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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시산맥작품상 수상작 / 이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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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022회 작성일 18-02-1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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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시산맥작품상 수상작

 

 

허공에 검은 선을 그으며

 

이재연

 

오늘 내가 믿는 것은

밤의 솜털에 성냥불을 붙인 사람들의 아침

조용히 북쪽으로 날아가는 새들은

날개를 접고 주위를 주시한다

허공에 검은 선을 그으며

새들도 습관적으로 줄을 지어 날아간다

높이가 다른 냉담한 건물들과 함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우주의 한 구석에서

조금 경사진 길을 오르며 숨을 헐떡거리는 일

어디인가 무엇인가 아파도 많이 아파도

죽지 않는 영혼의 일 지루한 꿈의 일

그러니까 결국 새의 입장도

밤의 통증처럼 멀리 사라져가는

행인의 뒷모습과 같다

사랑을 취소하고 사랑을 꿈꾸는

새의 소리에는 인과가 없다

나를 생각하면 너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낡은 체제에 매달리는 동안

불쑥불쑥 밀고 들어오는 꿈도

폭력이라는 것을 새는 알지 못한다

종일 숲에 매달리다 겨울이 간다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겨울이 간다

그럴 줄 알았다 그렇게 쉽게

네가 지나갈 줄 알았기 때문에

내일도 끝까지 허공에 취해 있을 것이라고

믿는 저녁, 새에 편입되어 읽던 책을 덮는다

 

2017시산맥여름호

 

 

 

 

[ 근작시]

 

공사장 근처의 구름

 

 

 

머리 위에 있는

태양이 사라질 때까지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에 대한 이해는 쉽게 오지 않아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따뜻한 태도에서 시작해 모호한 태도로

어둠이 다시 내게로 돌아올 때까지

다른 것은 없었다

너는 알아? 우리가 돌고 있는

이 특별한 아침을 구역을

아무도 놀라지 않는 무서운 아이들은

어제와 다른 기분으로 인사를 하고

 

아무런 힘도 드러내지 못했던

인적이 드문 공사장 근처에서 구름이 파열되었다

아이들을 이야기 한다 아이들은 이야기한다

미래는 매를 많이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올 것이라고

 

여전히 매미가 울다 지치고

어린 풀들은 저희들끼리 그늘 속을 돌아다니다

여름이 끝날 무렵 또 물속에 잠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산으로 올라가 다시 내려오지 않아

목사님은 남아있는 눈물을 잠깐 보여주었다

그 밖에 아무도 눈물을 쉽게 보이지 않아

 

일생은 간략해지고 저녁에는

나쁘지 않으려고 물을 마신다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에 대한

이해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아무도 없는 때를 기다려

어둠이 내려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약을 찾고 있다

어린 조카는 아직 집에 들어

오지 않았다

2017현대문학11월호

 

 

 

 

멈출 수 없는 일

 

 

 

  나무 밑에 버려진 여름의 잔해와 함께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다. 너의 저음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여름은 기진했다. 사실은 한 사람을 생각하면 이제는 가능하지 않은 것들을 꺼낼 수 없을 것 같은 날들이 약솜처럼 소모되고 있다. 가능하지 않는 것을 위해 가능한 산책을 길게 한 저녁 아무 느낌도 없이 미백크림을 바른 다음 소리 없이 소리 지르고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목구비에 집중하고 있지만 지금은 통화중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려도 서로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겠지만 아무 곳에서나 불쑥불쑥 나타나는 열 많은 너의 표정과 대립하는 여름은 길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저녁 소파에서 꾸는 꿈도 길어 자꾸 식물의 잎이 하나씩 떨어지는 공간 속에서 긴 시간 혼자 있다. 소화제를 먹는다. 날짜는 보이지 않지만 눈을 들어 너는 지금 어디냐고 묻고 있는 갈색수첩과 수분이 많은 로션과 카페 구석에 흡연실을 홀로 남기고 여름은 바다로 갔다. 추억은 죽지 않고 기미 밑에 쌓여 지금 통화중을 기다리고 있다.

