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찾아 떠나는 호모루덴스 / 이 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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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36회 작성일 18-08-28 15:20본문
모자 찾아 떠나는 호모루덴스 / 이 령
신이 하늘의 모자를 훔쳐 인간에게 준 반역 / 순수의 퇴락은 거기서부터다
모자 홀릭, / 자꾸만 바뀌는 시간의 파장을 난 모자의 부피라 읽고 / 후흑厚黑의 비밀이 그 모자의 무게여서 / 보이는 것에만 눈이 어두워지는 시간을 내일이라 쓴다
비밀이 늘어날수록 난 어지럽다 / 시간의 안녕을 훔치기 위해 나의 생은 쥐뿔도 없는 블러핑
머리는 있는데 모자가 없고 / 모자는 있는데 머리가 없다 / 부피와 무게는 대체로 비례하지 않기에 / 갇힌 것은 언제나 자신일 뿐
마피아도 곧은 남자 / 창녀도 정숙한 여자 / 알고 보니 카사노바는 불멸의 고자
수평선 너머를 보게 된 직립의 저주로부터 우리는 모자를 얻었다
머리에 묘혈을 파니 모자는 / 어디든 있고 어디든 없다 / 먼지를 불리는 책상 아래 숨어 있고 / 화분 물받이 구석 곰팡이로 안착되고 / 일간지 사회면에서 착하게 부활한다
신이 자신의 형상으로 만들지 못한 유일한 피조물, / 머리에 모자가 없어 우린 /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된다
鵲巢感想文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다. 미쳐야 미친다. 미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뭐 이런 말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이기도 하다. 정민 선생께서 쓰신 책으로 ‘미쳐야 미친다’는 조선 지식인의 삶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지금은 얼마나 살기 좋은가? 조선은 정치적인 병폐 속에서도 선비들은 살아남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어쩌면 궁핍한 생활을 잊으려고 몰입의 세계에 두 발 벗고 찾아 나선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비에 미쳐 온갖 종류의 나비를 모으고 물고기에 미쳐 각종 물고기의 생태를 조사했다. 미치지 않으면 결코 이러한 자료를 수집하고 기술하지는 않았겠다. 또한 이러한 기술이 그들의 삶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詩人은 모자를 찾아 떠나는 호모 루덴스라고 했다. 시제부터 가슴이 뜨끔거렸다. 여기서 모자는 모자母字를 뜻한다. 모자(cap 帽子)와 중첩적 이미지에 읽는 독자는 혼돈이 올 수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놀이 방법에 모자만큼 좋은 것도 없다. 물론 시인만의 세계다. 호모 루덴스 (Homo ludens)는 놀이를 하는 인간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논다, 놀고 있다, 노니까 다. 무엇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그 놀이 방법을 찾고 있느냐다.
사람은 여유가 있어야 예술에 근접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건 일반인의 특징이다. 몇몇 특수한 사람은 그러니까 처한 환경과 시간의 굴레 또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서 예술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점점 모자 홀릭에 빠져드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보자. 문자처럼 격리되어 있지 않은지, 쥐뿔도 없는 생에 무엇을 낚아야 한다는 그런 강박관념 같은 것은 없는지, 알고 보면 카사노바 같은 불멸의 고자로 수평선 너머 직립의 돌도끼 같은 저주는 빨리 잊어야겠다. 사실, 불멸의 고자보다 입에 제대로 된 풀칠이 더 멋진 양반이 아닐까!
그러나 예술은 인간은 호모루덴스는 어떻게 노느냐다.
지금도 묘혈을 파는 시인들아 공자 이래 모든 모자는 모자라 일개 화분 물받이 구석 곰팡이로 섞다가 어느 날 사회면의 척하게 부활하는 모자는 없어야겠다.
신이 자신의 형상으로 만들지 못한 유일한 피조물, 머리엔 모자가 없어, 역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인 셈이다.
이기언야易其言也 무책이의無責耳矣*라 했다. 함부로 말하는 것은 책임의식이 없다는 말이다. 남의 글을 도용하거나 자기도 모르게 쓰는 일은 없어야겠다.
뭐 글 뿐이겠는가! 사회는 내가 뱉은 말에 책임지지 않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또 정직하게 말하여도 듣지 않는 이가 있고 도리에 맞는 말이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있다.*
역시, 우리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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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령 201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등단 詩集 “시인하다”40~41p
황종택 “고전 당신의 생각을 바꾼다”78~79p
* 한비자의 한비자가 ‘말하기의 어려움(難言)’을 들면서 “매끄럽게 하는 말은 뜻이 불충분하고(滑澤洋洋義不充) 완벽하고 질박한 말은 부드럽게 다듬지 않는다(愼完淳朴表無紅). 깊이 생각해 정직하게 말을 해도 진정 들으려 하지 않으며(思量正直非眞聽) 도리에 맞게 해도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義理全宜亦不通)”고 강조했을까. ‘막말’ 한 마디가 인간관계를 어렵게 하고, 세상을 시끄럽게 하기도 한다. 상대를 배려하는 경청과 소통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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