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 강신애
페이지 정보
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23회 작성일 18-05-20 03:08본문
소 / 강신애
안개 속에서 검은 소를 만났다
구정물 젖은 풀의 냄새를 풍기며 천천히
어디로 가는 중이었는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도 가만히 바라보았다
커다란 눈이 성스럽도록 멀었다
이상하게도 소의 등허리에는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춥지 않니?
눈을 털어주려 손을 올려놓았을 때
갑자기 고개를 돌려서
놀란 나는 뒷걸음질쳤다
소도 놀란 듯했다
자동차 뜸한 길가
안개의 발판마다
젖은 현의 선율이 튀어나왔다
뒤에서 희미한 울음소리를 들은 듯했지만
더듬듯 계속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안개로 윤곽이 무너진 소를 만났다
흐린 등에는
내 손자국이 찍혀 있었다
무거운 마침표처럼,
소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
누군가를 기다리는듯 거기
우두커니
* 강신애 : 1961년 경기도 강화 출생, 1996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서랍이 있는 두 겹의 밤> 외
# 감상
안개 속에서 소의 모습과 울음소리는 현실인듯 환상인듯 애매모호한 현상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길이 차분하고 웅숭깊어 내재된 울림이 크고 그윽한데,
껌벅이는 커다란 눈, 시리도록 찰랑이는 워낭소리, 듬직한 발걸음 등, 소가 가지고
있는 친근감이 화자의 깊은 심상 속에서 우러나고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시의
매력이 기묘하면서 신비롭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