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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하는 시 쓰기 절차와 방법 3 - 윤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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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143회 작성일 15-07-0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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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하는 시 쓰기 절차와 방법3

강사/윤석산


우리 시단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꾸준히 실험해온 이승훈(李昇薰)은 김춘수와 달리 애초부터 무엇인가 창조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합니다. 그것은 자기 시를 <비대상시(非對象詩)>라고 명명한 것으로 미루어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대상"이란 모방의 대상을 갖지 않는다는 뜻으로서, 무엇인가 창조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그의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계는 열 두 점, 열 세 점, 열 네 점을 치더라. 시린 벽에 못을 박고 엎드려 나는 이름을 부른다. 이름은 가혹하다. 바람에 휘날리는 집이여. 손가락들이 고통을 견디는 집에서, 한밤의 경련 속에서, 금이 가는 애정 속에서 이름 부른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계속된다. 계속되는 밤, 더욱 시린 밤은 참을 수는 없는 강가에서 배를 부르며 나는 일어나야 한다. 누우런 아침 해 몰려오는 집에서 나는 포복한다. 진득진득한 목소리로 이름 부른다. 펄럭이는 잿빛, 어긋나기만 하는 사랑, 경련하는 존재여, 너의 이름을 이제 내가 펄럭이게 한다.
- 이승훈(李昇薰), [이름 부른다] 전문

일반적으로 벽시계는 열두 번 이상 울리지 않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열세 점, 열네 점"까지 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과 "이름"이 종잇장처럼 휘날리는가 하면, "밤"이 경련하면서 균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그린 게 아니라 창조한 세계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김춘수의 에피소드 병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의 사물을 여러 사물로 바꿔 쓰는 방법이 있다.
그 다음, 원관념을 드러내는 방식은 어떨까 검토해보기로 합시다. 원관념을 잠재시킬 경우, 독자들은 그를 찾기 위하여 텍스트를 주목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길어진 만큼 기존 사물들을 지칭하는 언어로 사고를 진행하여 존재의 구각(舊殼)을 강조하고, 전체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요소가 없어 때문에 조각난 그림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작품을 써봤습니다.

달아 달아/밝은 달아/이태백이 놀던 달아

--달빛은 굵은 동아줄/나는 달빛을 타고

-<중략>-

금도끼로 찍어 내어/옥도끼는 과분하니 대충 무쇠도끼로 다듬어서

굵은 둥치는 기둥 삼고, 잔가지는 처어척 걸쳐 석가래로 삼고/쓰다 남은 달빛은 주렴으로 둘러쳐

<말의 오두막>을 세웠다.

논리만 앞세우던 내 관념이 달빛으로 어떻게 집을 짓느냐고 투덜댔지만 불쑥 내민 주둥이를 다독다독 밀어넣고 뜨락이 너무 허전하여 한림(翰林) 앞 바다 비양도(飛揚島)를 끌어다 놓았다.
-[말의 오두막집에서·15]

이 작품은 전체가 27편으로 이뤄진 연작시(連作詩)입니다. 어때요? 어떤 사람은 장난스럽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재미있다고도 하던데. 앞에서 인용한 김춘수의 병치은유 시와는 확실히 다르잖아요?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 전체가 하나로 통일되면서도 달빛이 동아줄도 되고 석가래도 되고…

이 시의 발상 과정을 말씀드리면 어느 달 밝은 밤, 하늘에서 쏟아지는 달빛을 보니까 꼭 동아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달빛→동아줄>로 치환했지요. 그리고 아주 굵고 튼튼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내친 김에 다시 나무로 치환하고, 주렴으로 치환하고, 그런 마술적 분위기를 빌어 관념이 내민 "주둥이"를 밀어넣는가 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비양도"라는 섬을 마치 정원의 작은 돌처럼 끌어다 놨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달빛>이라는 원관념을 그대로 드러내되 보조관념군을 이질적인 것으로 잡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사물을 다른 사물로 바꿔 쓰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다음 작품도 이런 방식으로 쓴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앞의 작품과는 또 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말 속에는 말이 있고/말 밖에는 말이 있다.

말과 말 사이에는 빌딩이 있고 /빌딩과 빌딩 사이에는 구멍 가게가 있고/구멍 가게 한 가운데에는 꿈을 담은 사탕 항아리가 있고/그 뒤 쪽 지하실 계단 아래에는 빨간 장화를 신은 고양이가 있고/그 고양이는 밤마다 층계 위에 올라와 밤새도록 운다.

말과 말 사이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숲이 있고/발랑발랑 뒤집히는 물푸레나무 이파리들 뒤엔 명털 뽀얀 소녀들이 있고/깔깔대는 그 소녀들의 웃음은 화살이 되어/산등성이를 달리는 사슴 정갱이를 꺼꾸러뜨린다.

그러나 /지상의 말과 말 사이에는 또 다른 말이 있고/또 다른 말 내부에는 눈부신 이데오르기가 있고/이데오르기는 도시 상공에서 펄럭이는 깃발이 되고/펄럭이는 깃발은 저를 위해 다른 말들을 공격하고/사랑하는 사람들은 간혹 전쟁터에서 혼자 죽는다.

말과 말 사이에는/쓸쓸히 비가 내리는 바다가 있고/비내리는 바다에는 죽은 고래 한 마리가 있고/그 고래는 밤마다 제 짝을 찾아 울며 지구 저쪽으로 떠나고 /그래서 지상의 우리 사랑은 언제나 슬프다.
-[지상의 말과 말 사이에는]

이 작품은 어느 날 무심코 <말 속에 뼈가 있다>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뼈" 대신 "말" 바꿔 보았습니다. 그러자 말은 단순한 음성 기호가 아니라 입체적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말 밖에는 말이 있다."라고 하고, 말과 말 사이에 빌딩을 세우고, 구멍 가게도 만들고, 그 가게 밑바닥에 지하실도 만들고, 가게 밖으로 도시와 산과 바다 등을 만들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발랑발랑 뒤집히는 물푸레나무 이파리" 뒤에 "명털 뽀얀 소녀들"도 만들고, 깔깔대는 소녀들의 웃음이 "화살이 되어/산등성이를 달리는 사슴 정갱이를 꺼꾸러뜨"리는 세상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작품에서는 사랑하는 여인의 손등에서 팔락거리는 핏줄을 타고 그녀 속으로 드나들기도 하고, 주물럭주물럭 관념을 주물러 미인으로 만들고, 껴안고 뒹굴기도 하였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던 저는 한 동안 이런 방식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며 아주 흐뭇해하였습니다. 하느님처럼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게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를 의사 전달의 도구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존재나 에너지 차원으로 이끌어 올리며, 단순한 상상력의 놀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논리와 철학을 생각하는 수단으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 작품을 쓰는 것도 시들해 하고 있습니다. 매일 똑 같은 작품을 쓰는 것도 그렇구…. 그래서 음향과 문자와 영상을 결합시킨 <멀티-포엠>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길랑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이만 줄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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