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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풍경, 풍경화[달동네의 손금을 읽는 오후/ 송병호]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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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金離律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57회 작성일 18-05-17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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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풍경, 풍경화


- 글, 金離律(詩人, 評論家)


달동네의 손금을 읽는 오후/송병호
불면 不眠/김경식
괴물 동화 同化/서형국

  시는 일종의 그림 그리기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그림의 종류와 기법이 다양하듯 시의 종류와 기법도 역시 다양하다. 서양화, 동양화, 추상화, 정물화, 인물화, 데생, 스케치 등등의 기법이나 종류는 그리는 사람의 취향이나 철학, 물체에 대한 감응의 깊이가 다른 것과 비례해 무척이나 다양하다. 그림과 글의 종류와 기법을 일대일 대응한다는 것은 쌍방의 장르에 대해 대단히 무례한 일이며 상호교감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극히 일부분만 차용해 시를 설명해 본다면 시는 어쩌면 풍경화를 그리는 작업이라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풍경이란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시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글의 풍경화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회화에서 말하는 풍경화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풍경화(landscape painting)

로마 시대의 대저택에 그려진 프레스코 장식에는 이상화된 풍경이 보편적 주제였다. 유럽에서는 15세기의 기도서에 상상적인 풍경들이 장식되었으며 최초의 자연주의적 풍경화는 뒤러와 브뤼겔에 의해 그려졌다. 하지만 르네상스 회화에서의 풍경은 대부분 초상이나 인물구성에 장식으로만 나타났다.

풍경화가 서양에서 독립된 주제로 인정된 것은 17세기에 등장한 네덜란드파와 플랑드르파의 화가들인 렘브란트·뢰이스달·호베마·루벤스 이후이다. 그러나 19세기 회화의 가장 중요한 발전은 인상주의·신인상주의·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의 풍경화에 의해 이루어졌다.

풍경화의 양식은 다양해서 푸생과 클로드의 고요하고 고전적으로 이상화된 세계, 프란체스코 과르디와 카날레토가 그린 정밀한 운하의 지지적(地誌的) 풍경, 세잔의 구성적 분석, 새뮤얼 파머와 후에 콘스터블과 터너 유형의 시적 낭만주의, 그리고 루벤스와 반 고흐의 약동하는 범신주의 등이 있다. 현대의 풍경화도 오스카 코코슈카의 표현주의적 도시와 강, 모리스 블라밍크의 겨울의 시골풍경, 존 마린의 투명한 바다풍경, 에른스트, 달리, 르네 마르그리트의 형이상학적 전원, 니콜라 드 스타엘, 마리아 헬레나 비에이라 다 실바, 리처드 디벤콘 등의 반(半)추상적인 해안선 등 다양한 양식이 존재한다.

한편 중국에서는 4세기에 고개지(雇愷之)가 그의 풍경화에서 모범을 보였듯이, 중국의 확립된 전통 가운데 하나였으며, 계절 및 자연의 여러 요소와 같은 주제는 정신적 의미까지 띠고 있었다.

『포털 다음 백과』인용

위 인용문의 말미를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계절 및 자연의 여러 요소와 같은 주제는 정신적 의미까지 띠고 있다는 것은 계절이나 자연 혹은 사람이 살아가는 다변화된 모습의 어디에서도 정신적 의미, 순환의 의미와 변화가 내포하는 순리와 섭리에 대한 화자의 정신이 담겨 있다는 말일 것이다. 풍경의 의미는 감상의 대상이 되는 자연이나 세상의 모습 혹은 어떤 정황이나 상태를 말하며 풍경화는 그것을 주제로 하여 그린 그림을 말한다. 그렇다면 시는? 시는 세상의 모습 혹은 어떤 정황이나 상태를 눈으로 채록하여 단순히 보이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정황이 담고 있는 배경을 재구성하거나 모습이 담고 있는 시류의 변화를 포착해 내는 것으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계절이 바뀐다는 것은 기후와 절기가 바뀐다는 것이지만 시인이 바라보는 계절의 변화는 사물의 변화에 그치지 않을 것이며 물상의 변화 없이 가슴 속에서만 바뀌는 계절의 변화 역시 양립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주상절리에서 한 시대의 종말과 다른 세대의 시작을 동시에 꿈꾸며 상상할 수 있는 것이 포괄적 관점의 추상이라고 보는 것과 같다.

