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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편의 시와 일곱 가지 이야기 - 공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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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487회 작성일 15-09-2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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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창작 방법]

열두 편의 시와 일곱 가지 이야기

공광규


시는 인류가 남긴 최고의 문화예술입니다. 공자는 역대의 시를 모은 <시경>으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중국의 옛 사람 원매는 시를 읽으면 인생이 아름다워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는 겁니까?” 그러나 이런 질문에 꼭 맞는 대답은 없습니다.
시는 뭐다! 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것처럼 시를 쓰는 특별한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러 시인이 시를 써오며 공감하고 동의해온 몇 가지 공통점과 시인 개인이 오랫동안 시를 써오면서 굳어진 습관이 있을 뿐입니다. 작업방식: 괴테는 64년간 ‘파우스트’에 매달림/ 발자크는 매일 밤 수도사 옷을 입고 촛불을 켜놓고 여섯 시간 이상 작업을 시작해서 작업이 끝날 때까지 60잔의 커피를 마시며 글을 씀/ ‘보봐리 부인’을 쓴 프로베르는 적확한 단어를 찾기 위해 3일 동안 방바닥에서 골머리를 앓음/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18년 걸려 완성/ 조르쥬 상드는 줄담배를 피워가며 나흘 만에 장편 ‘악마의 늪’ 탈고// 생활방식: 아리스토텔레스는 요란한 복장으로 학교를 배회하거나 변덕스럽고 사치를 즐기는 최초의 정신 나간 스승/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하루아침에 방탕한 생활에서 벗어나 윤리성을 설파하고 다니는 기이한 성인/마르셀 푸루스트는 거의 침대에만 누워 지냄/ 프랑스 추리소설의 대가 조르쥬 심농은 영감을 얻기 위해 1만여 명의 여성과 성교(미하엘 코르트, ‘광기에 관한 잡학사전’ 을유문화사, 2009)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는 단 하루를 쓰는데 8년이 걸림. 마가렛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집필을 위한 자료수집 20년 걸림. 정약용은 <매씨서평(梅氏書評)>을 51년에 마치고, 신작은 <시차고(詩次故)>를 완성하는데 27년이나 걸렸다고 함
그래서 제 시집 <<소주병>>(실천문학사, 2004)과 <<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 2008)를 내면서 정리된 제 개인의 시 창작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경험을 옮긴다.

저의 시 쓰기 시작은 경험을 공책에 옮기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모든 상상력은 경험에서 발아합니다. 경험은 직접 몸으로 겪은 사건이나 감정은 물론 남의 경험을 훔치는 독서와 대화,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해당합니다. 시인이 자기 경험을 시로 옮겨 놓으면, 독자는 그것을 읽고 시인과 경험을 연대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정서적으로 감응을 하게 되는 겁니다.
천 가지 경험이 하나의 아이디어를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경험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바빠야 됩니다. 생각만하면 도사가 되니, 경험과 생각이 조화되도록 해야 합니다. 다음 아마추어 문예공모전 심사평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시가 자기 삶의 경험에서 양성된 정서의 압축된 표현이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당연히 직업에 따른 독특한 분위기가 배어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투고된 시들을 읽어 보니, 직무와 연관된 발상이나 생활의 직접적 투영이라 여겨지는 작품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직장생활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적 체험이라든가 복잡한 도시생활과 대비되는 농촌적 경험, 또는 자연풍경 속에서의 순화된 감정세계 등이 시의 주조를 이루고 있다.”(염무웅, 2009년 금융인문화제 시부문 심사평)

이처럼 대부분 초보자들은 시를 자기 경험을 옮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높고 고고한 곳에 시의 제재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죠. 자기 경험을 반영하고 확장한 개성 있는 시를 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당연히 생동감도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시는 언어를 가지고 인생을 모방하는 예술입니다. 시는 인생의 ‘경험’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인생의 사건을 모방하면 산문이 되고, 인생의 감정을 모방하면 시가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모방은 다른 말로 재현과 반영입니다.
혼자 사는 할머니와 실패한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었이겠습니까? 바로 ‘영감’이란 작자인데, 이 영감은 그냥 오는 게 아닙니다. 노력을 해야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디슨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좋은 시를 쓰려면 여행과 독서 등 다양한 경험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일을 경험할 수는 없으므로 남의 경험을 훔치는 독서를 해야 하는데, 다른 예술에서도 독서 경험은 영감을 불러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시인 릴케는 조각가 로댕의 비서였습니다. 릴케의 기록에 의하면 로댕은 주머니가 항상 불룩했다고 합니다. 물론 조각을 하기 위한 연장이었겠지? 아닙니다. 단테의 『신곡』이라는 책이었다고 합니다. 로댕은 독서경험을 통해서 얻은 영감으로 <지옥의 문>이라는 위대한 조각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예술 창작을 위해서는 다양한 독서 경험이 중요한 것입니다. 창작뿐이 아니고 과학이나 정치도 독서경험은 중요합니다. 모든 분야의 성공적인 사람들은 책 읽기에서 시작해 글쓰기로 끝냈습니다. 빌게이츠는 어려서 자기 동네 도서관 책을 몽땅 읽었다고 합니다. 동네도서관 출신인 빌게이츠의 창의력은 바로 독서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제가 직접 술을 마시는 경험 중에 창작동기가 발아하여 시를 창작한 구체적인 사례가 「소주병」입니다. 이 시는 대천해수욕장 포장마차에서 조개구이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다가 착상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오늘 저녁 술집에 가시면 빈 소주병을 입에 대고 힘껏 불어보세요. 그러면 붕붕하고 우는 소리가 날 것입니다.
이 경험을 아버지의 울음소리로 연결시킨 것입니다. 청소년이라면 소주병을 콜라병이나 사이다병으로 바꾸어 패러디(모방적 창작)해도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 「소주병」 전문

