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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솔 / 달의 영토 외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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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8건 조회 1,479회 작성일 17-08-01 15:12

본문

 

8월의 초대시인으로 박현솔 시인을 모십니다.

박현솔 시인은 1999년도한라일보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래

2001현대시신인상을 수상하였으며,

2005,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지원금을 받은 바 있습니다.

시집으로는달의 영토해바라기 신화가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박현솔 시인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시간을 통해 기억 속에 가라앉은 유년의 자화상과 회화적 이미지를

역동적인 시적 에너지로 승화시킨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박현솔 시인의 아름다운 시와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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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영토 외 9 / 박현솔

 

 

모두들 잠든 시간, 서늘하게 걸려 있는

저 달은 우주로 귀환하지 못한

영혼들의 오랜 영토가 아니었을까

남겨진 이들이 죽은 자를 그리워하며

갈라진 논바닥처럼 가슴이 타들어 갈 때,

달에 스민 영혼들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지상을 내려다본다, 저 영토에도

개울이 흐르고 새가 날고

창백한 영혼들이 밥상머리에 모여 앉아

지상에서의 한때처럼 둥근 숟가락질을 하겠지

먹구름이 달의 주위를 감싸고 돈다

사자(死者)들의 영토에 밤이 도래한다

창가를 비추던 달빛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기억을 쓸던 달빛도 순간 사라지지만

내 기억 속 한 사람이 상흔처럼 되살아난다

그는 지금 저 영토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었지만

한때 그의 중심에 박아놓은 수많은 옹이들

이젠 어떤 참회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내 안의 먹구름이 서서히 걷힐 때까지

달의 안부를 오래도록 묻고 있다

 

 

 

 

 

미로 속의 오갈피나무

 

 

지도 속의 미로를 걷고 있다

알래스카 깊은 빙하의 계곡

여름에도 계곡은 결빙의 손을 놓지 않고

투명한 얼음 입자만을 살찌우고 있다

언제부턴가 알래스카에 눈이 오지 않았고

빙하의 조각들이 녹아 적막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오랫동안 빙하의 틈새에서 잠자던

꽃의 씨방들이 바람을 타고 의식의 경계를 넘어온다

경계의 사이로 날리는 씨방들, 씨의 방들

내 의식의 경계에 언제부턴가 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치자나무 젖은 뿌리가 얼고, 하얀 잿더미를

꾹꾹 밟고 있는 여자의 낡은 슬리퍼가 얼고,

살얼음 위를 까치발로 걸어가는

위태로운 생이 꽁꽁 얼어붙는다

세계지도 속의 어디라도 한 번 쯤은

살아볼 만한 곳이지만, 나는

편지가 오지 않는 오지에서 오갈피나무의

자줏빛 꽃이 되어 기다려도 받아볼 수 없는

소식들에게 눈발의 안부를 묻는다

오랫동안 지도 속의 미로를 걷고 있다

 

 

 

말뚝에 대한 기억

 

 

 

눈부신 햇살 아래에서 새끼들과 장난을 치는

어미 소의 눈망울을 들여다 본 적 있다

아카시아나무 잎사귀에 부딪혀서 급강하하는

햇살의 칼날, 소의 몸통이 무수히 조각난다

아버지 약값을 위해 소를 팔던 날

외양간을 나서는 소의 깊은 눈망울 앞에서

후줄근한 몸빼 차림의 어머니가 휘청거린다

다음 생엔 네가 내 주인이 되어 만나자꾸나

자꾸만 머뭇거리며 고삐를 넘겨주지 못하는

제 주인의 마음을 읽었는지,

어미 소가 어머니의 손등을 핥아준다

고삐를 잡은 손이 위태롭게 허공을 향한다

무딘 날을 세워 굳은 땅을 갈아엎던 고집으로

무너지는 일가를 지탱해온 어머니,

어머니가 내준 길을 따라 어미 소가 트럭에 오르고

철제문이 소의 그림자를 가두자,

젖을 갓 뗀 새끼, 어미 소를 향해 울음을 내지른다

트럭의 바퀴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햇살에 잘린 붉은 파편들이 궤도 밖을 뒹군다

트럭이 떠난 자리에 어머니가 말뚝처럼 박혀 있다

 

 

 

 

서천꽃밭, 꽃감관

 

 

 