그림에 빗대어 말할 때, 시는 풍경화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읽으며 선명하게 그려지는 어떤 풍경이 없다면 모호한 안개 속을 거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읽으면 유년의 한때가 머릴 스치고 지나간다. 향토적이며 묘사적이며 또한 감각적인 시의 전개는 누구나 읽는 순간부터 자신의 풍경을 그리게 된다. ‘향수’의 전개 방식은 후렴구가 반복되는 병렬식 구조로 되어 있으며 선명한 영상과 동시에 감각적 언어의 붓질로 인하여 화면 가득 고향에 대한 아득한 그리움에 젖어 들게 한다. 연마다 시상을 전개하거나 매듭지어 연결하는 영상미적 집약의 서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한 편 속에 시각적, 청각적, 공감각적, 촉각적 시상과 심상들이 자연스럽게 표현된 개연성과 당위성을 내포하고 있어 글이 아닌 그림을 감상한 듯한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누구나 아는 작품이지만 ‘시와 풍경’이라는 글제에 가장 적합한 작품이기에 전문을 인용해본다.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향수 / 정지용』전문 인용


문학의 장르는 다양하며 시 또한 시 속의 시 장르는 매우 다양하고 그것은 표현의 기법 이전에 심상의 전이와 시상의 표출 방식에 대한 시인 자신의 다양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풍경을 보고도 얼마든지 다른 그림이 나올 수 있다. 관찰자의 각도, 시간, 마음상태, 풍경의 배경 이 모든 것들이 달리 보이는 그림이 나오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림과 시의 동질성을 분석해본다면 같으면서 다르다는 것이다. 있는 것을,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린다면 다만, 풍경화일 것이다. 하지만 풍경 뒤에 분명히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풍경을 그린 그림이 웅숭깊듯 시 역시 풍경 너머 보이는 풍경을 그려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스스로 먼저 감동해야 한다. 자기 감동이 선행되지 않은 글은 사상누각이며 진정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좋은 풍경화를 아무리 세밀하게 원본과 흡사하게 그려낸다 해도 복사본에서는 생명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타인의 글을 답습하거나 타인의 붓을 가져와 내 글에 현란한 채색을 한다 해도 그것은 이미 풍경으로서의 존재가 없다. 내 글에 대한 질감과 색채를 개발하고 연구할 때 그것이 풍경이 가진 배경의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일의 기초가 될 것이다.

시와 풍경, 풍경과 배경을 나름의 색으로 채색한 몇 작품을 소개해 본다. 


안개 속 풍경

정끝별

깜깜한 식솔들을 한 짐 가득 등에 지고
아버진 이 안개를 어떻게 건너셨어요?
닿는 순간 모든 것을 녹아내리게 하는
이 굴젓 같은 막막함을 어떻게 견디셨어요?
부푼 개의 혀들이 소리없이 컹컹 거려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발 앞을
위태로이 달려가는 두 살배기는
무섭니? 하면 아니 안 무서워요 하는데요
아버지 난 어디를 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바람 속에서는 바다와 별과 나무,
당신의 냄새가 묻어 와요
이 안개 너머에는 당신 등허리처럼 넓은
등나무 한 그루 들보처럼 서 있는 거지요?
깜박 깜박 젖은 잠에서 깨어나면
어느덧 안개와 한몸되어 백내장이 된
우우 당신의 따뜻한 눈이 보여요
덜커덩 덜컹 화물열차가 지나가요
그곳엔 당신의 등꽃 푸르게 피어 있는 거지요?
나무가 있으니 길도 있는 거지요?
무섭니? 물어주시면
아니 안 무서워요! 큰 소리로 대답할게요
이 안개 속엔 아직 이름도 모른 채 심어논
내 어린 나무 한 그루가 짠하게 자라는걸요!
나무는 언제나 나무인걸요!

