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편지함 - 강화의 가을 / 허영숙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39회 작성일 17-10-30 18:58본문
받은 편지함 - 강화의 가을 / 허영숙
어쩌자고, 이토록 오래 묵혀 두었나, 저 편지들
처음 열어 본 편지함에는 비릿한 달의 목록들
한 통씩 밀려와 쌓이는 동안 사연만 묵어서 어떤 것은 해독하지 못하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물의 걸음은 기다리는 편지만큼 더디고
한 나절 울던 여자가 슬픈 사연이 담긴 소금 자루를 지고 가는 풍경에 매달린 이름 같아
나지막하게 불러보는 외포리,
아직도 기다리는 편지가 있다는 듯 텅 빈 편지함을 맴도는 새들의 기다림이 짠데
물의 행간을 뒤적이고 돌아온 시린 발들이 쓰고 누울 따스한 사연 하나 두고 싶어지는 동막의
가을에는
저녁 미사를 올리는 하얀 손들의 기도가 가득하다
한 번 보고 평생 못 볼 사람 하나 여기 두고 가듯
돌아가는 걸음이 무겁고 느리다
경북 포항 출생
釜山女大 졸
2006년 <시안> 詩부문으로 등단
시마을 작품선집 <섬 속의 산>, <가을이 있는 풍경>
<꽃 피어야 하는 이유>
동인시집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시집, <바코드 2010> <뭉클한 구름 2016>等
<감상 & 생각>
2017년의 가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네 삶이란 게 생각하면 참, "덧없음"인데요
그나마 시인들의 詩가 있어 덜 쓸쓸한 거 같습니다
삶이란 디렉토리 안에는
외로움, 그리움, 추억, 슬픔, 사랑 등
참 많은 항목의 화일들이 있는데
그 항목들에 자리한 보낸 편지함과 받은 편지함이 어느 날엔
깊은 속살로 지닌 시어처럼 트여보이기도 하지요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시 감상 역시 시험장의 답안지가 아닌 이상
시에 대한 감상과 해석은 시를 읽는 독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는 거지만..
아슴히 남겨지는 가을의 정경이그리움으로 익어 타오르는,
마치 삶의 뿌리에서 부터 젖어오는, 가을의 적요한 선율이 되어
오랜 여운으로 남겨지네요
" 한 번 보고 평생 못 볼 사람 하나 여기 두고 가듯
돌아가는 걸음이 무겁고 느리다 "
마지막 행은 슬프고 황홀한 삶이 드리우는,
속 깊은 진폭(振幅)의 울림 같기도 하고
가을을 단순한 계절의 묘사가 아닌,
삶의 무게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상상 안에
시인 자신의 무게가 담긴 느낌
모든 게 점점 화석화(化石化)되어 가는 이 삭막한 시대에
삶을 삶 그대로 담으면서도,
감정이 순화된 시 한 편이 주는 고요한 감동
아직은 이 세상에 시가 있어야 함을 말해주는듯 합니다
- 희선,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