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문학선 신인상 당선작 > 공모전 당선작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공모전 당선작

  • HOME
  • 문학가 산책
  • 공모전 당선작

        (관리자 전용)

 ☞ 舊. 공모전 당선작

 

주요 언론이나 중견문예지의 문학공모전 수상작품을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2016년 문학선 신인상 당선작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09회 작성일 17-01-09 09:34

본문

2016년 문학선 신인상 당선작

 

  시계 벗는 날 / 이석균


  외할머니 시계를 벗으신다
  시계는 원래 여자의 것이었지만
  어머니와 할머니가 오래 차고 있었고
  서른넷 젊은 신랑 뒷산으로 올라간 뒤
  사과나무를 심었다

 

  손가락 세 개는 다시 셋, 셋, 넷 더 생겨났고
  아직 돋아나는 중이다

 

  조용히 벗어놓은
  할머니 빼닮은 시계를 붙들고
  엄마는 목을 놓는다
  활활 태워, 남은 뼈 곱게 빻아
  흙 아래 다져놓고 돌아오는 길
  손목에 정맥이 뛴다

 

  고속도로, 비가 오는데
  시곗바늘 자꾸 돌아간다, 운전을
  해야 하는데 시곗바늘이……
  아내에게 조심스레 부탁한다
  창밖에 해가 뜨고 지고
  정맥이 뛰고 아니 시곗바늘 돌고
  비는 자꾸 창에 흘러내리고

 

  유리창에 매달린 물방울들
  시계가 들어있다
  일정한 흔들림, 대책 없는 고단은,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
  되돌아가는 시간은 급히 흐르는데
  컷 컷 사진이 찍힌다

 

  급한 브레이크, 사진은
  지워지고 창에 붙은 시계들 다시
  흐른다, 집이 보일 때까지

 

  샤워기 세게 틀어 깊이 박힌 시간들 씻어낸다

 

 


  죽음과 소녀


  소녀, 딱딱한 입에 키스를 한다, 눈 감고 젖힌 머리 붉은 피 치렁치렁 흐르다 응고되고 뼈의 발꿈치 분실된 살 바깥, 탈출하여 나무로 위장한 정맥들 솟구쳐 마침내 동맥으로 진화하고 마른나무 닮은 혈관들 바깥에서 성장한다, 죽음을 안은 소녀 얼굴 오르가슴이 채색되었다, 소녀들은 바깥에서 뒤를 경계하고 일탈을 관음하고, 푸르다가 검어진 그림자, 소녀를 감싸고 뭉크의 소녀는 풍만하다

  소녀,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직 연습하지 않았고 웃는 얼굴은 익숙하다, 매일 타던 통학버스가 위를 지나갔을 때 소녀에겐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죽음이 조용히 안아올 때 소녀 그냥 안겼다, 어둠의 포근함을 소녀는 기억한다, 아비가 안았을 때 아직은 붉은, 굳지도 식지도 않은 피, 입가에 흘려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었다, 통증을 건넌 소녀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직 배우지 않았다

 

 

 

  공황恐惶

    ―문고리


  저 문고리가 자꾸 달각거리는 것은 누군가 문을 잡아당기기 때문이지만 그럼에도 차마 열지 못하는 것은 문 너머 여하한 위험이라도 있을 때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으로서 아무리 고심해도 결국 실행되지 않을 일이므로 마침내 그냥 잘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고 이불을 두껍게 펴고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소리는 점점 커지고 사실은 문고리만 달각거리는 것이 아니라 현관문 전체가 덜컥거리는 것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닌데 저 소리가 지속한다면 어쩔 수 없이 눈을 떠 불을 켜야 할 것 아닌가 하면서도 막상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은 왠지 얼굴이 자꾸 싸하기 때문으로 그것은 눈을 떴을 때 누군가 내려다보고 있을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인데 그로 인해 섣불리 눈을 뜨지 못하고 혹시라도 손에 뭔가 쥐어지는 것이 있을까 이불 속을 더듬어 봐도 잡히는 건 기껏 등 긁개뿐으로 겨우 이걸로 과연 누군가를 충분히 해칠 수 있을 것인가를 확신하지 못해 계속 망설이다가 마지못해 용기를 내어 등 긁개를 미친 듯이 휘두르며 눈을 뜨니 이미 창이 밝다.

 

 

 

  공황恐惶

  ―은행 앞에서


  은행 앞 은행을 나온 뒤 은행 아래 서서 불안한 것은 은행에 돈이 없기 때문이고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두려운 것은 손에 쥔 봉투가 가진 것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으로 은행에 돈이 없는데 쥐고 있는 것이 잘못되면 삶이 무너지는 것이므로 심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늘 은행에서 나오는 것을 무서워하는데 은행을 가면 다들 고객님이라고 부르므로 괜히 어깨에 힘을 좀 줘도 되는 것이면서도 은행가기를 꺼리는 것은 결국 은행에 돈이 없기 때문이고 고객님이라고 불리지만 사실 고객이 아닌 것이니 괜히 쭈뼛거리면서 우물쭈물하게 되는데 지금 서 있는 아래 흩어진 것들도 구리고 손에 쥔 것도 구린 것이니 이래저래 구린 데도 다들 가지고 싶어 하니 참으로 알 수 없다가도 또 그것으로 인하여 삶이 유지되는 것이므로 누구나 구려지기를 원하지 않는가 생각하며 스스로 흐뭇하게 대단치도 않은 구린내를 들고 구린내를 밟으며 초조히 버스를 기다리고 있지만 과연 기사가 손도 구리고 발도 구린 것을 참고 태워줄지를 근심한다.