계속 따라주기만 하고 버려지는 소주병을 아버지의 삶에 비유한 것입니다. 소주는 국민의 술이자 민중의 술입니다. 또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가족을 위해 돈을 더 벌고, 큰집에 살고, 자식들을 잘 키우려고 무진 애를 쓰다가 늙어서 버려지는 결핍과 실패의 산물입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려보십시오. 사회적 지위나 빈부와 상관없이 아버지의 인생은 대부분 결핍의 인생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많은 다른 아버지들처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애썼습니다. 평생 도시와 광산으로 떠돌고 농촌에 정착해서는 아침저녁으로 일만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말년에는 결국 폐암에 걸려 마루 끝에 쪼그려 앉아 가래침을 뱉어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제 자신의 소주 마시기 체험, 자주 술에 취하여 실패한 인생을 한탄하시던 아버지와 병든 아버지의 말년 기억을 교직시켜 한편의 시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독자들은 시를 읽고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경험 속으로 빠질 것이고, 비슷한 경험의 연대를 통하여 공감을 일으킬 것입니다.
아래 시는 남양주 수종사 여행 경험을 시로 쓴 것입니다. 수종사 여행 경험이 없었다면 이 시를 쓰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아래 시가 성공한 것은 여행정보를 거의 없애고 개인의 감정을 외물인 수종사 풍경에 의탁하였기 때문입니다.

양수강이 봄물을 퍼 올려
온 산이 파랗게 출렁일 때

강에서 올라온 물고기가
처마 끝에 매달려 참선을 시작했다

햇볕에 날아간 살과 뼈
눈과 비에 얇아진 몸

바람이 와서 마른 몸을 때릴 때
몸이 부서지는 맑은 소리
-「수종사 풍경」 전문


둘째, 이야기를 꾸며낸다.

그러나 시는 실제 경험을 옮기는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실제 경험으로만 시를 쓴다면 일생동안 몇 편뿐이 쓰지 못할 겁니다. 여러분은 백일장이나 청탁을 받고 막상 시를 쓰려면 더 이상 시를 쓸게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미 많은 시인들이 시를 다 써버린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는 시인이 자신의 경험에서 상상력을 발전시켜 이야기를 꾸며낼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인은 단순히 운문의 창조자가 아니라 이야기나 구성을 창조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시인의 기능은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기술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온갖 경험을 섞고 흔들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경험의 횟수와는 상관없는 문제입니다.
연애 시를 많이 썼다고 연애를 많이 한 시인은 아닌 것입니다. 사람의 경험이란 생각보다 그렇게 다양하거나 일관되거나 극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험만으로 시를 쓰겠다는 사람은 시를 평생 몇 편 쓰고 말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시 역시 다른 문예 양식과 마찬가지로 허구적 진실입니다. 시는 실제 경험한 사건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발아시킨 상상력으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서양 사람의 말인데, 상상력은 신이 붙여놓은 것을 띄어놓고 신이 띄어 놓은 것을 붙여놓는 힘이라고 합니다. 상상력이 있는 인간만이 신과 맞장을 뜰 수 있을 것입니다. 상상력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힘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문자, 도시, 법률, 교육 등 모든 제도는 상상력이 만든 것입니다.
저의 「별국」은 몇 개의 어머니와 함께 했던 경험과 기억을 상상력으로 바느질하여 한 편의 시로 조직한 것입니다.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는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히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 「별국」 전문

위 시는 2006년 수능 모의고사 지문으로 출제된 이후 참고서에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에는 몇 개의 심상이 나타납니다. 제 시의 기법적 계보는 정지용으로부터 시작합니다. 24살에 들어간 대학 1학년 문학개론 시간에 정지용의 시 「유리창」을 배우는 순간, 이렇게 시를 쓰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전에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시를 쓰고 낭송회를 여러 번 해보았지만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정지용의 시를 만나면서 시의 원리를 깨우친 것입니다. 그래서 제 시는 지금까지도 심상 중심입니다. ‘별국’ ‘별빛 사리’는 심상을 통해 창조한 어휘입니다. 충청도의 사투리인 ‘멀덕국’은 시어로 제도권에 진입시킨 사례입니다.
시인은 어휘의 창조자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어휘는 지금 영어를 세계 제일의 공용어로 만드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단어 양은 영문학상 최고이며, 그가 새로 만든 단어는 세는 방법에 따라 2,076개라는 주장도 있고, 6,700개라는 주장도 있다고 합니다. 세익스피어 당시에 영어단어가 15만개였고, 그가 사용한 단어가 2만개였으니 그는 자기가 사용한 단어의 10%를 만들어 사용한 것입니다.(폴 존슨, <<창조자들>>, 황금가지, 2009. 100쪽 참조)
다음 시는 실제로 광화문에서 완행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경험한 것을 이야기로 만든 사례입니다. 상가의 간판 이름 가운데 몇 개를 제외하고는 이야기가 되게 직접 만든 것입니다.

오랜만에 광화문에서
일산 가는 완행버스를 탔다
넓고 빠른 길로
몇 군데 정거장을 거쳐 직행하는 버스를 보내고
완행버스를 탔다

이곳저곳 좁은 길을 거쳐
사람이 자주 타고 내리는 완행버스를 타고 가며
남원추어탕집 앞도 지나고
파주옥 앞도 지나고
전주비빔밥집 앞도 지나고
스캔들 양주집 간판과
희망맥주집 앞을 지났다
고등학교 앞에서는 탱글탱글한 학생들이
기분 좋게 담뿍 타는 걸 보고 잠깐 졸았다
그러는 사이 버스는 뉴욕제과를 지나서
파리양잠점 앞에서
천국부동산을 향해 가고 있었다

천국을 빼고는
이미 내가 다 여행 삼아 다녀본 곳이다
완행버스를 타고 가며
남원, 파주, 전주, 파리, 뉴욕을
다시 한 번 다녀온 것만 같다
고등학교도 다시 다녀보고
스캔들도 다시 일으켜보고
희망을 시원한 맥주처럼 마시고 온 것 같다

직행버스를 타고 갈 수 없는 곳을
느릿느릿한 완행버스로 다녀왔다.
- 「완행버스로 다녀왔다」 전문


셋째, 솔직하게 표현한다.