먼 데 외진 길들이 모이는 곳인가

그 곳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서네

칠흑의 어둠과 발등에 차오르는 물

급류를 헤치며 길을 가고 있네

가슴으로 듣는 잎사귀들의 속삭임

발길을 이끄는 낯선 풍경을 지나

먼 곳에서 불어오는 향기의 군무

물굽이를 돌아 물길이 한 곳에 모이듯

생의 굽이마다 피어나는 꽃들

수레멜망악심꽃, 웃음웃을꽃, 환생꽃

감춰진 도량이 너무 넓고 커서

인간의 꽃밭엔 필 수가 없는 꽃

햇살을 향해 꽃잎을 열어젖히듯

눈앞을 가린 어둠을 한 장씩 벗겨내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짙은 향기를 내뿜으며 밀려오네

의 시간과 의 순간들이

꽃 피는 주기처럼 돌아오기도 하니

죽어가는 영혼을 일깨워 살아나게 하고

불멸의 기운을 말아 꽃 속에 스미게 하네

만개한 고요가 익어가는 들판에서

천상의 향기를 흘려주는 밭지기가 되리

꽃에서 꽃으로 이어진 길,

길을 잘못 든 벌 한 마리 적막을 열고 있네

 

*서천꽃밭: 이공본풀이, 제주도 무가의 하나로, 못된 장자(長者)에게서

   벗어난 고아가 서천으로 가서 아버지를 만나고 서천꽃밭을 맡아 다스리게 됨.

 

 

 

 

 

우주의 시간

 

 

   국수를 삶으며 직선의 행적을 따라간다 직선은 뜨거운 물속으로 들어가 흐물흐물

 곡선이 된다 물의 결이 뭉치지 않고 돌개바람을 만든다 이제 회오리는 뜨겁고 짜다

면발들의 탄성을 가늠할 때 혀는 정직해지고 오래된 탐욕만이 위장 속으로 흘러든다

 

   인류가 먹었던 가장 오래된 국수의 흔적을 황하강 유역에서 발견했을 때 오래 살기를

꿈꾸었던 사람들은 죽고 없다 면발의 실크로드를 따라 장수의 염원만이 이어져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생명의 길, 욕망의 길, 유혹의 길

 

   그 실크로드의 기억을 입 안에 밀어 넣으며 내 몸이 가늠하는 삶과 죽음의 교차 지점을

 건넌다 권력자들은 더 큰 욕망을 이루기 위해 악마와 거래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태어

나면서부터 죽음을 생각한다 줄에 매달려서 늘어진 목각인형의 핏기 없는 팔과 다리……

굶주린 회오리바람이 그림자를 잽싸게 낚아채간다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결코 오래 살 수 없었던 사람들과 삶의 매순간을 미련 없이

 버린 사람들이 별똥별로 사그라지는 시간……정성껏 끓인 한 그릇의 국수를 앞에

 두고 몇 가닥은 과거로 또 몇 가닥은 미래로 흘려보내는 순간, 어디선가 면발 한 올을

 물고 새떼들이 북반구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변신 모티브

 

 

 

    번뇌는 모두 사라졌다고, 모두 죽었다고 방심할 때 나타난다 냄비를 찾으려고

싱크대 문을 열었을 때, 화장실 불을 켰을 때, 바람을 쐬러 베란다로 나갔을 때,

실수로 텔레비전 리모컨을 눌렀을 때, 검고 흉측한 번뇌는 순식간에 나타나서

댓글목록

최정신님의 댓글

최정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독자가 가슴으로 감상할 수 있는 시의 정석을 읽습니다

말뚝에 대한 기억...아픈 풍경에 눈 아리다
다시 읽고 싶은 시편들...시마을에 놓주심에 감사합니다.

임기정님의 댓글

임기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를 읽다보면 저도 모르게 손이 무릎 위에 얹어 있다
저하고 코드가 맞으면 어어 이것 봐라
맛깔나게 쓰는데 할 때 있습니다.
박현솔 시인님 시마을에서 만나 뵙게 되어
너무 반갑습니다,
맛깔나는 시 고맙습니다.

향기초님의 댓글

향기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무딘 날을 세워 굳은 땅을 갈아엎던 고집으로
무너지는 일가를 지탱해온 어머니,

한 참
저도 말뚝처럼 박혀 있다
갑니다()

반갑습니다
박현솔시인님^^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함초롬히 오셔서 녹녹히,
예리를 번뜩이십니다.
'죽은 태양의 저편에서' 와서 활활...
눈동자에 인두 몇 점 찍었습니다.
시, 神과 어울리는 시간에 독자들도 무척 즐겁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대왕암님의 댓글

대왕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뱍현솔 시인 선생님 반갑습니다
선생님이  정성으로 만들어 올려주신 예쁜 글 잘 읽어 깊은 감상 잘하고 갑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더 많은 글 올려주지면 감사합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날 되시여 행복을 누리세요
선생님의 글 잘 모시고 갑니다 허락 해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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