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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최치원신인문학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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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801회 작성일 15-09-08 09:39

본문

부불리나의 침대 외

 

지관순

 

오르탕스 부인보다는 부불리나, 그렇게 불러주세요

무슨 나팔 이름 같기도 하지만 이것은

내 허리에 감겼던 깃발을 기념하는 일이지요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그를 기다리며

새벽바다로 간 침대를 모른 척하기 좋은 이름이지요

 

조르바, 아아 나쁜 새끼

이건 앵무새가 그를 부르는 소리

그가 꼭 나빠서 그런 건 아니에요

과부들의 침대가 며칠 결혼할 수 있는 권리가 있듯이
그도 이별하지 않고 떠날 권리가 있죠 

 


살아간다는 것이 가벼운 먼지처럼 느껴지면

함께 낡아온 침대 귀퉁이를 쓰다듬으며 외쳐요

아가멤논호여. 이제 출정이다

바다로 간 침대는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파선되기 직전에야 돌아올 수 있었지요 그러나

 

떠난다는 건 안전을 확인하러 가는 건 아니고

산다는 것 또한 별일 없이 살기 위한 건 아니니까요

밤이면 달은 선인장 같은 내 등과 한쪽만 따뜻한 침대를

저울에 올려 놓고 조롱했어요

외로움을 계량하는 바늘이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몰라요

창피했지만 이젠 그것도 옛일,

죽음의 입김이 나를 휘발시키려 하네요

시간은 더 매달려 있고 싶은 과일을 떨어뜨리고

합의 따위는 없어서 늘 소송에 휘말리지요

 

내 소원이 뭐냐구요

그건 별들이 차가운 발을 위로하러 이불 속에 들어왔다가

내 침대에 두 명이 산다는 것을 알고 놀라 캄캄해지는 일

 

조르바, 이 나쁘은.

쉿, 앵무새여 부디

 

육지가 보이네요

이제 조금 있으면 정박하겠군요 다행히 난 파선되지도 않았지요

그러나 이상해요

멀미가 막 시작됐거든요

 

 

새 울음 감별법

 

호로로공장이 가동되기 위하여

배추흰나비애벌레는 아침 일찍

꼬물거리는 허리와 솜털을 납품했다
살구나무 꽃은 눈이 닿을 때마다
옷을 한 겹씩 벗어 흥을 돋우었고

주파수 맞지 않는 라디오는

좁쌀을 굴리며 리듬 박스를 틀었다

굴뚝에선 연기가 꿀렁꿀렁 흘러나와

하늘로 전단지를 뿌렸다

 


한때 이 공장 연구실에선

신제품을 개발한답시고

노래와 울음을 분리시킨 적이 있었다

입을 벌리고 있다는 점에서,

전선줄이나 나뭇가지 가설무대에 올라갔다는 점에서

종일 노래만 부른 날 저녁엔

참기름 띄운 노른자를 호로록 넘겼다

온몸을 들썩거린다는 점에서

다 듣고 난 후 사람들이 박수를 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울음만으로 출장 갔던 날 저녁엔

사라지지 않는 애조를 밤새도록 헹궈냈다

 


노래 사이에 낀 울음은 노래처럼 들리고

울음 사이에 낀 노래는

울음처럼 들리는 결함이 발견됐지만

입맛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만 믿고

시중에 내놓았다가 전량 리콜하기도 했다

한동안 앙코르의 환청에 시달렸다

 


누구는 구조의 문제라고 하고

누구는 기분의 문제라 했다

후일 연구일지 구석에서 낙서를 발견했다

울음인지 노래인지 감별하려는 바보들아

그건 간단하다

밥 먹기 전엔 울음, 밥 먹고 나면 노래!

 

 


연잎 치마

 

여름 내내 감침질한 항아리치마
줄기가 꺾어지자

치맛단 한 올 한 올 풀어 헤치며

물로 풍덩 뛰어드는데

 

치마 안에 시쳐둔 노을이 쏟아지는 거라

알을 슬고 간 잠자리 체위가 미끄러지는 거라

침 꼴깍 삼키고 있던

쇠물닭 발자국 흩어지는 거라

멋도 모르고 물속이 두 폭 환해지는 거라

 


물살이 비칠거리며

낡은 숨소리 부축하러 왔다가

개구리 울음소리로 꿰맨 솔기

쩡 갈라놓고 가는 거라

 


물 밖에서 흔들리던 거미줄 하나

놀라서 끊어지는 거라

대각선으로 버티며 졸던 바람도 툭 끊어져

만국기처럼 펄럭거리는 거라

멀리서 날아가던 쇠목테갈매기

영문도 모르고 중심을 잃는 거라

 

항아리치마 접시치마 되던 날에

 

 

 

감정 산책

 


산딸나무 꽃이 접히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양산을 펴지 않았고

파란 하늘이 묽어질까봐

수돗물을 세게 틀지 않았다

 


보도블록의 금을 밟으면 어젯밤 꿈이 출렁

중앙선을

툭툭 차며 걸었다

 


까치발을 해도 까치는 나를 모른 척해서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나에게 안녕?

 


내 목덜미가

햇빛 잘 드는 창이 될 수 있다며

개미들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었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

바람은 구름보다 늦게 출발했으나

내 입 속을 경유해도 되는지 묻지 않았다

혀가 마를 시간이 필요했다

 


검정색 페인트 냄새가 시간을 불러 모았다

다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어둠의 실금으로 몰려가 쭈뼛 서고

젤리로 만든 그늘은 자꾸 벽에서 흘러내렸다

 

물고기가 뜬 눈으로 뒤척이는 동안

나는 하나의 이름도 무거워

산딸나무 꽃 귀마개를 샀다

 

모든 감정을 침대에 넣고 잠갔다

거미줄에 걸린 잠을 잤다 

  

       
 

          


 

뿌리야,

이름이 잘못 불릴 때 뿔은 발바닥이 간지럽다

양분을 먹고 산다는 점에서

늘 곤두서 있다는 점에서 같은 가문이지만

뿔은 물구나무 서 본 일이 없다 

 

뿔은 감정의 기상청이어서

흐려질 때마다

뿌우뿌우 각적을 불어

눈물을 피신시키고 

 

무릎이 턱을 당겨와 골몰하는 저녁

사다리를 내려

지붕의 느낌을 산책시켜 주곤 한다

 

구름과 밤늦게 어울려 다니다가

비의 기분도 한 권 읽어보다가

간혹 황소자리와 맞짱 뜨는 밤

기진맥진해지는 잠의 시간을 좋아한다

 

물론 잘못 불려진 이름을 꿈꾸는 밤도 있다

한 칸씩 밟고 올라오면 뿌리도 뿔이 될 수 있을까

한 칸씩 내려가면 나도 뿌리가 될 수 있을까

 

이런 밤에도 접히지 못하는 뿔은
물구나무 선 꿈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뿌리 닮은 뿔이 태어날 때까지 

 


지관순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제 32회 마로니에 전국여성백일장 우수상 수상.

제 15회 안산 전국여성 백일장 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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