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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열린시학>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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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9회 작성일 18-08-25 14:24

본문

                 

봄의 혀 외


신재희

 

 

얼어붙은 강

입을 봉하지 못한 구멍 사이로 나지막이 들리는

물의 맥박,

 

구멍 하나만으로 겨울의 심장을 만질 수 있다

 

새들이 날개를 펼쳐 놓은 듯

살얼음 위로 깃털문양이 느린 속도로 멈추었다 어느 날 불시착한 바람의 날개일까

 

남쪽을 향해 달아나던 물길이 뒤돌아본 흔적이 있다

 
바람의 결이 합쳐진 물의 결

마음이 마음을 껴안은 흔적은 쉽게 녹지 않는다


계곡을 지나 강의 끝 지점에 모여드는 순간, 물빛 따라 방향을 바꾸는 허공도 살여울에 부딪힌다


봄의 혀가 닿은 자리


얼음 속에 숨은 긴 혀가 우렛소리를 품고 있다



어둠의 문서

 

 

  수억 년 전 어느 숲은 쓰러져 화석이 되었다


  까맣게 탄 증언을 쏟아내던 식물의 입자가 동굴을 베고 누웠다 시간을 거슬러 최초로

마주친 건 곡괭이의 거친 호흡이었을까


  뼈대를 깎아 만든 수천 미터 지하에서 채굴한 화석은 한순간 시대에 밀려 빛을 잃고,

기울어진 옆구리처럼 조각조각 부서진 암석 덩어리는 조형물과 함께 묻혔다


  허물어진 무덤처럼 애착이 가는 태백, 흔들거리는 관절은 소통을 접고 폐광에는 갈 곳

잃은 바람만 들락거린다


  남아있는 흔적만 부둥켜안고 긴 잠을 자는 적요, 언제쯤 저 어둠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수백 년 골진 생을 퍼내다 땅속에 갇혀버린 어둠의 문서


  똑, 똑, 목을 축여주던 암반수가 물소리로 어둠을 진술하고 있다



주저앉은 달

 

 

이른 봄 찬바람만 드나드는 들녘,

철수하지 못한 마침표가 있다

 

기어가던 손과 외줄을 끌고 가던 발을 버렸다

들판을 끌고 가던 무릎들,

무성한 그늘은 시들어 한 아름 보름달은 품에 안겨 사라지고


낙오된 자리에 달은 뜨지 않는다

 

달의 뒤편처럼 쓸쓸한 표정이 푸른 피를 다 쏟아내고

끝내 들켜버린 패잔병처럼

불안 한 덩이 머춤하다

 

변기 속에 아기를 넣고 그 위에 쓰러져 죽은

어미의 모성이 불의 혀를 밀어냈듯이

 

북데기 속 썩은 호박을 들추자 어린순들이 파랗게 돋아있다


어미의 진액을 빨아먹고 몸을 연 움싹

곁눈질하던 헛뿌리들이 두꺼운 신발을 햇살에 벗어버렸다


늙은 호박

허물어진 자리 수십 개의 달이 돋았다


훌라후프 공식

 


결심이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채워주지 않으면 쉽게 지치는

둥근 원 속에 갇혀 사는 자음과 모음


돌아가는 굴렁쇠도

바람을 타는 부메랑도

회전하는 방향에 따라 속도가 바뀝니다


체중계는 하루치의 과장된 말도 받아줍니다

몸의 균형으로 혼자 즐길 수 있는

트레이너가 필요 없는 놀이는 인내를 요구합니다


언젠가 밤하늘에서 마주친 보름달도 허리를 돌려

야위어 가고

달무리 속에서 훌라후프를 돌리다 실패한 당신도

저 원 속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머리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간단한 기구들은 몸의 형상을 꿰뚫고 있어

외출을 부추깁니다


삶도 사람도 끈기가 없으면 한쪽으로만 기울어진다는 걸

잘록한 허리가 대신 말해 줍니다

우린 저 공간의 공식을 너무 쉽게 받아들입니다


잠시 방심하는 동안 동그라미가 흘러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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