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고무신 / 오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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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47회 작성일 17-07-24 23:06본문
흰 고무신 / 오영미
거기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을 때
언 땅이 채 풀리지 않았던 그 해,
방바닥에 엎드려 있던 아이의 얼굴에
모가지 꺾인 동백꽃이 뚝뚝
누구랄 것도 없이
싸늘한 바람을 등에 업고 달려간 곳
실낱같은 희망도 잠깐
감당 못할 피안의 세계로 떠났지
그곳은 손이 닿지 않는 하얀 나라
오동나무 침대에 흰 고무신 한 짝 모셨다
오동나무는 언제나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고
피연한 표정의 흰 고무신은
나를 원망하듯 창백한 얼굴로 잠들곤 했어
아직은 너무 어린나무,
걷지도 못하는 하얀 발바닥에
각질로 꽃핀 손가락을 끼워
지문이 닳도록 걸음마를 시켜봤어
뽀얀 발은 더 이상 자라지 않았고
흰 고무신도 성장이 멈추긴 마찬가지였다
숨이 헐거워서 요동도 부리지 못해
자라지 않는 발바닥에 지워진 손금이 닿으면
내 모가지에도 동백꽃이 뚝뚝
鵲巢感想文
재질과 색감표현에 시선이 간다. 시제가 ‘흰 고무신’이다. 여기서 ‘흰 고무신’은 무엇인가? 시인이 바라는 이상향이다. 이상향은 무엇을 뜻하는가? 시 아니면 연인, 혹은 어떤 목표 아니면 그 무엇이겠다.
언 땅과 아이의 얼굴 그리고 모가지 꺾인 동백꽃은 자아다. 자아를 넘어 우리의 세계며 어떤 경계를 넘지 못한 까만 개미다. 싸늘한 바람을 등에 업고 달려간 까만 나귀다. 나귀가 바라는 것은 피안이다. 깨달음의 세계, 잠깐 피었다가 말, 그런 하얀 나라가 아니라 흰 고무신처럼 굳은 세계, 흰 고무신처럼 걷는다면 창백한 얼굴도 다 닳은 지문도 지워진 손금마저 뭔 대수로운 일일까! 내 모가지에도 동백꽃처럼 뚝뚝 피 흘릴 일 있었으면 좋겠다.
동백꽃 같은 피다. 그러니까 희생이다. 그 희생은 많은 비난과 역모 같은 중죄를 등에 업고 가는 길일 수도 있다. 마치 실낱같은 희망만 안고 말이다. 남들은 왜 이러한 행동을 하는가? 하며 되묻기도 한다. 시인은 더 나가 예술인은 무엇 때문에 그 어려운 길을 자처 걷는 것인가? 심심하니까, 아니면 범처럼 가죽이라도 어디 걸고 싶었어,
이제는 시는 시인만의 공유물이 되었다. 놀이다. 친목이며 사색이며 자위다. 어렵고 긴 행보도 좋다. 아니면 다들 보는 앞에서 뻔질나게 뽐 나는 폰드체는 어떤가? 너는 봄 날 꽃처럼 활짝 피어날 거라며 너는 아주 향기롭다고 써 보는 것이다.
아니면 시처럼 자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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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미 2002년 ‘시와 정신’ 등단 시집 ‘서산에 해 뜨고 달뜨면’, ‘모르는 사람처럼’
월간문학 579, 2017 5월호 발표 ‘흰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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