시는 자기 안에 있는 감정을 밖으로 꺼내 종이 위에 옮기는 작업입니다. 일기를 쓰면서 청소년기의 혼돈을 극복하고, 연애편지를 쓰면서 사랑하는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는 것처럼 시도 다른 글쓰기와 같이 자기 치유 효과가 있습니다. 더구나 시는 감정을 진솔하게 토로하고 아름다운 표현을 높이 사는 문장이어서 대중들이 가장 선호하는 문학양식입니다.
시는 자기 삶을 솔직히 직시하게 합니다. 자기 삶을 솔직히 털어놓아 자기 치유의 효과를 거두는 것입니다. 시는 고해성사소입니다. 교회의 권위는 고해성사 제도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논어』의 사무사는 시를 대할 때 정직하라, 솔직하라는 말입니다. 창작자나 독자, 편집자 모두 이러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공자의 문학관입니다. 어쩌면 시인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마음을 대리하여 적는 대필자입니다. 사람은 본래 사악하고 착하고 슬프고 기뻐하는 존재일 것입니다. 시기하고 질투하며 그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인간의 본성과 관련하여 덧붙이자면, 종교 경전에서는 간음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사람은 원래 간음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원래 술 먹고 술 취하고 싶어 하는 존재이며, 사람을 미워하고 미운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는 존재입니다. 종교는 인간이 원래 이러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이를 규제하기 위해 경전에 계율로 정하여 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의 원래 마음을 시인이 대신 표현하여 주면, 독자들은 시를 읽고 공감하며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시인은 자신을 감추고 위장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대신하여 솔직히 드러내주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가 「폭설」입니다.

술집과 노래방을 거친
늦은 귀가길

나는 불경하게도
이웃집 여자가 보고 싶다

그래도 이런 나를
하느님은 사랑하시는지

내 발자국을 따라오시며
자꾸 자꾸 폭설로 지워 주신다.
- 「폭설」 전문

이 시를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가지입니다. 어느 분은 제가 이웃집 여자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놀리기도 합니다. 혹시 이 시가 인터넷에 떠다니면서 이웃집 남편이 찾아오지 않았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어느 분은 제가 아내와의 사이가 여전히 좋지 않은 것 같다고 안도하기도 합니다. 자기 부부관계가 안 좋은 것을 저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입니다.
이럴 때 저는 시인이란 존재가 남의 죄를 덮어쓰고 대신 죽은 예수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느 분은 자신의 속마음을 썼다고 탄복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와 시인의 실제 삶에 대하여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롤랑 바르트라는 사람은 작품에서 작가를 죽여야 진정한 의미에서 독자가 탄생한다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오로지 글쓰기를 배합하고 조립하는 조작자, 또는 남의 글을 인용하고 베끼는 필사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미 공자가 말한 “기술할 뿐이지 창조하지 않는다”는 ‘술이부작’입니다.
그러니 작품을 읽을 때는 저자를 철저히 배제하고 읽어야 진정한 독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작품에서 작가를 몰아내고, 작품속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로 느껴질 때 감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이 시는 바로 나의 이야기고 감정이야!” 하고 말이죠.
위 시의 내용은 실제 이웃집 여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허구헌 날 술집에 있다가 밤늦게 귀가하니 이웃집 여자와는 엘리베이터에서도 마주쳐본 적이 없습니다. 이 시는 사무실 동료들과 자주 술집에서 노닥거리다 노래방을 들러서 집에 오는 대한민국 보편적 중년 남자의 불량한 삶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웃집 여자는 불량한 욕망과 삶의 태도에 대한 비유일 뿐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많은 남자들의 저녁 문화는 대개 술집에서 술집으로 전전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술을 잘 먹고 많이 마시는 놈이 남자답고 쫀쫀하지 않고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술 잘 먹는 놈이 출세한다는 신화가 여전합니다. 이건 좋건 나쁘건 어엿한 문화, 관습이어서 혼자 극복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아래 시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살아가는 중년의 위선적 행실을 고백한 것입니다.

대나무는 세월이 갈수록 속을 더 크게 비워가고
오래된 느티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몸을 썩히며 텅텅 비워간다
혼자 남은 시골 흙집도 텅 비어 있다가
머지않아 쓰러질 것이다

도심에 사는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도
머리에 글자를 구겨 박으려고 애쓴다
살림집 평수를 늘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친구를 얻으려고 술집을 전전하고
거시기를 한 번 더 해보려고 정력식품을 찾는다

대나무를 느티나무를 시골집을 사랑한다는 내가
늘 생각하거나 하는 짓이 이렇다
사는 것이 거짓말이다
거짓말인 줄 내가 다 알면서도 이렇게 살고 있다
나를 얼른 패 죽여야 한다.
- 「거짓말」 전문


넷째, 고전과 선배에게 배운다.

