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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향 / 복면의 나날 외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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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375회 작성일 18-07-3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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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향 시인을 8월의 초대시인으로 모십니다

조연항 시인은199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2000시와 시학으로 등단하였습니다

시집으로1초소 새들 날아가다, 오목눈숲새 이야기』 『토네이토 딸기

저서김소월 백석 민속성 연구등이 있습니다

 

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출강, 육군사관학교 문예창작지도를 맡고 계시며

정기적으로 시마을 우수작 심사를 해 주시는 등 시마을 발전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조연향 시인의 좋은 시와 함께 건강한 여름 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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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의 나날 외 9편 / 조연향



 

한 청년이 모래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 일 없는 하루하루, 맘껏 복면을 쓰고 맘껏 사막을 뒹굴고 싶어서

하얀 구름을 맘 편히 쓰러뜨리는 곳으로 순례를 떠났을까

 

황사가 불어가는 쪽으로 자욱이 까마귀 떼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가 떠난 뒤

동네에서는 동백꽃들이 무더기로 뚝뚝 떨어졌다고 한다

 

입속의 먼지 알갱이처럼 서걱거리는 나의 권태와 테러가 그 그림자를 따라갔다

 

한 번도 가지 못한 어느 국경 근처에서 그를 놓치고 말았지만

눈 코 입을 지운 얼굴들이, 사라진 이름들이

 

검은 가면을 쓴 얼굴들이

뛰어가는 것을 설핏 익숙한 골목에서 자주 마주치기도 했다

 

제 속의 테러가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고 참수당하는 봄날 저녁

 

모래바람이 거대한 날개를 펴고 밀려오고 있었다

 

 



꽃이 꽃을 건너는 동안

- 황매실

 

 

깊은 산골입니다 눈 내리고 산그늘이 지면

꽃잎마다

 

푸른 잎의 우산을 받쳐도 온몸이 흠씬 젖습니다

초인의 눈 속으로 운석이 흘러드는 밤

뻐꾹, 구름이 울어대고 마을에 또 무슨 일 터졌나요

천둥이 깨지고 바닷물 뒤집혀도 호랑이 이빨 자국 지우듯 정신 차려 팔랑입니다

수상한 그늘이 펄럭이고, 강물이 넘쳐흐르는 동안

제 생을 익히듯 꽃은 속내를 익힐 뿐입니다

 

꽃이 꽃을 건너는 동안,

새콤한 속내를 생각하는 동안

 

어느 날은 누군가 매화꽃 그늘에 와서 밀어를 흘리고 가고

또 어느 날은 얼굴 없는 시체가 썩어 문드러진다고

새들이 천둥 속에서 그렇게 퍼덕거렸던가요

 

배꼽부터 물들이는 돌연변이의 봄밤도 미친 명약입니다

솜털이 보숭보숭한 꽃열매인들 나뭇가지에 앉아

 

땅의 일들을 못 보았겠습니까

누가 저 꽃벌레를 살해했는지 꽃벌레가 스스로 목을 매었는지

 

번개가 지나도 바람은 묵비권입니다 알 수 없는 염병이 홀연히 산비탈을 휘돌아가고,

풀리지 않는 의문처럼 달빛은 원시림입니다 끝내 가보지 못해도 눈에 선한 그 마을의

서사가 새콤하게 한 문장으로 익었습니다

 

 

 

  

참나리꽃

 

 

 

점박이 무당벌레가 점 점 점 볼따구니에 불침을 놓고 간 자국

 

울타리에 머리 숙인 채 숨소리도 내지 않았고 흔들리지도 않았다

 

여름 밤 낮 햇빛과 어둠의 비늘을 번갈아 입고

 

몽타주처럼 활짝 핀 아수라로 뛰쳐나와 아주 잠깐 현현하듯 활짝

 

그리고 다시 어둠 속에 사라져버렸다

 

사랑한다는 뜻도

 

슬픔의 파닥임도 원한의 향기도 아닌

 

나비 한 마리 찾아 헤매고 있는 그것

 

그 상징이 오늘

 

밤바람 스치듯 살짝 꽃의 뒤쪽으로 숨어들었다

 

 

 

 

 

질마재 신화를 읽다가

 

 

 

