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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문학과사회> 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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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606회 작성일 16-06-1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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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문학과사회 신인상 당선작

       

열 두 살이 모르는 입꼬리 (4)

강 혜 빈(1993년 성남출생, 서일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열두 살이 모르는 입꼬리

 

 

숫자를 좋아하는 흰 토끼는 편지를 써 오라고 했어
거짓말을 완벽하게 훔친 아이에게 내주는 특별 숙제
말랑말랑한 지우개 똥 연필 끝에 꾹꾹 뭉쳐
사랑하는 선생님, 저희가 잘못했대요.

 

시험지 위로 진눈깨비가 내리는 교실

 

무서운 이야긴 속으로 해야 더 무섭지
칠판이 두 쪽으로 갈라지고
그 속에서 모르는 아이가 빳빳한 채로 상장을 받고
종례가 끝나면 답장이 왔어
아니, 너희가 아니라 너지.

 

안으로 접힌 귀 토끼의 가장 단순한 장점
만져보고 싶어 3분의 1로 나뉜 귀
왜 우리들은 밋밋한 귓바퀴를 가졌지?
좀더 수학적으로 생기질 못하고

 

어렴풋이 웃고 나면 어른에 가까워질까?
토끼의 진짜 얼굴은 손목에 새겨놔야겠어
기다리는 미술 시간은 오지 않는데

명치를 찌르면 실내화가 미끄러워지는 마술
복도 끝과 끝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봐
부풀어 오른 선생님, 시리도록 하얀.

 

뒷문에서 굴러 나오는 귀 두 짝
청소 도구함에 숨은 눈알
창문에 붙은 천삼백일흔 개의 입 그리고 입

 

나는 토끼를 해부하는 상상을 했을 뿐인데요?
책상 밑에 숨어 지우개 똥만 뭉쳤는데요?

 

 

 

괄호 속에 몸을 집어넣고 옅어지는 발가락을 만지는 중입니다

 

 

열아홉은 괄호가 포함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 바닥에 빨간 울음이 흥건합니다 누군가 날카로운 어젯밤을 소화시키지 못했나 봅니다
둘, 여기서부터 가족들의 방은 멉니다 커다란 구름이 말라가는 거실입니다
셋, 시계의 뒤편이 기억하고 있는 시간을 봅시다 아빠는 오후 아홉 시처럼 생겼습니다
넷, 우리들은 우리들로 남아야 하기에 아직은 식탁에 앉아 실마리를 꼭꼭 씹어 삼킬 뿐입니다

 

벽 너머에서 엄마는 푸르스름 야위어가고 아빠는 배를 까고 누워 노랗게 불어갑니다 시침으로 꿰맨 교복 치마는 나의 알리바이 무지개의 꿍꿍이를 눈치 챘나요? 엄마 아빠가 시계 속으로 분주하게 스며들고 있습니다 나는 혀가 고부라진 아이 입안 가득한 째깍 소리를 녹여 먹으며 내일의 과목을 생각합니다

 

구름이 눈썹을 찡그리는 날부터
나의 이름이 느리게 증발할 때까지

 

증거가 되지 못한 물방울들은 곧 이름을 잃어버립니다 아직 쓸 만한 우리들이에요 까드득까드득, 아빠는 질문을 씹어 먹습니다 어떻게 하면 흘러내리는 심증을 촛농처럼 굳힐 수 있나요? 시간의 부스러기가 천장에서 쏟아집니다 미제로 남은 우리들이에요 까드득까드득, 마음껏 부서질 수 있는

 

빨간 울음이 바싹 마르는 아침, 귓속에서 알람이 울립니다
아흔아홉번째 이명입니다

 

딱딱한 무지개가 완성되면 깨끗한 얼굴로 학교에 갑니다 오전 일곱 시는 무엇이든 시들게 만들 수 있고 그러나 오후 네 시에는 조금 웃어보아도 괜찮은 것 아홉 시의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뒤꿈치에 쌍무지개를 그려보기도 합니다만 우리들은 조금도 겹쳐지지 않습니다 무지개의 꿍꿍이를 눈치 챘나요? 촉촉한 물방울들이 문 틈새로 탈출합니다 언제 어디서 다른 색깔의 울음이 발견될지 모릅니다

 