『안개 속 풍경 / 정끝별』전문 인용


밥통의 계보를 묻다

서동인

부엌에 나뒹구는 파도 빛 얼룩진
밥통 뚜껑을 오랜만에 열었네
세상에, 주인이 먹다 남은 공양미
곰팡이 꽃망울 터뜨리는 텃밭에 나비도 없이
어디선가 검은 구름덩이 내려앉아
엉덩이를 살짝 살짝 내밀고 있었네
속의 것들이 울렁거리는 내 속도
내시경을 들이밀면 저런 풍경일까
하늘까지 뚫린 산동네 골목길을 기어 내려와
살아서도 싸늘한 지하 셋방이 싫어
공중에 매달린 거미집 옥탑방 까지
힘없는 주인을 따라 세간 옮길 때마다
용달차 한구석에 처박힌 불쌍한 녀석,
한강도 서너 번 건너 본 밥통은
현기증 때문인지 제대로 밥 지을 줄도 모르네
어느 해 였던가 유조선 시프린스호 기름띠 보상으로
바닷가 우리 家系에 걸어 들어온 너의 정체,
그 겨울 뚜껑을 연 양식장 굴껍데기
꺼먼 속살에 놀란 아버지 발길에 차여
파도 빛 멍든 너를 새 것으로 바꾸진 못하겠네
문득, 병들고 지친 밥통의 계보를 묻다가
거울 속 네 주인처럼 짠한 생각이 들었네


『밥통의 계보를 묻다 / 서동인』전문 인용


운주사 깊은 잠

이명윤

그들의 꿈에 잠시
스쳐가는 풍경처럼 다녀왔다
눈썹이 지워지고 입술이 지워져가는 석불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어느 날 눈이 사라졌으니
잠에서 번쩍 눈뜰 염려가 없고
입술이 지워졌으니
또다시 저녁이 와도 끼니 걱정 안하실 일
무심한 얼굴을 더듬어 내려오다
두 손으로 곱게 모은 기도를 보았는데
언젠가 불타는 세월이
기도 앞을 쿵쿵거리며 뛰어다녔을 때도
철없이 눈썹을 쪼던 새가 어느덧 눈이 멀어
발등에 떨어져 죽었을 때도
꿈쩍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 기도보다 깊은 잠에 빠진 까닭이다
점점 얼굴이 지워져가는 얼굴들이
착한 아이들처럼 나란히 앉아
세월 좋게 주무시고 있었다
덩그러니 코만 남은 얼굴이
아침도 벗고 저녁도 벗고 훌훌 표정도 벗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어떤 분은 아예
자리를 깔고 하늘 아래 누워 계셨다
신기한 듯 쳐다보는 사람들을
(허공에 주렁주렁 박힌 창백한 눈과 입들을)
본체만체
저들끼리 야속하게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운주사 깊은 잠 / 이명윤』전문 인용


위 인용한 세 편의 작품의 공통점은 풍경에서 풍경의 배경을 담아냈다는 점이다. 또한, 자신만의 붓을 들어 고유의 색을 채색하여 그 온도를 차별화했다는 점에서 본 글의 주제어인 시, 풍경화에 적합한 작품이라는 생각에 인용했다.

모던 포엠 6월호 글 감상의 주제는 시, 풍경화에 부합하는 작품 세 편을 선별하여 풍경이 담고 있는 시인의 시선을 주목해 본다. 단순하게 풍경을 그려내지 않고 세상을 담는 의미를 부여한 현상을 생각하며 시를 감상해 보자. 첫 작품은 송병호 시인의 [달동네의 손금을 읽는 오후]라는 작품이다.