  깜박, 조는 사이 주전자 속 결명자 고개 숙인 채 까만 잿불이 되었다

 

  초록 다홍의 잿불 한 청춘이 오들오들 앉아 떨고 있었다 훌쩍 한 남자 사라져버린

고갯마루 금서의 시간 넘어오듯 매운 연기 자욱하게 내 눈앞을 가리고

  붉맑은 결명자 차 한잔 마시면 설핏 보았던 옷자락 만질 수 있을까 질마재에서 들었던

헛기침 소리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설까 진눈깨비 털어내며 겨울새가 날아가는

저녁나절

 

  지난 몇 생의 문돌쩌귀를 열어본다 단 한 번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는 초록의 상처 다홍의

아픔을 머금고 귀밑머리 풀리운 채 앉아 있는 신부의 첫 마음으로 한소끔 다시 결명자 차를

끓인다

 

 

 

 

 

 

 

 

 

 

숲 속의 전야 2

 

 

 

슬럼가를 둘러싸고 올리브나무 팔랑댄다 흑인남자 가슴을 어루만지며 춤을 추고 싶었을까

물오리 떼 화약을 게워내며 호숫가를 휘젓는다 어바나 샴페인 호숫가

샴페인 맛처럼

화약 냄새 싸아하게 밤하늘에 번지는데

더 뜨겁게 점화해야 할 불빛 너머 내 사랑, 저기

폭죽이 한 송이 꽃이라면

저 얼굴 검은 빛도 무성하게 피어나는 푸른잎이라네

 

-내일은 독립기념일, 엄마새 당신도 독립하세요-

 

아기 까마귀들 연기를 물고 투덜투덜 짖고 있었다

축포를 쏘아 올리며 몰려다니는 발자국 소리

 

-경찰과 흑인들이 사타구니에 총을 숨기고 있어요-

 

담쟁이넝쿨이 할렘가를 뒤덮고 있는 그곳,

 

까만 유리 눈망울 굴리며

한 여자 흉상처럼 서서 아가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밤에는 흑인, 낮에는 경찰이

화약 연기 자욱이 서로를 포위하고 있어도 내일은 독립기념일

반딧불이 제 궤도를 태우며 날아다니고,

독립하지 못한 어미새 까마귀들이 나뭇가지 위에서 매캐하게 울고 대륙의 저녁은 발열하듯 들썩인다

 

 





 

사이를 지나갔다

 

 

 

하모니카 울며 지나갔다

앙상한 귀뚜라미 울음이 찌르르 퍼져 나가고 목에 매달린 동전 상자는 오히려 고요했다

 

반쯤 눈 내리깔아 졸던 나는

그 소리를 바라보았으나 서로의 눈빛 건너뛰었다

 

전철 바닥에 비친 얼굴 위 점을 치는 지팡이

톡톡 어둠을 허공에 들어올리며 통로를 지나갔다

 

보이지 않는 길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갔다

젖은 어깨와 마른 어깨 사이 물고기 지느러미를 밟고

오래전부터 지나갔던 길

 

이미 정해져 있었던 사잇길을 찾아 약수역에 서는 전철

반복되는 순서와 질서 사이 바깥의 불빛들이 뒤로 비켜섰다 백양나무 가로수들이 멀어지거나 할 때,

 

철벽을 울리며 귓속을 달리는 캄캄한 소리

내 눈뜬 소경이 울음소리 따라가다 덜컹 넘어지고 만다

 

눈꺼풀로 밀어내지 못했던 눈물이 지팡이를 타고 흘러내리는데,

 

지하터널을 연주하는 하모니카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지하터널

보이지 않는 길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갔다

 

 

 

 

 

 

 

저녁의 지구

 

댓글목록

허영숙님의 댓글

허영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반갑습니다. 조연향 시인님
시인님의 좋은 시를 여기서 다시 만나뵙습니다

시집 <토네이토 딸기>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주신 9편의 시, 감사히 읽겠습니다

향일화님의 댓글

향일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조연향 시인님 반갑습니다
시원한 언어의 샤워를
무더운 날씨에 즐길 수 있도록
좋은 시를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임기정님의 댓글

임기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조연향 시인님
무더운 날씨 좋은 시 들고 시마을 방문 하시어
무지 무지 환영합니다.
아주 고소하고 맛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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