 

 

 

 

  이사


  강조하지만 원한 것이 아니다
  급한 결정, 약봉지는 매일 찢어지고, 계속
  들리는, 결정자의 여러 계획은 극심한 피로를 불러

  두피에 두드러기가 부쩍 늘었다
 
  달력은 성실하게 한 칸씩 옮겨가고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안 가겠다고 버텼다
  싸우는 중이었는데 돈을 받을 사람과, 돈을
  받을 사람이 싸우는 피로는 그가 혼자 앓는다
  아무리 동동거려도, 해결 방법은
  없었다, 싸우는 자가 아니므로

  돈을 줄 그가 매일 사정하였고, 마침내
  시간을 획득했다, 물론 돈을 더 주었다

  다음이 또 어렵다
  서로가 돈을 덜 받겠다고 하는 이들
  어느 종이에 사인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다
  가장 웃으며 들이미는 종이를 집는다

  잘 한 결정인지 여부는 판단할 수 없다

  손톱 검은 멍이 아픈 것은 돈 문제인데
  해진 옷의 얼룩도 마찬가지 사유다
  먼지를 씻어내며 넓어지는 것이 좋은가에
  관한 고민을 한다, 결정자인 아내의
  시야에서 조금 벗어난 것은 퍽 다행한 일이다

  일단 더 좋아졌다고 강제로 생각한다

  잠들어야 하는데, 의식이
  사라지지 않는다, 팔을 저어도 아무것도 닿지
  않는 불안은 기어이 다시 불을 켜게 한다

  빨리 잠드는 법을 학습해야 한다

 

심사평

한 편의 시가 갖는 역동적인 내부 구조

 

문태준(글) / 홍신선

 

  한 편의 시가 대개 하나의 생각을 생산해내지만 그 하나의 생각은 잘 정돈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 하나의 생각은 비정형이며, 탄력이 좋고, 보는 이에 따라서 다른 인상과 엇갈리는 해석을 하게 한다. 보는 이들의 안목에 따라서 한 편의 시의 외양과 속성이 이처럼 나뉘어서 갈라지는 이유는 아마도 시의 내면이 치열한 갈등과 치열한 고심 속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완성된 시에서조차 시의 언어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다툰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이것은 마치 우리들의 어제와 그보다 오래된 과거가 각각의 때의 경험을 보고 들은 바대로 다시 구술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결집하여 우리들의 총체적 경험을 완성하는 과정과도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한 편의 시가 역동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이며, 이러한 역동성이 강화될 때 한 편의 시가 지니는 마력도 향상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신인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석균님의 「시계 벗는 날」 외 4편의 작품들은 읽을 때마다 이상한 힘으로 읽는 이를 현혹시키는 매력이 있다. 이 작품들은 삶의 통증에 대해 발언하면서도 세부적인 발성의 내용이 상이하다. 가령 시 「시계 벗는 날」은 회전하는 시침의 시계를 일생 동안 차고 있었던 그리하여 속박되어 고단했던 한 개인의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고, 시 「죽음과 소녀」는 한 순수한 생이 갑작스런 죽음에 안겨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는 허무에 대해 말하고 있고, 시 「공황-문고리」와 시 「공황-은행 앞에서」는 일상에 상존하는 공포와 불안에 대해 말하고 있고, 시 「이사」는 현대인들의 금전을 매개로 한 채무 관계가 얼마나 사람들의 의식을 잠식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작품들의 환부는 다르지만 각각의 작품들이 모두 질환을 앓고 있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라고 하겠다.
  이석균님의 신인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더 좋은 작품으로 우리 시단을 다채롭게 가꿔주길 기대한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284건 1 페이지
공모전 당선작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28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7 1 04-11
28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3 1 04-11
28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8 1 04-02
28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7 1 04-02
28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8 1 04-02
27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3 1 03-27
27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9 1 03-27
27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1 1 03-27
27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4 1 03-27
27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9 1 03-27
27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9 1 03-13
27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3 1 03-13
27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 1 03-11
27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2 1 03-11
27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7 1 03-11
26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1 1 03-11
26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8 1 03-11
26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6 1 03-08
26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1 1 03-08
26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9 1 03-08
26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2 1 03-08
26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4 1 03-08
26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8 1 03-08
26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7 1 03-08
26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7 1 02-07
25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0 1 01-31
25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8 1 01-31
25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93 1 01-31
25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80 1 01-31
25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58 1 01-31
25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32 1 01-24
25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58 1 01-24
25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78 1 01-24
25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03 1 01-24
25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05 1 01-20
24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06 1 01-15
24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82 1 01-15
24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62 1 01-15
24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00 1 01-15
24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26 1 01-15
24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65 1 01-15
24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79 1 01-15
24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51 1 01-15
24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7 1 01-15
24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4 1 01-15
23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2 1 01-15
23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2 1 01-15
23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17 1 01-11
23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26 1 01-11
23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78 1 01-11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