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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시사사> 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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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512회 작성일 15-07-06 11:27

본문

뱀의 길목 외

 

정다인

 

  

   나는 어제와 내일의 사생아, 또아리를 튼 문장에서 그믐을 본다 눈먼 뱀의 독처럼 가장 쓸쓸한 고백을 중얼거리면서 나는 문득 자욱해졌다

 

   잃어버린 것과 잃어버릴 것들 사이에서 발끝을 들고 먼 곳을 기웃거린다 눈물로 투명해지는 구름의 시제를 등에 업고 나는 흙처럼 젖었다

 

   오래된 은가락지처럼 검어진 자폐의 시간이 굴러간다

 

   내 몸의 길이만큼 구겨졌다 펴지는 길 위의 무늬가 지워진다 작은 흐느낌에서 시작된 바람이 환승자의 얼굴로 두리번거렸

 

   자신의 허물을 찾아 돌아오는 여정은 비늘도 함께 버리는 일이라고, 기억나지 않는 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배를 바닥에 대고 웅웅 울리는 내 안의 소리를 들었다

 

   잡풀을 헤치고 자라난 음절들이 두 갈래의 혀처럼 서로를 져버린다 하늘을 오래 바라본 사람의 얼굴을 뚫고 계절은 온다 몸의 마디를 지나 비로소 꽃이 피는 표정을 나는 배우고 있다

 

   속 울림이 맑게 흐른다.

 

   길어지는 몸은 시간과의 간음이었으므로

 

   나는 둥글게 나를 길들인다 가슴을 쓸고 올라오는 문장의 눈동자에서 먹지를 댄 그믐이 번진다 세상의 가장 어둡고 차가운 흉곽 속으로 나는 또 기어간다

 

 

 

  생을 떠벌리는 건 입김을 삼키는 것처럼 무연하다. 고개를 들 때마다 이방의 혈서를 들고 너는 쏟아진다.

 

  헝클어진 호흡이 나를 길고 짧은 띄어쓰기로 나눌 때 너는 피었다 진다. 아무것도 맺히지 않은 꽃가지 위의 유랑자들. 너는 소멸과 소멸 다음의 중간 어딘가에서 씨방을 부풀리고 나는 기다림의 자세로 가늘어진다. 침을 삼키는 소리를 듣거나 뿌리의 행방을 이야기할 때, 너는 물결로 흔들린다.

 

   공기의 미간이 잠시 좁아지는 찰나

   내가 눈꺼풀을 덮는 찰나

   우리는 그 찰나 속으로 스며드는 얇고 얇은 박엽지처럼 투명해진다.

 

   소금쟁이의 발에도 걸리지 않는 호흡을 주고받으며 너는 지고 나는 기운다.

   말로 채워진 머리를 너의 가지에 기대고 피지 않는 시간을 생각한다.

 

   흙에서 생겨난 것들이 그렇듯 흔들림은 어딘가로 향한 발돋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오래된 배웅이다.

 

   향기는 너의 것이 아니었으며, 기다림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간격 속으로 꽃잎을 떨어뜨리며 지혈되지 않는 마음을 들여다본다. 어디까지가 흔들림이며, 어디까지가 바람인가.

 

   시간의 실마리를 물고 날아오르는 유랑자들은 너에게서 날개를 빌렸다. 접었다 펴면 낯설어지는 나는 어디로 번지고 있을까. 오래 흩날리는 하혈의 서신들.

 

 

두 개의 기면 

 

   1

 

   기억은 물벼룩처럼 나를 집요하게 헤엄쳐 간다

 

   가늘고 짧은 초침이 파문을 만들고 눈꺼풀이 열린 수면 위로 모든 것이 지나간다 흔적이 흔적을 들추는 충혈의 시간, 유실된 것들이 얽혀 물속은 흐느적거린다

 

   살아온 시간만큼 긴 더듬이를 가진 나의 방언들이 이름도 없이 살고 있는 물속에서 작은 발을 꼬물거린다 내장 속에 갇힌 사소한 인기척을 누군가 투명한 피부 속으로 들여다본다 거긴 유속이 서서히 멈추는 시간, 고요히 달이 떠오르면 수면 위로 몰려드는 작은 물벼룩들, 가늘게 내뱉는 가시의 호흡이 내 몸을 서서히 가라앉힌다 

 

   2

 

   옆모습은 타인의 것, 나의 더듬이를 누군가 가만히 만져보는 일

 

   우리라는 말 속에 살고 있는 작은 벼룩이 꼬물거리는 오후, 울어본 적 없는 눈으로 나의 옆모습을 수소문한다 누군가의 눈동자를 빌려야 하는 시간, 나는 개의 털 속에서 온기를 찾는 벼룩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길을 따라간다 떠나온 곳의 조도를 조금 더 어둡게 하고 해가 길게 따라온다

 

   누군가, 누군가라는 말을 기도처럼 읊조리며 옆모습도 없이 나는 눈부시다

 

   버려진 개의 다리에 실려 흘러가는 작은 움직임들, 팔과 다리와 더듬이와 눈동자와 길어진 혀를 움직이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건 돌아보기의 연속

 

   목격되지 않은 순간의 발버둥, 그건 타인의 고개를 먼 곳으로 돌리게 하는 엄지를 치켜들고 홀로 비루한 생을 초대하는 것

   엎드려 피를 빠는 벼룩의 거룩한 허기를 온몸으로 기억하며 길은 휘어져 있다

 

   이제 눈을 감고 더듬이를 버려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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