체 게바라(1928~1967), 아르헨티나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의대를 졸업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의사의 길을 포기한 뒤 쿠바혁명에 참여한 그는 혁명가이자 전장에서 시를 쓰는 시인이었습니다. 전장에서 전사한 그의 유품에는 지도와 두 권의 일기, 그리고 공책 한 권이 들어있었는데, 그가 좋아했던 네루다 등 4명의 69편의 시가 빼곡히 적혀있었다고 합니다.(<체 게바라의 훌쭉한 배낭>, 실천문학사, 2009)
이렇게 시인은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에서조차 선배의 시를 베끼고 분석하면서 죽는 순간까지 시를 썼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배낭 속에는 언제나 괴테, 보들레르, 도스토예프스키, 네루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레닌 등의 책들이 떠나질 안았다고 합니다. 이런걸 보면 가사와 육아, 생계를 이유로 시 읽기와 쓰기를 게을리 하는 것은 모두 핑계일 것입니다. 앞에 시에서 대나무가 나와서 한마디 부언하자면, 대나무는 4년 동안 죽순 키의 상태로 멈춰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키가 정지하여 있는 동안 대나무는 뿌리를 깊고 넓게 확보한다고 합니다. 대나무의 4년은, 우리의 대학 4년과 마찬가지로 고전과 선배를 공부하는 시기라고 보면 됩니다.
실력이 느는 것 같지 않더라도 매일 잠깐이라도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고전과 선배를 공부해야 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공부를 쉬면 후퇴를 합니다. 이러한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 몰입이고, 그래야 시 쓰기에 성공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여튼 시를 오래 잘 쓰려면 고전과 선배들의 시를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어떤 예술이든 고전과 선배의 작품을 모방하면서 배운다고 보면 됩니다. 모방론적 관점입니다. 앞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공자는 자신의 글이 고전과 선배가 이루어 놓은 것을 진술한 것이지 창작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공자는 또 ‘온고지신’을 강조하였습니다. 옛 것을 따뜻하게 품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남녀가 따뜻하게 품어야 아이를 ‘창작’할 수 있는 것처럼.
창작자는 자신이 시의 방향을 잘 잡아 가고 있는 지, 고전과 선배의 시를 통해서 자꾸 확인해야 합니다. 구약성서에 천하에 새로운 것이란 없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이미 자연 속에 존재하며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창작 행위는 창조가 아니라 재활용이라는 것입니다. 규범이 되는 고전과 선배의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시 쓰기에 금방 바닥을 드러낼 것입니다.
추사 김정희는 “가슴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인 것입니다. 책을 많이 읽고 교양을 쌓으면 몸에서 책의 기운이 풍기고 문자의 향기가 난다는 뜻입니다.
겨울 아침에 쌓인 마당의 흰 눈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흰 눈과 지식은 모르는 사이에 쌓인다고 합니다. 고전과 선배의 시에 관심을 갖고 읽어가다 보면 온 몸에 쌓인 지식이 흘러내려 공책 행간을 글씨들이 구불구불 기어 다니며 시를 쓸 것입니다.

아내를 들어 올리는데
마른 풀단처럼 가볍다

수컷인 내가
여기저기 사냥터로 끌고 다녔고
새끼 두 마리가 몸을 찢고 나와
꿰맨 적이 있다

먹이를 구하다가 지치고 병든
컹컹 우는 암사자를 업고
병원으로 뛰는데

누가 속을 파먹었는지
헌 가죽부대처럼 가볍다.
- 「아내」 전문

위 시는 브레히트를 공부하여 얻는 것입니다. 여성이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는 출산과 육아기입니다. 시 「아내」는 제 아내가 육아기에 실제로 아파서 병원으로 옮기느라 업었던 체험을 시로 형상한 것입니다. 부부를 밀림의 사자로, 밥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경쟁 현실을 밀림으로 비유한 시입니다. 그러나 독일 브레히트의 「나의 어머니」라는 시를 읽지 않았으면 이 시를 생각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브레히트가 1920년에 쓴 「나의 어머니」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 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갔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짧은 이 시의 ‘가볍다’나 ‘고통’이라는 어휘가 병든 아내의 가볍고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을 만나면서 시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가죽부대’라는 말 역시 불경을 뒤지다가 만난 어휘입니다. 아마 황지우의 시에도 몸을 가죽부대에 비유한 대목이 나왔던 것을 기억합니다. 앞의 시 <별국> 역시 김삿갓의 시를 읽어서 쓴 것입니다. 여행 중 어느 집에서 밥을 얻어먹다가 가난한 주인이 밥풀이 둥둥 뜨는 묽은 죽을 내오며 미안해하자, 김삿갓은 밥그릇에 비치는 청산을 좋아한다고 한 데서 얻는 착상입니다.
그러나 “책을 읽되, 책에 얽매이지 말고, 밖으로 나가 영혼의 자유를 찾아라!” 라고 한 앙드레지드의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전과 선배의 시를 읽되 거기에 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여담입니다만, 갈수록 제 시에 ‘아내’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아내에 대한 아부가 늘어간다는 말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필요한 다섯 가지가 있는데,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고 합니다. 여자는 딸, 돈, 건강, 친구, 찜질방이 필요하지만 남자는 마누라, 아내, 애들엄마, 집사람, 와이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아래 시는 친구와 대화중에 죽음에 대하여 물은 기자의 질문에 “더 이상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 아인슈타인의 말, 그리고 “글라디올라스의 섹스” 등으로 아내의 몸을 비유한 앙드레 브르통의 시 「자유로운 결합」에 나오는 수사법에서 많은 부분 착상하였습니다. 이렇게 여성의 수다를 사랑하는 남자라면 평생 사랑을 받다 양노원이 아닌 여자의 품에서 죽을 것입니다.

나는 이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알죠
바람을 보내는 사람이 누군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소리가 뭐야?”라고 물었을 때
“당신 수다야”라고 대답했던 사람이죠

아침 햇살 살결과 이른 봄 체온
백자엉덩이와 옥잠화 성교
줄장미 생리하혈과 석양의 붉은 볼
물봉선 입술과 대지의 살 냄새를 가진 사람이죠

나는 이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알죠
바람을 보내는 사람이 누군지
“죽음이 뭐야?”라고 물었을 때 간결하게
“당신을 못 보는 것이지”라고 대답했던 사람이죠

나는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알죠
바람을 보내는 사람이 누군지
말밤나무 몸통과 말밤 눈망울
말밤나무 손가락을 가진 사람이죠.
- 「말밤나무 아래서」 전문


다섯째, 재미있게 만든다.

