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치미꽃 - 이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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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41회 작성일 18-06-27 14:42본문
시치미꽃 / 이명윤
오늘도 건강한약국 앞 인도에서
도라지 파는 할매
-막 캐 온 것이여 선상님 한 소쿠리 사 주소 차비해 집에 갈랑께
행인들은 안다
박스 안에 수북할 막 캐 온 도라지들
버스가 지나가고 꽃무늬 양산이 지나가고
길고양이 하품을 끌며 지나가고
할매와 도라지는
남남처럼 앉아있다
무릎을 오므린 채 손등 위에 올려놓은 얼굴
비쩍 마른 저 도랑에 꽃이 핀다
메이드 인 산골 호미 우리 할매
개나리꽃 진달래꽃 좋아라 좋아라 웃던 얼굴
도시 한복판에 그림자로 앉아
호미는 밭에서 녹슬어 울고
호미 잡던 손엔 물 건너온 도라지
그늘 잎 띄우고,
청승 잎 띄우고,
우리 할매 늘그막에 꽃이 되었네
이 좋은 봄날, 나비도 벌도 찾지 않는
꽃으로 피었네
* 오래전에 쓴 시치미꽃 퇴고작입니다,
* 무더운 여름, 동인님들 잘 지내시는지요,
요즘 동인방이 많이 한산한 것 같아 좀 아쉽지만
모쪼록 건강한 여름 보내시고 무탈하시기 바랍니다.
2007년 <시안> 시부문으로 등단
<시마을 문학상>, <전태일 문학상>,
<수주 문학상>,<민들레 문학상>,<솟대문학상>수상
시마을 최우수작가(4회)
시마을, 빈터, 리얼리스트100 동인
시집 <수화기 속의 여자>
<감상 & 생각>
할매와 도라지는
남남처럼 앉아있다
하지만, 행인들의 눈에는 남남처럼 안 보였겠죠.
중국산을 메이드 인 고향 산골 것이라 하는
그런 시치미가 고약하다 생각이 안되고,
그 어떤 애잔한 아픔으로 가슴에 젖어드는 건
왜 일까요...
도시 한복판에 그림자로 앉아
호미는 밭에서 녹슬어 울고
호미 잡던 손엔 물 건너온 도라지
그늘 잎 띄우고,
청승 잎 띄우고,
우리 할매 늘그막에 꽃이 되었네
이 좋은 봄날, 나비도 벌도 찾지 않는
꽃으로 피었네
아, 나는 이 읊음에서 시인의 따뜻한 시선視線을
간과看過하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을 세속적 가치로만 보자면야,
밉지 않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늘그막에 시치미꽃도 그러하구요.
하지만, 이 차갑고 암담한 시대에
애처롭게 고단한 삶이 질러대는 그 신음소리마저도
괘씸하다 여긴다면...
이 칼날 같은 날카로운 시대에 굳이 시인이란 게
있을 필요도 없겠지요.
따뜻한 붓으로, 오늘의 고단한 <한국적 정한情恨>,
혹은 그것이 내지르는 <삶의 애환>을
절묘하게 엮고 있는 시심詩心이 좋습니다.
-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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