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텐더 / 강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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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14회 작성일 17-09-30 23:27본문
바텐더 / 강기원
세상 존재하는 모든 술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술을 만들 것
분자 요리를 만드는 셰프처럼
우선, 달걀노른자 같은 어찌씨를 추출한다.
칵테일에서 노른자는 각기 다른 맛을 교묘히 이어 주는 마술의 끈
도구 상자인 만물 사전을 펼쳐 황동의 고색창연한 잔을 꺼낸다
잔에는 ‘미묘한’ ‘경이로운’ 그림씨 시럽,
싱글몰트 위스키 같은 이름씨가 들어갈 것이다
프리 다이버의 바닥없는 어두움을 넣는 것
또한 잊지 말 것
오른손엔 재료가 섞인 잔, 왼손엔 빈 잔
오른손 높이 들어 왼손의 잔에 천천히 붓는다
탄성의 긴 포물선
도저히 섞일 것 같지 않은 이질의 말들이
한 방울도 남김없이
이 잔에서 저 잔으로 거듭 이동한다
중요한 것은 배합과 궁합
그렇다
감미료와 착색 향료 아닌
궁합
혼합통을 흔들며 춤추는 요설의 현란함도
볼쇼의 난해한 짜릿함도 없는 심플한,
하수와 고수가 함께 쓰는 방식
칵테일은 매번 세계 최초여야 한다
鵲巢感想文
바텐더는 카페나 바 계산대에서 주문을 받고 칵테일 따위를 만들어 파는 사람이다. 바리스타가 커피와 음료를 만든다면 바텐더는 술이 포함된다.
이 詩에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무엇을 하든 바텐더가 되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실지 세상은 바텐더처럼 능수능란함을 요구한다. 이것은 후려치며 엎어 칠 수 있는 능력과 이 일로 새로운 것을 창안하거나 여태껏 보고 듣지도 못한 그 어떤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어야 함을 말한다. 이러한 것은 모두 옛것을 바탕으로 한다. 새로운 길은 구태의연한 옛 관습을 탈피하는 것이며 폭폭 삭은 밭에서 피어오르는 희망이다.
공자께서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가이위사의可以爲師矣’라 했다. 옛것을 배우고 새로운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살면서 독서는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눠도 인생의 지름길은 무엇인지 찾으려는 얘기뿐이다. 하지만, 그 어떤 질문에 대한 답 또한 한가지로 귀결된다. 그것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인생에 위기가 있다면 기회도 있는 법이다. 동전은 양면을 품듯 수는 분명히 놓아야 하는 일과 먼저 그림을 띄워야 하는 일뿐이다. 중요한 것은 배합과 궁합에 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에 진정한 감미료는 무엇인가? 착색 향료가 아닌 진정한 궁합은 무엇인가? 남에게 보여주는 그런 불 쇼의 난해함과 짜릿함도 없는 거저 단순한 것은 무엇인가? 말이다.
거저 혼합 통을 흔들며 춤추는 요설의 현란함으로 세상을 가름한다는 것은 나태함이다. 온몸을 바늘 밭에 들어온 것처럼 고통을 충분히 즐겨야겠다. 오른손엔 빈 잔 같은 태양을 들고 왼손엔 칵테일 같은 시집을 들어야겠다. 이리하여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삶의 긴 포물선 같은 감성으로 섞일 것 같지 않은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잔은 잔으로 이동하듯 네트워크는 철근처럼 엮어야겠다. 힘든 일이다.
세종께서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 서로 맞지 아니한 관계로 훈민정음을 창안하듯이 세계 최초의 칵테일을 만든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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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원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7년 ‘작가세계’로 등단했다.
시집 ‘지중해의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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