무지개가 시간을 읽기 시작할 나이부터
열아홉이 어른들을 타고 멀리 날아갈 때까지

 

 

 

요절한 여름에게

 

 

편백나무가 날아오르는 시간
당신은 그대로 숲을 향해 걸어가

 

첫번째 돌에 표시해둔 나를 지나쳐
마치 갈림길에서 힌트라도 쓸 것처럼
척척함과 약속은 잘 어울려
더듬더듬 목구멍 들춰 어둠을 만지듯이

 

나는 오늘 가지색 인사법을 배웠고
카나리아를 내년 귀퉁이에 묻어주었지
철제로 된 새장이 무엇을 책임져?

 

날개 터는 방법을 잊어버렸어 어쩐지
뾰족한 부리는 당신의 피상
나는 오늘 도도한 레몬처럼 거절했고

 

편백나무의 날숨은 뿌리를 놓치는 것
배 속이 잠시 투명해지는 그런 것
내가 따뜻한 흙을 퍼먹는 동안에
당신은 그대로 숲을 향해 걸어가

 

새끼손가락을 주머니에 넣고
어제로 통하는 길을 잘 안다는 듯이
그러나 모르는 발바닥처럼
하늘을 지나치게 올려다보며

 

우리는 절벽을 잊어버릴 수 있어

 

똑똑한 버섯들은 어떻게 우는지 들어봐
조금씩 해가 길어지고 땅이 흔들리고
당신은 그대로 숲을 향해 걸어가

 

 

 

커밍아웃

 

 

축축한 비밀 잘 데리고 있거든
일찌감치 날짜가 지난 토마토 들키지 않고
물컹한 표정은 냉장고에 두고
나는 현관문을 확인해야 해
아픈 적 없는 내일을 마중 나가며

 

취한 바람이 호기롭게 골목을 휘돌아 나갈 때
나뭇잎이 되고 싶어 아무 데서나 바스러지는
우리가 서로를 껴안을 때 흔들리는 그늘
더 낮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 가는데

 

아무도 모르는 놀이터에서 치마를 까고 그네를 탔어
미끄럼틀과 시소의 표정
낮지도 높지도 않은 마음을 가지자
혼자라는 단어가 낯설어지면
얼음 땡,
크레파스 냄새 나는 빨주노초 아이들
웃음먼지를 풍기며 뛰어나가고

 

배 속에선 만질 수 없는 부피들이 자란다
누가 우리를 웅크리게 하는 걸까
웃지 않는 병원에 가야겠어
문 닫은 교회에서 기도를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여관에 하루 정도 재울까
창문이 많은 복도에서 자꾸만 더러워질까

 

뉴스는 토마토의 보관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설탕에 푹 절여지고 싶어
사소한 기침이 시작된다
내 컵을 쓰기 전에 혈액형을 알려줄래?

 

옷장에서 알록달록한 비밀이 흘러나와
자라지 않는 발목 아래로, 말을 잊은 양탄자 사이로
기꺼이 불가능한 토마토에게로

 

 

 

뱀의 날씨

 

 

할머니는 그날 오후 빨래를 개고 있었습니다
삼촌의 파자마 속으로 기어 들어가면서
얼룩은 아들로, 아들은 엄마로 벗겨내는 거라면서
척척한 양말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얼룩은 그늘에서 말려야 하나요?

 

삼촌은 허물을 벗고 삼촌들로 불어납니다
엄마라는 단어에 슬슬 똬리를 트는
독신주의 채식주의 완전무결 무신론자 삼촌들
입속에 불혹이 자라 말을 잊은 삼촌들
특기는 식탁 밑에서 기절하기
마흔답게 혓바닥 날름거리기 또는
잠자는 할머니를 죽은 쥐로 착각하기

 

얼룩은 그늘에서 더 축축해지나요?

 

집 안 가득 비눗물이 차오릅니다
방 세 칸이 조금은 말끔해진 것 같습니다
이제 곧 얼룩의 무늬가 바뀌는 시간일 텐데요
할머니가 좀처럼 탈수되지 않습니다

 

부글부글 거품이 된 집을 내려다봅니다
누가 옥상에 삼촌을 널어놨습니다

 

깊어진 그늘의 손을 잡아봅니다
나를 벗을 준비는 이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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