등나무처럼 보랏빛으로 등을 돌리며 이승의 말을 옮깁니다. 아득히 치뜬 버들잎 아래 선염법(渲染法)으로 상처들이 번지고 있습니다.

 

   묘석이 된 가슴을 만지며 천년이 이렇게 가도 좋은가, 길바닥에 젖을 물린 어미는 백발. 아이를 앞세운 여인은 혼자 저물어 바다가 되려합니다. 죽은 자들은 죽어서 더 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발 한 짝 안고 저녁의 집을 짓는 아이가 나비의 연장선을 따라 소맷부리로 날고 있습니다. 허공에 방생한 쇠물고기가 온몸을 부딪쳐 피로 번지는 이편, 천 년 전에 당신은 나를 잊었습니다. 물새는 물속에서 슬퍼집니다.

 

   청국의 배가 들어오는 날, 남포등을 켜는 서양식 호텔의 뽀이는 낯선 단어를 깨물더니 입술에 불을 붙였습니다. 미닫이를 당겨 이별하는 법을 먼 동방에 와서야 배웁니다.

 

   입담배를 물고 산파들 희게 웃습니다. 당신, 저편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까.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다시 천 년…….)

 

 

*프랑스

 

 

 

전족(纏足) / 최형심

 

 

 

   눈이 내리면 늙은 기녀는 성긴 머리를 쓸어내린다. 첫눈에 묶인 발자국이 봄 술로 익을 때까지 눈썹을 접어 한 켠에 둔다.

 

   차갑게 숙성되는 발자국을 위하여 붉은 눈의 남자들이 술을 데우고 있다.

   휜 발등을 닮은 달이 뜨면 필경사를 부르러 가는 여종이 유리종을 흔들고

 

   돌난간 위 행려병자들이 먹물에 대고 판각된 별을 희게 베끼고 있다.

   밤의 경계에서 젖을 빠는 늙은 항아들이 민무늬 토기처럼 순수해지고 있다고 청노새는 능묘 곁에 편자를 내려놓는다.

 

   겨울에 유배된 내실의 내력이 미약에 취한다. 비파를 타는 서풍의 서녀들이 현 위에 얹어놓은 밤을 당길 때

   바람이 등불 위에 한 겹 붓자국을 덧칠한다. 기녀가 화첩을 밀어내면 철지난 책들이 늙어가고 금련(金蓮)은 손톱 위에 서리로 덮인다. 추위는 발자국의 반대방향으로 익어간다고 필경사는 회고담을 집필중이다.

 

   객잔에선 어린 아비들 면발처럼 풀어져 바람의 방향을 묻는다. 천축(天竺)에서 온 사내들이 하얀 모래밭을 서걱서걱 외우는데, 푸른 방울소리를 매단 연꽃이 얼음의 가교 위로 미끄러진다. 눈먼 겨울나무의 전언이 우수수 떨어진다. 홍등이 거리까지 나와 배웅하고 있다.

 

   윤달을 비켜간 회화나무가 푸른부전나비의 부음을 듣는 밤, 풍장한 짐승들의 촉이 달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천공의 상처들, 고열을 예비한다.

 

   담벼락아래 냉기 빠진 발자국이 꾸물거린다. 걸음 하나가 전족(纏足)에서 풀려나고 늙은 기녀의 발에 물이 오른다.

 

 

 

 

호금(胡琴) / 최형심

 

 

   슬픔이 많은 동물은 덩치의 오 할이 감정이다.

   저녁의 가업을 반올림하며 여인들은 마두금 타는 소리에 머리를 잘랐다. 차가운 편자들이 천막과 천막을 지나 늙은 낙타의 눈썹에 달리고

 

   내벽에는 연인들이 밀어낸 밀어들, 바람에 헹군 세간들과 둘러앉아 수테차를 마셨다. 둥근 방에 앉아 여러 생을 돌아서 오는 어린 낙타의 발소리를 들었다.

 

   비천무(飛天舞)를 추는 새들 위에 누가 밤하늘을 뚫어놓았나. 양떼들이 그을음 위에 그을음을 올리고 별의 궤적을 오독했다. 두 개의 현 사이에서 모래산들이 켜켜이 쌓아올린 밤이 완성되고

   짐승에게는 시()가 필요했다. 파란 이마의 여인이 몸을 말고 울림통 속으로 들어간 후, 악사들은 오래 기른 눈썹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서로를 의심하지 않고 두 줄의 현을 건널 수 있을까, 고삐를 놓은 사내들이 빈둥거리고 있었다. 음악은 점선처럼 성실하게 사막에 묻힌 어린 몸을 만졌다. 길들일 수 없는 길을 걸어온 검푸른 소녀들의 비단이마엔 말발굽을 모아 모닥불을 피운 흔적들…….

 

   사막에 서면 가난한 이들은 모두 동갑이었다. 이정표가 된 죽음을 따라 룬으로 떠나는 여인은 무명지가 없었다. 나는 하지 근처의 벌목공처럼 헐벗었으므로 목초지의 목관악기처럼 울었다.

 

   모래 능선 하나가 일어나 마두금의 현 위를 걸어갔다. 졸고 있는 모닥불 옆 돌무덤에 심연 하나를 괴어주었다.