달동네의 손금을 읽는 오후

송병호

좁은 고샅길

돌아도 돌아도 언제나 제자리인 그 골목에
숙명처럼 상처 안고 똬리 튼 골 깊은 손금들이 있다
명랑이발관의 해맑은 미소를 지나쳐
엇갈린 오복담뱃가게 생명선은 차마 풍년 쌀가게의 재물선과
영영 만날 수 없는 구획이 되었다

그나마 입시학원의 아직은 흐릿한 장래선만 또렷한 선이다

실선들, 흔들릴 때마다 칙칙한 배경의 가끔 끊어졌던
동시상영 두 편의 영화는 오간 데 없고 낡은 영사기 한 대
골목 짓무른 앵글로 바람을 채록하고 있다

한때는 민심을 쥐락펴락했을 선과 선의 공존
바닥이 다른 면 위의 또 다른 점선들
깨진 유리창 밖으로 하루를 점치지 못하는
도시의 손금으로 남아 있다

수면 手面의 수상학은 믿을게 못 된다고
툴툴거리며 다 닳아빠진 지문을 가지런히 포개
혼자 졸고 있는 노파

요즘은 거의 사라진 단어 달동네. 달동네는 도시의 외곽이나 산등성, 산비탈 등 비교적 높은 지대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의미한다. 달동네의 연원은 해방 이후 귀국한 해외동포들과 종전 이후 월남한 난민들이 도시의 외곽에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달동네에 대한 의의와 평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960년대 이후 약 40년 동안 도시빈민 주거지역의 전형이었던 달동네의 도시빈민촌은 이른바 달동네 문화라고 부를 만큼 능동적이고 건강한 빈민문화를 상징했다. 이농민들이 주로 거주했던 달동네는 값싼 주거지인 동시에 생존의 공동체였다. 농촌의 이웃관계가 지속되는 공동체였으며, 험난한 도시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기착지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진행된 재개발사업으로 달동네의 도시빈곤층은 주거비가 싼 곳을 찾아 단독주택지의 지하방, 옥탑방, 비닐하우스, 쪽방 등으로 흩어졌다. 일반인들에게 빈곤층은 눈에 띄지 않는 집단이 되었고, 빈곤층은 고립되면서 이전의 공동체를 통해 얻었던 물질적·정신적 이익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다음 백과 사전』인용

달동네와 손금. 얼핏 아무 관계도 없는 것 같지만 시인은 폐가처럼 변한 달동네의 스산한 풍경 속에서 그 배경을 읽고 있다. 시의 전반을 흐르는 기조는 관찰이 아닌 관조를 바탕으로 시인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오래된 기억의 골목과 병치하여 손금이라는 占 행위와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다.


돌아도 돌아도 언제나 제자리인 그 골목에
숙명처럼 상처 안고 똬리 튼 골 깊은 손금들이 있다
명랑이발관의 해맑은 미소를 지나쳐
엇갈린 오복담뱃가게 생명선은 차마 풍년 쌀가게의 재물선과
영영 만날 수 없는 구획이 되었다

시인이 채록한 달동네에 대한 온도는 2연 첫 행에 기록하고 있다. 달동네의 골목은 돌아도 돌아도 언제나 제자리인 골목에서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단어를 연상하게 된다. 그 골목의 이리저리 난삽하게 이어진 골목과 골목의 입구와 출구는 입구라는 개념도 출구라는 개념도 없다. 들어오는 곳이 나가는 곳이며 나가는 곳이 들어오는 곳이라는 것은 나갈 곳이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다. 명랑이발관, 오복담뱃가게, 풍년 쌀가게가 의미하는 삶의 고단한 무게를 시인을 달동네라는 손바닥에서 보고 있다. 하지만 3행에서 시인은 달동네의 희망을 보여준다.

그나마 입시학원의 아직은 흐릿한 장래선만 또렷한 선이다

다른 모든 손금의 선들은 희미하고 퇴락하고 지워져 더 볼 것이 없지만 흐릿한 장래선은 또렷하다는 표현에서 시인이 던진 메시지는 경쾌하고 밝은 모습을 독자에게 던진다.