시든 소설이든 결국은 재미있는 글이 오래 살아남게 됩니다. 동양의 제일서인 『논어』처럼, 우리 민족 제일서인 『삼국유사』처럼, 장자의 우화처럼, 이솝의 우화처럼, 불서와 성서의 이야기처럼 재미가 있어야 독자들이 오랜 관심을 갖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를 재미있게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볼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비극론인데, 정설은 아니지만 희극론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최고 권력자인 교황을 비롯한 성직자들이 희극론을 없앴다는 거죠. 왜냐고요? 민중들이 즐거워하면 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되고, 그러면 성직자들의 권위와 직장이 없어지니까요.
그전에는 인간을 단순한 신앙인으로만 봤는데, 단테 같은 작가 무리들이 인간을 신앙인이자 시민으로 글을 써대면서 종교와 성직자의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문인이면서 현실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단테는 종교 권력의 미움을 사는 바람에 피렌체에서 영구 추방되었다고 합니다. 정치적 추방인 거죠.
하여튼 재미는 권위 있는 집단이나 개인들이 가장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재미가 있으면 권위에 굴복하지 않거든요. 특히 평등을 싫어하는 가부장제 권위의 사회에서는 얼굴에 웃음을 띠면 좀 시시한 인간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왜 실실거리느냐고 혼나기도 하고요. 한때는 웃음이 폭력의 대상이 되었죠. 최근의 독일의 푸라이부르크대학 헬가 코스트호프 교수 연구결과 남성이 여성보다 농담을 많이 하는 이유는 권력과시의 공격적인 행동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위가 낮은 사람이 웃기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Focus, 2009.8.25) 맘에 안 드는 이야기지만 웃음이 권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게 합니다.
시 「무량사 한 채」는 재미있게 구성한 시의 사례입니다.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얘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무량한 만큼!”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이라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
주방에서 요리하고
화장실서 청소하고
거실에서 티비를 봅니다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은
목탁처럼 큰소리를 치다가도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들어온 날은
맑은 풍경소리를 냅니다
나름대로 침대 위가 훈훈한 밤에는
대웅전 꽃살문 스치는 바람소리를 냅니다.
- 「무량사 한 채」 전문

위 시는 실제 아내와 실제 있었던 대화를 진술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경험을 재미있게 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무량사(부여군 외산면 소재)라는 고향 부근에 있는 절을 여러 번째 가던 중 창작동기가 확 발화하여 쓴 것입니다. 필자가 술을 먹거나 아이들 공부 문제로 아내가 잔소리하는 것은 집안에서 흔히 부딪히는 일입니다. 대웅전 꽃살문은 조계사회보에서 사진으로 본 것을 시 쓰는 과정에서 떠올린 것입니다.
꽃살문 스치는 바람소리는 무엇을 비유한 것인지 상상이 갈 겁니다. 필자는 이 구절을 생각해 내고 사람들이 이 시를 읽으면서 살짝 웃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래 시 「걸림돌」 역시 시중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를 가져다가 재미있게 구성한 것입니다. 이 시를 본 독자들은 대부분 재미있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잘 아는 스님께 행자하나를 들이라 했더니
지옥 하나를 더 두는 거라며 마다하신다
석가도 자신의 자식이 수행에 장애가 된다며
아들 이름을 아예 '장애'라고 짓지 않았던가
우리 어머니는 또 어떻게 말씀하셨나
인생이 안 풀려 술 취한 아버지와 싸울 때 마다
"자식이 원수여! 원수여!" 소리치지 않으셨던가
밖에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중소기업 하나 경영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누구를 들이고 둔다는 것이 그럴 것 같다
오늘 저녁에 덜 돼먹은 후배 놈 하나가
처자식이 걸림돌이라고 푸념하며 돌아갔다
나는 "못난 놈! 못난 놈!" 훈계하며 술을 사주었다
걸림돌은 세상에 걸쳐 사는 좋은 핑계거리일 것이다
걸림돌이 없다면 인생의 안주도 추억도 빈약하고
나도 이미 저 아래로 떠내려가고 말았을 것이다.
- 「걸림돌」 전문

저 역시 걸림돌이 없었다면 세상을 제멋대로 살다가 스스로 망가져서 인생을 조기에 마쳤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시를 핑계로 술집과 카페에 들락거리느라 지금 형편없는 몰골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는 인생의 걸림돌인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걸림돌이자 원수였던 필자와 동생들을 사랑한 결과 손자도 보시고 좋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다 돌아가셨습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 이거 사실이 아닐 것입니다. 이 시를 읽은 사람들 가운데, 애인을 두는 것이 중소기업 운영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시중에 떠도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청주에서 시를 공부하는 오십대 중반 여성분이 수업 중에 한 우스갯소리를 제가 도둑질 한 것입니다. 떠도는 우스갯소리도 시를 쓰겠다는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들으면 재미있는 시를 구성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역시 시는 일상에서 창조한다는 원리도 여기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여섯째, 현실 문제를 건드린다.

요즘 시가 지겹다고 합니다. 시에 현실감과 생동감이 없어서입니다. 시의 내용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이고, 표현이 늙은이 거시기처럼 축축 늘어진다면 얼마나 지겹겠습니까? 유몽인은 시는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인데, 시어를 아무리 잘 다듬어도 정작 사상적 내용과 그 지향성(志)이 결여되면 시를 알아보는 사람이 이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시는 시속을 일깨우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지 풍물이나 경치만 읊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수십 년간 조선시대 문단을 장악했던 서거정은 여행과 현실에서 배우지 않은 문장은 곧 낡고 썩기 쉽다고 하였습니다. 문장은 기백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요즘 시들이 기백이 없고 횡설수설에다 난잡 난해 불통인 것은 시가 현실과 접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사회, 정치, 경제, 역사적 현실에 던져진 존재입니다. 시인 자신이 학생, 주부, 회사원이면서도 자기 존재와 무관한 시를 써대니, 이는 시를 잘 못 가르치고 배워서 그렇습니다. 아마추어 문예공모전 심사평에 실린 글을 보기로 합시다.

