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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마저 나간 집으로 갔다/ 고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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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3회 작성일 23-07-2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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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으로 가기 위해 긴 꿈에서 벗어나 눈을 뜬 시인의 네 번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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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주 시인의 네 번째 시집 『그늘마저 나간 집으로 갔다』 가 (걷는사람 刊) 출간됐다.

199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뒤 계간 《열린시학》 및 《시와산문》 등에 시와 평론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꽃과 악수하는 법』, 『밥알의 힘』, 『오후가 가지런한 이유』 등의 시집을 출간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지역에서 문화 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시인은 시인의 말 마지막에서 “긴 꿈에서 막 깨어났다”고 말한다. 세 번째 시집 출간 이후 오랫동안 침잠의 시간을 가지면서 굳어버린 시적 감성을 다시 일깨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직업인으로서의 글을 쓰는 것과 자기 글을 쓰는 일은 분명 다르다. 자기 글을 뒤로하고 매일 마감을 지키느라 기사를 써내야만 했던 기자로서 써야만 하는 글과 쓰고 싶은 글 사이에서 아득한 꿈을 꾸며 살았을 것이다. 물 먹은 솜뭉치처럼 제 무게에 점점 가라앉고 있던 자신을 구원해 준 것이 바로 시였다. 펜을 들어 깊은 잠에 든 감성을 깨워 생기 어린 작품들로 그가 다시 돌아왔다.  

이번 시집에서의 모티브는 ‘집’이다. 고된 일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모두 행복을 꿈꾸며 집으로 간다. 그런데 시인은 긴 시간 동안 어려운 환경 때문에 안락함과 행복을 주는 ‘내 집’을 소유하지 못하고 살았다. 비록 보이는 집은 없었으나 마음의 집은 있었다고 말하는 시인에게 있어서 이 시집은 결핍이 낳은 결과물이다. 빛은 갈라진 틈으로 들어온다라는 말이 있다. 갈라진 틈으로 시린 아픔과 고통만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갈라진 틈으로 어둠을 물러가게 할 빛도 들어오는 것이다. 그의 결핍이 아름다운 시편들로 반짝여 주는 것처럼.  

이 시집의 해설을 쓴 이종민 시인은 그는 집으로 가기 위해 긴 꿈에서 벗어나 눈을 뜬 시인이라고 말한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아직도 지어지고 있는 집, 그 집의 크기는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크기로 사는 게 아니야”(「암자에 오르다」)라고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각난 잠들을 붙여놓은 네 번째 시의 집에서 오랜만에 숙면을 취할 고선주 시인. 긴 꿈에서 깨어나 시의 기지개를 다시 한번 켜길 또 한 번 기대해 본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집으로 가는 중  

고선주  

창백한 시멘트 길
회백색 웃음과
까무잡잡한 손길
그 끝으로
해가 기울고
달이 차기 시작한
오후의 끝자락
충혈된 노을빛 하늘 끌고 가는
그림자마저
곧 쓰러질 듯 휘청인다  

반려견 김밥마저 떠나고
홀로 남겨졌다
어쩌면
집으로 가는 중
세상 가장 슬픈 시간이다  

한파를 점점 닮아 가는 날들
봄날이 한발씩 멀어지는 중년
누우면 다 집인 줄 알았으나
앞이 보이지 않는 동굴이다
식어버린 밥처럼 식감이 없는
오후의 시간
적당히 실패한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를 밀며
내일의 나를 향하지만
실상 그 자리 그대로인 삶  

살아지지 않는 집에는
언제부터인가
살아지지 않는 삶이 기거하고 있다
이제
집이 없어도 집으로 가야 하고
집이 있어도 집으로 가야 한다
같은 집인데
너무나 다른 세상  

오늘도
집으로 가는 중
당도할 수 없는 그 집  

- 『그늘마저 나간 집으로 갔다』, (걷는사람, 2023)  

암자에 오르다

-마음속 집  

고선주  

가파른 삶을 끌고 올라야
세상은 크기로 사는 게 아니야, 라고 가르쳐 준
절벽 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부좌 틀고 앉은, 아담한 암자의 법당에는
온 생애 얼굴의 윤곽조차 보여준 적 없는 바람
제대로 반죽 되지 못한 한낮의 구름
정작 메말라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어느 오후의 비
속이 허기진 새벽의 눈발
화가 많이 난 야밤의 천둥과 번개
꽃이 되지 못하고 뒤만 서성인 오전의 꽃가루들
낮 동안 강렬한 햇빛 아래 나갔다가 녹초가 돼 해질 녘 돌아온 그늘
가을인 줄 모르고 온종일 지상으로 뛰어내린 나뭇잎들이 모여 있었다
해와 달, 그리고 별은
오늘도 오지 못했다  

- 『그늘마저 나간 집으로 갔다』, (걷는사람 2023).


(시집을 정독한 후기 - 김부회)


어느 날, 숱한 날 들의 어느 날, 마음속에 집이 한 채 들어있었다. 내 집인지 타인의 집인지 알 수 없는 집은, 집 그대로 (집) 이었다. 내 집이든 타인의 집이든 집은 집이었다. 집 한 채 지어놓고 산다는 것은 마음의 도량을 짓는 일이다. 그 도량으로 부는 바람은 질곡의 죽비처럼 깨우치기도 하고 깨달음을 놓아버리게도 만든다. 사계절을 품 안에 안고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 집의 도량 속엔 사계절이 언제나 놓여있다. 생각날 때마다 그 화두 하나를 꺼내 계절을 맛볼 수 있는 미각이 살아있는 집의 어딘가에 눈썹 흰 스승이 한 분, 댓돌에 고무신을 놓아둔 채 절을 올리고 있다. 달빛을 머금은 하얀 고무신이 스승의 존안 같다. 산다는 것은 숱한 날 중의 한 공간에 빈 집을 짓는 일이다. 마치 도량과 같은. (글/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고선주 시인 프로필


199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집 『꽃과 악수하는 법』, 『밥알의 힘』, 『오후가 가지런한 이유』 출간, 지역에서 문화 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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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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