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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상반기 <시와 반시> 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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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407회 작성일 16-04-0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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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상반기〈시와 반시〉신인상 당선작 / 문희정

 

심사위원 : 김영근, 류경무 

      

목뼈들 (외 4편)

 

네 농담이 어제와 같지 않았다

꿈이나 꿔야지, 나는 입을 오므리고

모로 누운 너의 등에다

씹다 만 껌을 붙여 두었다


허우적거리는 너를 보았는데

너는 너무 멀었고 나는 웃고 있었다

웃음은 계속되었다

 


긴 잠에서 깨어

다시 그 껌을 씹다 보면

나는, 아주, 오래, 걸어왔구나,

 


창 너머로 낡은 다리를 보는 걸 우리는 좋아했는데

그곳을 찾는 건 떨어지려는 사람뿐이었다

 


여름이었고 마당에 작은 목뼈들이 흩어져 있었다

햇볕이 목뼈들을 조이고 있었다

 


가능한 모든 장소에서 농담이 흘러넘치고

비가 내릴 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그들은 고요를 이어갔다

 


한쪽에서 누군가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도 여름이었다

하품을 하고 아카시를 꺾고

사랑한다 안 사랑한다

사랑한다 안 사랑한다

느리고 더운 바람에도

잎사귀는 모조리 날아가 버려서

꿈이나 꿔야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아무도 없고

너의 등짝 위엔 잇자국들만 선명하다

 



 

 


잠긴 채로 고장나버린

하드케이스 그것을

대부분 버려두고 이따금 썼다

테이블입니다 의자입니다

발길질을 부르는 돌부리입니다

한숨을 쉬다 보면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는 구멍

어머니는 그것으로 틀어막았다

먼 곳을 바라보면 아름다웠다

모르는 것들이 반짝이고

고요한 것은 변함없이 고요했으므로

어머니는 밤새 노래를 불렀다

빠짐없이 칠해진 노란 바탕처럼

우리는 노래를 따라 불렀고

모든 노래는 돌림노래가 되어야 합니다

너덜너덜해진 귀가 묵음을 얻을 때까지

두드리는 소리

들리면 돌아보지 않고

큼직한 보폭으로 무섭게 걷고

붉어진 발끝으로 우리는 차고

발톱 빠진 살덩이가 빳빳하게 설 때까지

어머니의 고음은 들리지 않았다

돌부리입니까

뭉쳐진 밥입니다

오래 고인 물이기도 합니다

뭉툭해진 모서리로 앞 다투어 뭉개고

비질비질 우리는 웃는 겁니다

그러면 또 어디선가 두드리는 소리가 끼어드는 겁니다

 


어루만지는 높이


 


계단을 오른다

멀어지는 머리를 세고

차가운 난간을 쓰다듬고

심장처럼

자신의 무게를 가늠하는

너무 익은 감처럼

 


계단을 오르며

내려다보면

내일이 오늘을 밀어내는 것이

하나가 하나를 어루만지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어루만지는 시간은

맥박과 맥박 사이에도 있어

 


숨죽이지 않고도

나는 이토록 고요해져서

바람이 내는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조금씩만 밀어내기로 한다

무른 과일을 씻으며 발 끝에 힘을 준다

 


소리를 불러낸다는 건

바람이 지은 계단을 당겨오는 것

그것은 한없이 말랑하고 깊어

계단에 맞춰 흥얼거리며

나는 없는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고

 



창문의 쓸모

 

오래된 냉장고에게 인사한다


 

뼈밖에 남지 않은 아버지였는데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사랑에 빠졌다고 떠벌리고 다녔는데

자꾸만 꿈에서는 죽은 아버지와 섹스하는 꿈을 꿨다

 


모르는 손을 따라 내 손이

북두칠성을 가리키고 싶어서

 


애인이 아는 숲으로 갔다


 

햇빛과 바람을 들이지 않고

난간의 화분틀을 버려두어도

애인의 얼굴은 돌아오지 않았다


 

말이 많은 애인을 찾아다녔다

혈색이 좋은 목소리를 쫒아다녔다


 

창문은 언제든 열어젖힐 수 있지만

창문을 통해 걸어 나갈 수는 없는 거다

무릎을 안으며 아버지는 중얼거렸다


 

다음 사람에게

냉장고를 물려주고 인사나 받을까

나는 매일 따라가 누웠는데


 

백색소음에도 뼈가 만져지는 날이 있었다

기대어 있기 좋아

난간 위에 올라 내려다보길 두 번 세 번

현기증이 났다

 


실화


 

폐타이어 산 위에서

무릎이 너덜거립니다 달아난 굽처럼

검은 날아다닌 것들을 바라보며

남은 손이 남은 손을 맞잡습니다

 


눈물이 묻은 자지러지던

한 쪽의 혀가 다른 한 쪽에 꼭 맞아서

사방으로 환하게 열린 뼈였던

눈에 눈이 찔리던

 


나는 원래 물컹거리는 덩어리였을 뿐인데

 


곁에 없다는 건 어떤 감정을 뜻하는지

웃는 얼굴이 자꾸 보여서 나는 좋은데

단단하게 닳은 고무를 딛고

서서히 무수히 일어설 수 있는데


 

어느 쪽이 착각인 것일까요

바닥과 바닥은 이리도 능숙히 서로를 밀어내는데

 


집게 차가 빠르게 자라나고

죽은 물새 떼 죽은 군함이 깊어집니다


 

나는 가장 먼저 웃는 얼굴로 떠 있습니다

이불과 중력은 참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군요

 


언제부터 우리는 이곳에 있었던 걸까요

 

—————

문희정 / 부산 출생.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시와반시》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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