선과 선의 공존
바닥이 다른 면 위의 또 다른 점선들
도시의 손금으로 남아 있다


손바닥 위의 손금은 서로 공존하고 있다. 혹은 운명을 혹은 재물을 혹은 생명을 하지만 달동네가 만든 손금은 ‘도시’라는 새로운 사업화 시대를 건설하는 또 다른 점선의 기초가 된다. 도시의 손금이며 도시를 이루는 손금 일부가 되었다는 달동네 풍경의 배경, 시인이 읽는 달동네의 채색이 어떤 색인지는 시를 읽는 독자 누구라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구 6행의 전체가 달동네와 현재와 과거, 미래의 모습을 담담한 어조로 조망하고 있는 것, 생의 막바지에 와있는 노파의 눈꺼풀에서 산업화 시대의 단면과 그 속에서 잃어버린 삶의 한 단면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이중성을 갖게 된다.


수면 手面의 수상학은 믿을게 못 된다고
툴툴거리며 다 닳아빠진 지문을 가지런히 포개
혼자 졸고 있는 노파

시가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또렷하다. 구성 역시 노파와 수상학과 닳아빠진 지문이라는 날줄과 씨줄을 잘 엮어 풍경과 풍경이 가진 배경의 의미를 구문에서 그림으로 잘 전환하여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두 번째 작품은 김경식 시인의 [불면 不眠]이라는 작품이다. 멀리 있는 풍경이 아니다. 생활에 가장 가까이 있는 시간이라는 풍경, 다만 그 풍경에 새벽 두시라는 색감과 오지 않는 아침이라는 질감을 입혀 간결 속에 진중을 담아낸 작품이다.


불면 不眠

김경식

빗소리에 깨어난 밤
자리끼 한 사발에 잠은 멀리 달아나고
벌써 몇 채 허공에 구름집을 지어도
괘종은 다시 울지 않는다

불알을 늘어뜨린
새벽 두 시

시계의 죽음을 알아챈 순간
세상의 시간은 멈춰 버렸다

어느 봄 언덕을 달려가는지
입가에 번지는 환한 미소,

계절은 아내의 잠 속으로
피었다 지고

나란히 따라 설 수 없는
꿈속의 길

나는 우두커니
오지 않는 아침을 기다린다

작은 풍경 하나에서 커다란 삶의 화두 하나를 발견하는 듯한 느낌으로 시가 읽힌다. 자다 깬 새벽 두시는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며, 또다시 아련한 꿈으로 인도하는 시간이다. 불현듯이 자다 깨어 일어난 시간이 새벽 두시 일 때. 당신은 그 시간에 무엇을 생각하는지? 작품은 새벽 두시에 모던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진중을 입혔다.

불알을 늘어뜨린
새벽 두 시

시계의 죽음을 알아챈 순간
세상의 시간은 멈춰 버렸다

3행은 대단히 감각적이며 세련된 표현이다. 불알과 새벽 두시, 불알은 두 개다. 새벽은 두시. 새벽과 불알은 늘어져 있다. 움직이지 않는다. 고정된 채 제 기능을 상실했는지 늘어져 있다. 그것이 새벽의 풍경이고 화자의 심상이라는 점이다.

시계의 죽음은 알아챈 것은 자동이면서 동시에 타동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시계라는 매개체에서 비로소 멈춘 세상의 시간이 시인이 새벽 두시에 채색한 질감이며 온도일 것이다.

나는 우두커니
오지 않는 아침을 기다린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시인이 과연 아침을 기다린 것인지? 오지 않는 아침이라는 단서에서 아침이라는 것에 대한 시인의 조망 수위가 섣불리 짐작되지 않는다. 다만 새벽 두시라는 것의 배경은 어쩌면 시인 자신이 아닐까 하는 혐의가 진하게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시의 전반에 흐르는 무기력의 분위기는 어쩌면 그 반대를 희망하는 시인의 독백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척 세련된 작품이다.