“흔히들 ‘문학’하면 비현실적이고 일상생활에서 일탈한 환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잘못된 문학교육의 영향 탓이다. 문학은 환상적인 것도 있지만 극히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기쁨과 슬픔과 분노와 고뇌를 그린 것도 포함한다. 왜 이런 따분한 말을 하느냐 하면, 산문 부분 응모자들이 너무 규격화된 소재가 많은 대신 정작 기대했던 은행 안에서 전개되는, 혹은 될법한 온갖 재미있는 소재들은 드물다는 걸 지적하고 싶어서다. 가장 많은 소재가 가족(특히 어머니와 아버지), 그 다음이 여행기, 산행 등등이다. 마치 은행 생활 이야기를 고의로 피하는 듯하다.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런 문학적인 소재의 황금창고를 외면한 채 다른 화두를 열심히 찾는 게 안타깝다. 물론 은행이야기만 하라는 뜻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땀 냄새가 스민 글이 진정한 문학이라는 것이다. 특히 산문을 읽노라면 은행원들은 세상과 담벽을 쌓고 업무가 끝나면 등산이나 여행만 다니는 것 같다. 시야를 넓혀 보통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담아보기 바란다.”(임헌영, 2009년 금융인문화제 산문부문 심사평)

바로 현실의 자기경험이 시 소재의 ‘황금창고’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학교육의 잘못으로 대부분 황금창고를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현실 상황에 놓인 자기의 존재를 살피는 것에서부터 시 쓰기를 시작해야 자신의 이야기이니 잘 쓸 수 있고, 그래야 현실감과 생동감 있는 시를 쓸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존재, 즉 여성시인은 성차별 속에 사는 여성의 문제, 주부시인은 가사와 육아 등에 대한 전담 문제, 교사시인은 교권에 대한 시비, 회사원 시인은 임금이나 고용 등 노동권, 문학청년은 실업이나 등록금(과거 소 1마리에서 현재 8마리 팔아야 대학졸업)로부터 시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감과 생동감 있는 시를 쓰기 위해서는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올바른 지식인(물론 시인이라고 다 올바른 지식인은 아니지만)이라면 도대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 인간을 살기 어렵게 하는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밝히고 따져야 합니다. 때로는 몇몇 혁명가처럼 사회를 바꾸기 위한 행동과 용기도 필요로 합니다.
아래 시 「얼굴반찬」은 핵가족화 세태를 비판한 시입니다.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 「얼굴반찬」 전문

돈과 경쟁으로 요약되는 자본주의는 핵가족화를 넘어 가족의 해체를 낳고 있습니다. 기러기아빠, 갈매기아빠 문제. ‘나홀로 지방에…위기의 주말아빠’ “한국경제의 심장인 지방의 산업단지에 갈수록 홀아비들이 늘고 있다. 자녀 교육 때문에 홀로 지방에 머무는 이른바 ‘갈매기아빠’의 증가는 가정해체와 시업생산성 저하의 원인이 되는 동시에 사회기반의 붕괴라는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는 시한폭탄이라는 지적이 많다.” “퇴근하면 갈 곳이 없어요. 불꺼진 빈방에 열쇠로 문 따고 들어가는 것이 가금은 끔찍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혼자 있다 보니까 잠도 잘 안와요. 그래서 술이 친구가 된 셈이죠.”(당진군 송악 유흥가가 밀집한 선술집에서 만난 3년차 갈매기) “취재 중 만난 갈매기 아빠들은 10중 8,9는 자녀 교육 문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갈매기아빠들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면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함께 먹는 것 자체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노컷뉴스 2009.7.27) ‘남편 딴짓 할까, 숙소 불신검문’ ‘아내는 불륜 의심에 서울에서 지방까지 단속 원정길/ 자녀교육 때문에 시작했는데 비행청소년 된 사례도’ “애들 학원 데려다주고 그 길로 경부고속도로를 타곤 했죠. 술집 마담과 섬씽이 있는 것을 알아채고 난 다음부터 불시에 검문을 하는 거죠. 남편 옆에서 두세 시간 있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오더라도 그렇게 해야 마음을 놓을 수 있어서…” “어떤 경우는 몇 달에 한 번씩 집에 들어가게 돼요. 그러면 남편이라는 나의 존재가 일상 속에서 잊히는 거죠. 친구 만나러 간다거나 취미생활을 한다거나… 그렇게 되면 서로 무관심해지는 거죠.” “지금은 정상이더라도 이런 비정상적인 가정을 이어가다보면 비정상적인 삶이 정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이미 가족과 가정을 잃은 갈매기들의 경고의 울음소리다.”(2009.7.28 노컷뉴스)
여럿이 모여 밥 먹을 기회도 없고, 그래서 가족끼리 부딪히며 사는 재미도 없습니다. 가장 한 사람만 벌어도 온 가족이 먹고 살도록 적정한 임금과 사회보장을 해주는 사회라면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 가족이 흩어져 돈벌이를 하느라 정신없고 허덕이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입시 경쟁에 몰려 어려서부터 사설학원에 돈을 퍼주러 다닙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일부일 공부시간은 49.43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33.92 시간보다 15시간이나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학업성취도는 별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핀란드는 평일 학습시간이 4시간 22분으로 우리나라 8시간 55분보다 절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수학점수는 544점(한국 542점)으로 2점 높다고 합니다.(헤럴드경제, 2009.8.6)
그러니 집안에 식구들이 모일 기회가 적고, 그러니 인생에 재미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인생 최고의 문제는 바로 사는 재미입니다. 사는 재미가 있어야 인생이 행복합니다. 사는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가 성공적인 인생이냐 아니냐의 관건일 것입니다.