 

 

 

흰 눈썹 위의 풍습 / 최형심

 

 

 

   삼나무에 내리는 눈*을 사랑했네 삼나무를 발음할 때 나는 앞머리가 없었네 눈이 오지 않아도 암스테르담행 기차를 탔네 당신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나는 긴 낭하(廊下)에 갇혔네 눈발은 점점이 잠을 이루고 나는 삼나무와 그리워하다를 자주 헷갈렸네 심지도 않은 삼나무 사이로 조무래기 풍습들이 내리고 우리의 청춘이 밀서처럼 다녀갔네

 

   우리는 스물여덟 덜 떨어진 청춘들 신림엔 삼나무도 없어 우리는 귀퉁이 떨어진 법서들처럼 서로를 사랑했네

 

   밤의 밑그림 아래를 눈발이 서둘러 떠나고 영성체를 모신 소녀들이 흰 꽃처럼 돌아눕는데, 하얀 눈썹으로 당신을 그린 날이면 나를 모르는 내가 무명의 목어로 자꾸만 넘어지네 밀실까지 밀려드는 눈 오는 거리를 차마 떠나지 못하네

 

   무운시(無韻詩)를 외운 물별들에게 안부를 묻는 안쪽, 습한 사물에겐 사물함이 필요하다고 절대치를 가진 나무와 바람과 나를 나누었네 눈 감지 않은 물고기의 잠이 문장에 내려오는 날에는, 알약을 삼키지 않고도 하얗게 둥글어지는 무덤가에서 산짐승을 수습한 밤이 자주 묵어갔네

   폐어(廢語)의 나날도 가고 조무래기 별들도 가고 그리하여 이제 삼나무에 눈은 내리는데, 외눈만 가지고 내가 못질도 없이 깊어지네 당신의 방에는 삼나무의 배꼽들 둥글게 실눈을 뜨며 내려오고

 

   유순한 눈발이 아직 지상을 떠돌고 있는데 겁이 많은 건달들이 소년을 숲으로 데려갔네

 

   국수를 먹은 저녁에는 품속의 풍속들 하얗게 비늘로 덧나는데 수런수런 설레던 수련(睡蓮)이 빗장을 걸고 있네 나의 지붕에는 당신을 다르게 말하기 위해 등이 굽은 사제들이 살고 있는데, 그리하여 삼나무에 눈은 내리는데 당신은 흰 날개를 타고 눈썹을 넘어오네

   

*데이빗 구터슨의 소설

 

 

 

보리멸의 여름 / 최형심

댓글목록

허영숙님의 댓글

허영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반갑습니다. 최형심 시인님
평소 시인님의 시를 찾아 읽는데 이렇게 시마을에서 만나 뵙게 되어
더 반갑네요
주신 시 감사하게 읽겠습니다

향기초님의 댓글

향기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천재화가 고호
피카소..

작품을 보면
전 지금도 잘 모름니다

몇 날 며칠
시를 대면해도 어렵다는^^

그러다가 울 꼬맹이(외손녀..4살^^)
좀 더 크면 시인님 시를 해독해 달라고 할 판입니다^^

시인은 타고나는 것 같아요

시인님 시 평시들은
제 맘에 쏙쏙 들어 오는 시여서
열심히 퍼 담아 창고에 모셔 두었습니다

시라고 하기엔 소설 같고
소설이라하기엔
동화 같고

오마이~~갓__::
어렵습니다

더우시져 ..
커피 작은 스픈으로
음..세스픈 넣고
흑설탕 약간 달달하게 해서
각 얼음 듬뿍 넣어 냉 커피  한 잔 두고 갑니다~

창작시방 우수작 심사평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최형심님의 댓글의 댓글

최형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향기초님, 부족한 제 심사평을 열심히 읽어주셨군요. 고맙습니다.
귀여운 외손녀가 어서 자라서 난해한 제 졸작들을 해석해 주면 좋겠네요.
더운 날씨에 손녀와 행복하게 지내세요~! 

향기초님의 댓글의 댓글

향기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와
답변두 주시고
넘 고마워요

음..
울 꼬맹이가 상상력도 풍부하구

제가 놀아 주기엔
힘에 부쳐...이궁

혼자 3인 역활극하면서
대부분 혼자 놀아요

을메나 귀여운지

진심 울 꼬맹이를 믿어요^^
응원 고마워요

화이팅``` 입니다~~~다다다

최정신님의 댓글

최정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편편마다 문청들의 가슴에 젖어드는 학습 효과 만점이겠습니다
시평 물론 수박 겉인지 속인지 독자는 잘 알지요.
영혼으로 감상합니다. 시마을에 내려 주신 옥고에 감사합니다.

한인애님의 댓글

한인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글로 뵙게 되어서 감사드립니다.

어렵지만 반복해서 읽으며 영혼의 소리를 듣고 배우겠습니다.~*...한인애올림

손성태님의 댓글

손성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5월 우수작 심사도 해 주시고
귀한 시편들도 올려주셔서 시마을이 환해졌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최형심 시인님.
이왕 오신 걸음 시마을을 산책도 하시고 기웃거려 보시기도 하여
즐거운 나들이가 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시마을 운영위원회 회장 손성태 올림.

박해옥님의 댓글

박해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최형심시인님의 시들을 감명있게 읽었습니다
제겐 좀 어렵긴 해도 숨을 참으며 읽었답니다
그리고 많이 반성합니다
더없이 노력하신 흔적들을 시인님의 글에서 느꼈습니다
많이 배우려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형심시인님 ^^*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디 지진이 났나 싶었는데 진앙이 여기였군요.
시 여울이 세차서 많이 다치고.
후렴구, '넘흐 기죽이지 마,세,요.'
되뇌다가 절며 나갑니다. 눈 화상, 중상...

대왕암님의 댓글

대왕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최형심  시인 선생님 반갑습니다
선생님이  정성으로 만들어 올려주신 예쁜 글 잘 읽어 깊은 감상 잘하고 갑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더 많은 글 올려주지면 감사합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날 되시여 행복을 누리세요
선생님의 글 잘 모시고 갑니다 허락 해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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