 

2017시현실가을호

 

 

 

 

 

 

 

아무도 없습니다

 

 

  하루의 빛과 함께 당신의 얼굴을 생각하고 지냈습니다. 발산동의 저지대는 아직 침묵에 싸여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우리는 우리의 일부가 아닌 듯 불가능이 없는 약한 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밤 열두시 이후를 사랑하십니까. 모든 이야기의 배후에 있으면서도 없는 이야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한 그런 이야기는 결코 아닌 이야기. 겨우 잠이 들었다가 잠이 깬 그런 밤의 모든 것을 모른 체 하며 오늘의 날씨, 잘 지내지요. 허리를 염려한 적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불면을 염려하다가 전생을 다녀온 심부름꾼 같은 얼굴로 비를 기다리지만 나도 나를 기다리는 시간, 우리의 평화는 추상적이지만 나쁘지 않습니다. 정말 나쁘지 않습니다. 언제가 말을 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한 말 속에는 얼룩이 있고 거친 질감이 있는 세계였습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런 세계를 믿게 되었습니다. 신에게 영감을 받고자 광란 상태에 빠질 때까지 맹렬히 담뱃대를 빠는 어느 사제의 이야기가 쓰여 있는 책도 믿게 되었습니다. 사제의 흥분은 가라앉고 조금씩 잠이 줄어들었습니다. 당신의 얼굴은 참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밤 열 두 시를 염려해 본적도 있지만 우리는 이미 열 두 시를 넘어섰습니다. 거뜬히 넘어섰습니다. 누군가 말을 합니다.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2017문학들가을호

 

모르는 마음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길에서

혼자 말하는 습관이 생긴다 나무가 사라진다

나무속에 있으면서 너 인줄 몰랐다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어둠인 줄 몰랐다 표현이 부족했지만

모두가 부족해서 서로의 내면만 오래 바라보다

밤의 마술쇼를 바라보던 때가 있다

그 때의 화두는 단연 우주였다

고양이 한 마리를 우주로 보내자

예측했던 모든 것이 뒤집혀지는

그것이 미래라고 고양이와 말한다

나뭇잎은 비스켓처럼 부서진다

고양이는 따뜻한 구석을 찾아 구석을 떠났다

사람에게 물어 풀어지지 않는 오해는 서쪽에 묻었다

베스트 이비인후과 쪽에서 흰 성분인 바람이 온다

눈을 비비면 땅에 모르는 겨울이 왔다

너와 함께 있으면서도 너를 몰랐다

우리는 이미 너무 무거워 우회가 되지 않는다

신발을 벗어 들고 네가 모르는 마음에 숨어 살다

고양이의 눈과 마주쳤다 귀족에게 홀렸을까

출생 년 월을 물었다 고양이가 울었다

 

2017시와 반시겨울호

 

 

 

슬픔과 상관없이

 

  그해 겨울, 우리를 설명할 수 있는 아이는 결코 우리 속에 없었다

  땅에 떨어지지 않는 별과 늙지 않는 파도 소리를 타투처럼 몸에 그려 넣었다

 

  이 골목과 저 골목에 누런 오줌을 누며 작은 손거울 같이 차가운 냉담으로 펼쳐지지 않는 우리의 미래를 잠깐씩 돌려 읽기도 했지만 우리는 대체적으로 친구의 얼굴을 상상하며 골방을 견디었다

 

  슬픔과 상관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며 주먹을 탕진하는 데에 골몰했으며 어미와 아비는 바위처럼 검어 땅에 뿌려진 씨앗처럼 반짝이는 어둠을 조금씩 나눠 먹으며 근육을 키웠다 벌판을 쓸고 온 조각난 바람으로 남아있는 허기를 채웠다

 

  가끔씩 담장을 건너가는 고함소리로 인해 일찍 예감한 생의 분열을 끌어안고 잠든 아침이면 산 너머 산을 함께 건너온 자가 죽은 자였다는 극적인 이야기들이 마을에 흘러 다녔다 한 낮에는 굵은 햇살이 황금구렁이처럼 꽃밭을 기어 다녔다

 

  변치말자는 편지 같은 일기를 쓰는 일 외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변할 것 같지 않는 창백한 얼굴 속에 감춰진 운명으로 누군가는 갑자기 멀리 떠나기도 하였지만 우리는 무너지지 않았다

 

  내 다리가 네 다리에 닿아 있었고 그 다리는 또 다른 체온에 닿아 있었다 어두운 색이불 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다 조용해진 우리는 눈이 꽃처럼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모든 길이 지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백지장이 될 때가지 숨을 죽이고 미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2017시현실가을호

 

 

수상소감

 

   꿈을 꿨다. 나는 바다와 가까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었지만 그 바다와 나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바다에 대한 나의 애정은 특별한 것도 특별하지 않은 것도 없다. 그런 바다에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일렁이는 파도가 점점 물의 수위를 높이고 있었다. 발 딛고 있는 모든 곳이 곧 물에 잠기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래벽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이제 물에 잠기지 않은 공간은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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