마지막 작품은 서형국 시인의 [괴물 동화 同化]라는 작품이다. 개를 키우며 개의 습성에서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는 시인의 시선이 독특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시제에서 느껴지듯 동화라는 것은 아이들이 읽는 동화가 아니다. 하지만 시제에서 괴물이라는 단어를 덧입혀 작은 착시를 준다. 시제조차 고민한 흔적이 매우 역력한 좋은 작품이다.

괴물 동화 同化

서형국

태어난 지 2주 되는 개새끼를 데려왔다

2개월이 지나서부터
태생은 발로 돋았는데 손으로 사용하는 법을 깨우쳤다
3개월 지나고부터는 어디서 구걸하는 법을 배워와서
최대한 불쌍한 눈을 뜨고 바짓단 옆에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고개를 조아렸다

원하지 않았고
가르친 적 없다

사십 년을 넘게 살은 나는 고작 3개월 빌어먹은 개새끼의 언어를 배우고 있는 중
언제쯤 개가 될까

얼마 지나지 않으면 아랫동네 반인반수로 사신 3년 차 어른에게 기회를 배워 올 것이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길러준 괴물에게 배운 비열함으로
내 가슴에 자식을 그려 넣고 찢을 것이다

언제쯤 사람이 될까

몸에 밴 야비함을 사람이라 가지지 못한 능력으로
습득하는 짐승

이제 나는 초라한 술집에 들러
하나의 소줏잔과
한 벌의 수저와
비어있는 맞은편 의자에 몸을 비벼
흠씬 쓸쓸함을 묻힐 것이다

이 시를 주목하게 된 것은 어쩌면 시인의 심상과 필자의 시에 대한 심성이 사뭇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태생은 발로 돋았는데 손으로 사용하는 법을 깨우쳤다/

/어디서 구걸하는 법을 배워와서/

/최대한 불쌍한 눈을 뜨고/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고개를 조아렸다/

표현은 감각적이지 않다. 질감은 질박하다 못해 투박하다. 하지만 김광균의 [와사등]을 읽으며 느낀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모더니즘을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배경이 모더니즘을 지향하는 듯하다. 기존의 방식이나 전통이나 서술을 부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간 행간은 모더니즘의 기조를 깊숙이 감추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모더니즘을 풀어가기 위한 알고리즘으로 풍경이라는 소재를 가져왔다. 그 풍경의 배경에 모더니즘이라는 질감을 매우 두텁게 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작 3개월 빌어먹은 개새끼의 언어를 배우고 있는 중/

/언제쯤 개가 될까/

/언제쯤 사람이 될까/

필법만을 흉내 낸 조악한 작품이 홍수처럼 밀려드는 작금, 명장의 붓에 담긴 혼의 의미를 글에 덧입히는 채색이 이토록 정직한 작품은 필자의 조악한 솜씨로 현란하게 입을 놀리는 것이 구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이 카테고리에 삼 년 여를 연재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진정성이다. 시인 스스로 감동하지 않고 독자에게 감동을 바라는 것은 감동을 절도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해를 구하기 전에 먼저 이해를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풍경화를 추상화라고, 혹은 인물화라고 우기는 식의 자기변명을 이제 더는 통하지 않는다. 내가 벌거벗었을 때 타인의 벌거벗은 몸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마치 목욕탕에 입장한 것처럼. 풍경을 풍경답게 그려내는 일의 가장 기초는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어떠한 감미료나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고 검은 연필로 대강의 아웃라인을 스케치해야 한다. 그 후에 자신의 색을 입히는 것은 자신이 직접 만든 물감을, 선택한 물감을 그 위에 덧바르는 행위를 거쳐야 한다. 시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하며 이 글의 끝을 맺을까 한다.


이제 나는 초라한 술집에 들러
하나의 소줏잔과
한 벌의 수저와
비어있는 맞은편 의자에 몸을 비벼
흠씬 쓸쓸함을 묻힐 것이다

나와 나 자신과 독자에게 감히 하문하고 싶다. 우리는? 나는?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우린 과연 어떤 풍경이 되고 싶은지?



글, 金離律(詩人, 評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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