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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상반기 <시현실> 신인상 당선작 / 이강, 김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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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10회 작성일 18-03-3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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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시현실> 상반기 신인상 당선작 - 이강, 김예하

 

 

십정동, 붉다 4

 

이 강

 

 

    붉은 조명 아래 마디마디 잘린 소들이 웅크리고 있다 내장을 꺼낸 배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육질을

발라낸 갈비뼈는 건너편 아카시 군락을 조이고 있다 언제부터 아카시 나무는 저 많은 소가 도살되는

것을 보았을까 아카시 흰 꽃은 소 갈비뼈에 기생하며 소의 울음을 보았을까 소의 혼령이 자신의 뱃속을

 들여다보며 꽃을 후후후 분다 꽃이 허공을 날다 우물 표면을 덮는다 태양은 흰 꽃을 자글자글 달구었다

 뼈는 소리 없이 쿨렁였다

 

    쇠 방울 소리를 따라 돋아난 풀꽃들

 

  소나기가 쏴아쏴아 허공을 후려친다 소의 무리가 십정동十井洞을 빠져나간다

 

 

 

 

발굴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 땅을 파고 흙을 넣었다 축축한 흙을 단단하게 다졌다 유물을 발굴하는 것처럼 그는

은밀하게 붓질을 했다

 

  그는 탑을 발굴하고 골목을 발굴하고 아버지를 발굴했다 체구가 작은 아버지의 뼈 사이로 살갗이 썰물처럼

쓸려갔다 뼈와 뼈 사이에 핀 검은 곰팡이 꽃에 봄볕이 쏟아졌다

  살갗은 먼지가 되어 흙과 섞였으리라 정강이뼈를 추리며 그는 삭은 마디를 찾았다 아버지가 나에게 해 준 게

뭐가 있어요? 그는 정강이뼈를 바닥에서 떼어냈다 가장 작고 부드러운 붓으로 뼈에 붙은 아버지를 쓸어냈다

  정강이뼈에서 검은 꽃들이 흩날렸다

 

 

변형, 돌출, 평면

    -에셔의 도마뱀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나무에 앉아 있었다

언어들의 뒤틀림이 이명처럼 들려왔다

 

보도블록 틈에서 개미가 기어 나온다

그 밑 어딘가 얽히고설킨 개미들의 길이 있으리라

나는 에셔의 도마뱀을 생각한다

평면이었다가 오른쪽 다리와 머리 부분이 돌출되면서

피부에 무늬가 생기는 도마뱀

내가 살았던 슬레이트 지붕은 그의 등과 흡사했다

그 밑에서 나는 오랫동안 뒤척이며 잠들곤 했다

 

개미가 보도블록을 기어오르려 몸을 세운다

도마뱀의 뒷다리가 법문을 오르고 있다

변형되는 에셔의 도마뱀처럼

 

나도 그렇게 진화되어 갔지만 나는 늘 신경쇠약이었다

개미 한 마리가 죽은 말벌을 끌고 온다

말벌의 날개는 죽은 지 오랜 듯 찢기고 헤졌다

 

도마뱀은 변형된 구름 같은 시간을 내뿜으며

위태롭게 자신의 흔적을 찾는다

 

말벌의 찢긴 날개가 보도블록 사이로 끌려 들어간다

 

도마뱀이 돌출 이전으로 들어가고 있다

다시 평면이다

 

 

결을 떼어내는 일

 

 

  천막이 해를 막았다 가게는 그늘에서 약간 비킨 곳에 있었다 또 다른 골목이 시작되는 곳은 한가했다 어둑한

시간이면 나는 나뭇결에 흐르는 물의 방향을 만지작거렸다 대패로 나무의 보폭을 얇게 떼어내며 그 속의 달을

그리워했다 나뭇결 같은 소의 고운 결을 떼어내던 사람을 생각했다

 

  그는 소의 붉은 결을 떼어내는 것에 집중했다 그 일은 먼 달을 기억하는 익숙한 일. 생채기 난 곳이 쓰라려서

더듬는 일. 그 속에 있던 햇살이 튕겨서 찔린 어느 한 낮을 기억하는 일. 소의 표면에 있던 햇살이 골목의 무게를

잠시 깨다가 통과했다 양은그릇에는 소의 피가 둥글게 담겨 있었다 더 이상 붉을 수 없어서 검은 소의 피가

흔들렸다 결과 결 사이에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골목 끝을 또 태양이 비켜가고 있었다 각질 같은 먼지가 점점이 날리고 있었다

 

 

 

산수유 피는 마을



    

   마을로 가는 길은 뱀의 몸을 닮았다 나는 지금 그 허리께를 더듬고 있다 뱀처럼 차가운 봄비가 나무에

덧칠하며내린다 나무들이 부르르 떨며 천천히 초록을 꺼내 놓는다 

  파란 페인트칠한 대문 앞에 젖은 내가 도착한다 아직은 정정한 대문에서 노인이 나온다 나는 뱀의 몸을

더듬다 온 뱀꾼처럼 멋쩍게 웃는다 먼지 쌓인 마당이 나를 안내한다 처마 밑에 백열전구가 커다란 물방울

처럼 매달려 있다 

 뒤뚱거리는 탁자 위에 막 도착한 햇빛이 반짝이고 참죽 새순으로 부침개를 해 온 노인의 머리에 시간의

먼지가 희다 

 

  내가 노래 한번 해볼까, 노인의 주름이 화사해진다 노인은 사람이 그리울 때 뱀의 능선을 내려간다고 했다

좀체 해가들지 않는 방에서 홀로 불렀던 묵은 노래가 산수유 열매를 빨갛게 익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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