공자는 아는 것 보다 좋아하는 것이 낫고,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인생도 그렇고 시를 대하는 태도도 그럴 것입니다. 시를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대개 여유가 있을수록 가족 수가 많고 화목하며, 가난할수록 가족 수가 적고 불화합니다. 더하여 아주 가난하거나 수입이 적은 사람은 결혼을 못하거나 결혼을 하였더라도 이혼을 하여 독신으로 늙어죽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성 소외자가 많기 때문에 성폭력도 더 많이 일어납니다. 특히 가정을 구성하지 못하고 혼자 사는 남자가 자살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핵가족화의 결과는 식탁(밥상머리)에서 전승되는 전통문화와 가족공동체의 정신을 단절시킵니다. 민족도 국가도 정체성을 잃어버릴 것이 뻔합니다.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일본보다 더 영어화, 미국화가 되었다는 사실을 잘 아실겁니다. 식탁문화가 없으니 아이들도 말씨부터 싸가지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달리 우리나라 청소년은 부모에게 가장 오랫동안 붙어사는 캥거루이면서도 부모 부양의식 ‘부모를 모시겠다’ 응답; 영국 66%, 미국 64%, 프랑스 51%, 한국 35%. (한국일보, 2009.3.30)
이 서양보다 훨씬 낮습니다. 물론 부모를 모시는 것이 최선은 아니겠지만, 서양보다 효와 수신제가를 강조하는 동양 전통문화가 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을 보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얼굴반찬 운동’을 하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 ‘식탁권’을 회복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책을 읽을 때보다 10배 가까운 어휘를 가족과 식사를 하면서 배운다.”(하버드대 연구결과) “가족과 식사 횟수는 흡연 경험률, 음주 및 마약 경험률과 반비례한다.(컬럼비아대학 연구결과) 수많은 연구 결과는 가족과의 식사가 단순한 배만 채우는 자리가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현대의 정주영가는 새벽 5시 가족식사 시간에 경영수업을 했으며, 정치 명가 케네디가는 지도자의 자질을 식탁에서 익혔다.(한겨레, 2009.7.25 sbs 스페셜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안내글 )
지금은 식탁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합니다. 지금 우리 식탁은 재벌과 외국자본이 전부 차지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식탁은 건강한 가정과 건강한 사회, 건강한 국가, 건강한 세계인을 만드는 기초입니다.
가정에서 식탁 지키기는 매우 정치적인 실천입니다. 정치는 대단한 게 아닙니다. 일상을 행복하게 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부드럽고 생활밀착적인 세심한 여성들도 정치에 관심을 갖고 각종 의회 등 회의구조에 진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자는 효도를 하고 집안일을 잘 하고 자기 직무를 잘 하는 것 자체가 정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식탁을 잘 지키고, 집안 살림을 잘 하는 것도 정치적인 일입니다. 때때로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아 업고, 토목공사를 잘하는 사람에게가 아니라 일상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 사람에게 표를 주는, 선거를 잘 하는 것이 정치활동인 것입니다.
양극화, 빈곤층 증가, 중산층 감소, 실업률 상승, 과열 학교 경쟁은 가정에서 대화를 단절시킵니다. 식탁 주변으로 식구들을 모으지 못합니다. 결국 가족과 공동체 중시, 인간중심의 경제 등을 할 때 식탁에서 ‘얼굴반찬’을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생태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건강한 식탁을 지키려면 유통혁명이 필요합니다. 이건 굉장한 어려운 혁명이면서 그만큼 중요합니다. 식료품점은 물론 학교급식 등 식품유통을 통해 식단마저 재벌이 차지하고 있고, 다국적 자본인 외국계 식음료점이 난립하고 있습니다.
확인이 더 필요하지만, 한우에 먹이는 사료인 옥수수는 99%가 외국회사(카킬이 전 세계 옥수수 장악)로부터 수입하는 것이며, 이마트, 삼성홈프러스,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등 재벌기업형 유통업체가 지역상권까지 싹쓸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익이 지역과 지역 사람, 노동자에게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거기에 벌리는 돈은 지역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고, 고용된 사람들의 노동조건도 형편없습니다. 대전에서는 대기업의 화물을 운송하는 유통노동자가 운송료 30원 때문에 자살한 사건을 아실 겁니다.
당연히 중소 지역상권이 무너지자 청주에서는 지역상인들이 들고 일어났고, 인천에서는 슈퍼 상인들이 단결하여 기업형 상점의 싹쓸이를 제재하여 줄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서점과 꽃집들도 대응을 하겠다고 합니다.
미국에 본점을 두고 있는 스타벅스 자본은 점포를 월가, 런던, 서울 순서로 많이 두고 있는데, 스타벅스 점포가 많이 들어가 있는 나라일수록 금융위기가 심각하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하였습니다. 스타벅스 상점 미국 맨해튼에만 200여 곳, 영국 런던 256곳, 한국 수도권 209곳, 스페인 마드리드 48곳,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 48곳, 덴마크 2곳, 네덜란드 3곳, 이탈리아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0 곳. (한겨레 2008.10.22)
그만큼 우리나라에 잦은 야근과 격무에 시달리고 카페인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래 시는 이러한 우리나라 노동자의 슬픈 일상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당신, 창의력이 너무 늙었어!”

