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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회 박인환 문학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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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5회 작성일 18-10-1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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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작 >

 

 

발광고지(發狂高地)  2

 

  서윤후

 

    

버려진 산소호흡기를 핥다가

어린 고양이 입김 서리는 것을 본다

 

무언가 닦아내면 어떤 것이 사라질 것만 같다

이를 모든 것이라고 부르는 아른거림만이

유일한 궁금증

 

, 또 지리멸렬한 날씨

 

무너진 성곽이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

잘 닦아놓은 미래가 있었다

모두가 돌아오게 되는 반환점으로

숨 쉬는 것을 가여워하게 되는 전개를 펼치고

그 사이사이의 안개

 

오리무중의 발진이다

 

창광하는 밤벌레들처럼 거리로 나온

아침 인간의 얼굴을 구경한다

전망할 수 없는 표정들에 휩싸여 있으면

어린 고양이의 숨 같은 건 별로 중요해지지 않는다

 

, 또 어두워지려는 심장

 

들리지 않는 것을 어둡게 하면

꿈 밖으로 나와 소리치는 빛

환호는 환희의 별미라도 되는 듯이

인간을 재주넘는 (영혼, 마음 다음에 생각나는 것)의 취미활동

 

무덤가의 구구절절한 침묵을 듣는다

이곳 사랑은 절판된 기억으로 세워져 있다

그들은 모두 옛사람 같다

세련된 스카프를 해도, 영어로 된 개 이름을 불러도

 

죽음이 신간처럼 여전히 새롭다는 사실은

새로울 게 없다

푯말의 역사를 읽는다든지

소문이 눈앞 미래로 유인한다든지 하는

 

장례식장에 막 납품된 수육의 뜨거운 김

아무도 배고프지 않은 곳에서 해치워나가게 되는

 

무엇이 신비로운 감옥을 짓는가

그 안에서 알고 싶어 하게 된 것은 무엇인가

 

, 또 아름답기 위해 사라지는 것들

 

어제 입었던 옷을 입는다

이변이 없는 한 오늘 비가 내리지 않을 것 같다

몇 개의 부음을 화면에서 쓸어 넘긴다

 

열몇 개 와이파이 중에

비밀번호 들어맞는 게 없다

매일 두절되어도 끝나지 않는 것이 있어

 

가장 어두움 중에 가장 어둡지 않은

그런 머리색을 가진 학생이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전속력으로 달려 나간다



의문과 실토

 

 

()의 자연사만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뿔을 기른다는 건 뿔을 지켜보는 믿음에서 비롯되지요

상상 속에서 겨누고, 맞서고, 찔리다 비기는…… 허깨비들의 연속극처럼

 

죽은 자의 어둠은 어디로 다시 기어가

인간 행세를 할지 의아하군요

침묵이 내전(內戰)을 끝내지 않아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날 때까지 시궁을 조성하니까

 

인간의 무고한 슬픔을 감상하기 좋은 날이 찾아왔군요

 

이 슬픔으로 굳은 거푸집은

집안 마당의 포도나무와 갓 태어난 아이와 마루 밑 고양이의 하품까지도 빚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뿔이

서로의 허점을 겨누며 파고들 때야 인간은 빠르게 번성하고, 조물주는 다른 재물을 찾아 떠나더군요

쓰다듬을수록 뿔은 덧나기 쉽고

 

슬픔도 기쁨도 알 리 없을 만큼

어리석고 깨끗한 영혼을 물색하던 신()의 노고가

우산 끝에 맺혀 있는 걸 봅니다

 

인간이 지칠 때까지

뿔 같은 비가 뿔 같은 비를 적실 때까지

   

 

신비와 무질서

 

    

오랫동안 바다를 걷고 돌아와 무심코 콧잔등을 쓸어보았을 때

흰 가루가 묻어 나왔다

나는 알 수 있어도 궁금해서 혀로 핥았다

 

정희에게

스무 번째 생일 축하해.

우리 종로에서 삼계탕 먹은 날. 1997. 7. 15”

 

간밤의 독서가

헌 책방에서 고른 시집에 적힌 서명으로 사로잡힐 때

 

복도의 발자국 소리와 열쇠끼리 부딪치는 소리

당직 경비원 휘파람까지

흔들어보면 알 수 있었다

내가 손에 꽉 쥐고 있는 게 무엇인지

 

태풍이 북상하면 유리테이프를 크게 찢어

가위표 모양으로 창문에 붙이던 사람이 생각났다

뭐해?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하면……

재주 좋게 살아남은 생활이 있었다

겨울 동안 창문에 붙여놓은 완충제를 거두진 못했다

겨울은 금방 또 올 테니까

 

바람 빠진 게 된다는 것

오랫동안 키스를 나눠도 불어넣을 수 없는

그런 활력은

뿔 대신 수염을 기르는 순록의 것이 아닌

오늘 도착하지 못한 나의 것

 

친척 결혼식만 다녀오면 한숨이 늘어나는

엄마의 재주를 알지 못하였다

쏟아질 듯 꽉 찬 책꽂이가

반질반질한 돌을 모으던 죽은 아비의 장식장처럼 보인다면

 

나는 걷는 게 어색해 자주 멈추게 되었다

잘못 날아온 철새를 알아봐도

정희를 알게 되었어도

달라지는 게 얼마 없듯이

 

알고 있어서 더는 해보지 않는 게 있었다

알고 있어도 궁금한 일들이

빠르게 멸종하고 있다는 것도

 

불분명한 마음마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두 눈을 뜨고도 믿지 못했다

 

창문에 묻은 손자국 하나가

오늘 밤 가장 낮은 바닥을 짚은 것 같다



  

                 ------------

              서윤후 / 1990년 전북 정읍 출생. 2009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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