사장의 반말을 뒤로하고
뒷굽이 닳은 구두가 퇴근한다

살이 부러진 우산에서 쏟아지는 빗물이
슬픔의 나이를 참으라고 참아야 한다고
처진 어깨를 적시며 다독거린다

낡은 넥타이를 움켜쥔 비바람이
술집에서 술집으로 굴욕을 끌고 다니는
빗물이 들이치는 포장마차 안

술에 젖은 몸이
악보 없이 흐느낀다.
-「몸관악기」 전문

위 시는 젊어서는 마구 부려먹다가, 임금이 높아지는 나이가 되면 노동자를 몰아내는 우리나라 자본의 행태를 서정화 하여 폭로한 것입니다. 물론 수익을 목표로 하는 자본가에게 도덕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바보짓입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부를 창출하는 수단, 상품으로만 봅니다.
그래서 국가의 적절한 조정과 규제와 감독이 필요하지만, 국가권력을 자본가들이 쥐락펴락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규제와 감독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모든 단계의 선거를 잘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자기존재 배반의 선거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 술집에서나 어디서나 노후를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에다 사회복지가 엉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평균 근속연수는 11.2년(2009.4)에 불과합니다. 국내 대기업들의 직원 평균 근속년수는 11.2년이며, 5년 전보다 1.3년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취업포털 커리어(www.career.co.kr)가 금융감독원에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기업 중 매출액 기준 상위 100대 국내 기업의 ‘2008년 평균 근속년수’를 분석한 결과, 이들 직원들의 근속년수는 평균 11.2년으로 조사됐다. 기업별로 살펴보면 ‘KT’가 19.8년으로 평균 근속년수가 가장 길었고, 다음으로 ▲ 포스코 19.1년 ▲ KT&G 18.9년 ▲ 현대중공업 18.3년 ▲ 여천NCC 18.2년 ▲ 국민은행 17.4년 ▲ IBK기업은행 17.2년 ▲ 한국전력공사 16.7년 ▲ 한국외환은행 16.5년 ▲ 현대자동차 16.0년 순이었다. 남성직원들의 평균 근속년수가 높은 기업은 ▲ KT 20.2년 ▲ IBK기업은행 19.3년 ▲ 포스코 19.1년 ▲ 국민은행 18.7년 ▲ 현대중공업 18.7년 순으로 집계됐다. 반면, 여성직원들의 평균 근속년수가 가장 높은 기업은 ‘KT&G’가 20.3년으로 조사됐다. 이어 ▲ KT 17.6년 ▲ 대우조선해양 15.6년 ▲ 국민은행 13.9년 ▲ IBK기업은행 12.6년 순이었다.(2009.3.12)
월급쟁이가 되어서는 도대체 인생 전체를 안정적으로 설계하기가 불가능한 사회이고, 평생 노동시간도 엄청 깁니다. ‘한국男, 퇴직 후 11년 더 노동’ ‘OECD 국가중 최고- 실질은퇴, 71.2세… 노후 연금 부족 때문’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공식은퇴 연령은 60세이지만, 실제로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퇴장하는 실질은퇴연령은 71.2세였다.… 반면 대다수 서구 선진복지국가 국민은 오히려 실질은퇴연령이 공식은퇴연령보다 낮아, 일찌감치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손을 떼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국민의 퇴직 후 노동기간이 지나치게 긴 이유는 노후 생계유지에 필요한 연금 액수가 충분하지 않아 정년 이후에도 노동시장에 오래 머물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OECD 평균 실질은퇴연령 63.5세. (노컷뉴스, 2009.7.27)
그러나 기업들은 대개 회사 정문 앞에 ‘직원을 가족같이’라는 위선적 구호를 걸어놓고 있습니다.
근속년수는 그렇다 치고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30개 국 가운데 세계 1위입니다.(년간 2,316시간. 회원국 평균은 1,787시간. 국민일보 2009.4.23) 그러면서도 직장인의 70%가 “난 근로빈곤층”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근로빈곤층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월급으로 생활비를 감당하기가 빠듯해서 <>퇴직시 생계곤란 <>부채감당이 어려워서 <>고용불안으로 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근로빈곤층이 생기는 원인을 부익부 빈익빈을 유도하는 사회적 구조(47.1%), 높은 생활비(46.3%), 불안정한 고용형태(40.5%)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Am7 2009.8.6)
자살율도 세계 1위입니다.(10만 명당 45.2명-남 32명, 여13.2명, 회원국 평균 24명. 국민일보 2009.4.23). 국민의 대부분인 임금노동자들과 임금노동자에서 일찍 떨어져 나온 영세자영업자들이 살기가 아주 어렵고 좋지 않은 사회라는 것을 말해주는 사례입니다.
국민의 사회적 심리적 현실은 이러한데, 이런 현실을 만들어내는 자본과 권력에 아부하고 스피커노릇을 하며 연명하는 사이비언론, 사회가 어려워도 양심 있는 발언 한번 안하는 문약한 책상물림의 학자와 시인들이 꾸려가는 난해 난잡 불통인 문예지가 문단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난잡 난해 불통의 문학은 현실을 헷갈리게 하고 몽롱하게 하고 지워버립니다. 그래서 이런 문학은 거품입니다. 거품은 곧 사라집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거품인지 아닌지는 여러분이 거기서 나오는 시, 소설 등 문예물을 읽어보면 됩니다. 어느 정도 시를 공부한 사람이 읽어도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거품을 따라다녀서는 평생 올바른 시를 쓸 수 없으며, 자기 존재를 배반하고 정체성이 없는 시만 쓰다가 일생을 마칠 것입니다. 자기 삶과 존재와 무관한 언론과 문예지를 선호하는 것은 자기 삶을 배반하는 행위입니다. 이들 언론과 문예지 기득권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회, 정치, 경제적 상상력의 시들입니다. 현실에 놓인 인간 실상을 똑바로 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시입니다.
교육과 의료, 주택, 청년, 여성, 실업문제 등등 이런 것들이 시를 통해 폭로될수록 자신들이 모시는 기득권에게는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현실을 무관심과 왜곡을 통해 협조하는 문인에게 상을 주면서 호의를 보내고 매수를 합니다.
죽은 문학을 하고 싶으면 이들 언론과 문예지, 학자와 시인들에게 아부하면 됩니다. 삼류문인은 나이 먹어서 늦게 문학공부를 하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문예지로 등단을 하고, 지방에 거주하고, 문학상을 못 받는 작가가 아닙니다. 인간을 괴롭히는 자본과 권력에 아부하고 그들이 주는 상을 명예처럼 받는 작가인 것입니다.


일곱째, 알아먹게 쓴다.

요즈음 시들은 횡설수설하고 난잡 난해해서 도저히 읽기가 불편합니다. 소통 불가인 불통문학입니다. 요즈음 시만 그렇겠습니까? 옛날에도 그런 시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부 거품처럼 사라졌을 겁니다. 독자와 소통하는 시를 써야한다는 말입니다. 언어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합니다. 언어를 발명한 이유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초고를 쓰고 나서 무슨 얘기인지 전달이 잘 될 때까지 고치고 고칩니다. 형상이 선명해질 때까지 퇴고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논어』에 나오는 절차탁마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입니다. 절차탁마는 옥으로 그릇을 만들 때, 옥을 자르고 쓸고 쪼고 가는 것과 같이 정성을 들인다는 말입니다. 자신에 대한 극기와 시에 대한 극진이 필요합니다. 제 시가 쉽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 데, 이러한 절차탁마의 원칙을 가지고 쓰기 때문입니다.
물론 문자나 말로 자신의 마음과 진리를 남에게 정확히 전달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이미 원효는 진리의 전달을 정확하게 할 수 없는 언어의 한계에 대하여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기유라는 말을 썼습니다. 요즘의 비유입니다. 자신의 어떤 감정을, 이를테면 사랑하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해 보십시오. 정확한 표현이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시인들이 표현을 놓고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스님이 평생 공부하여 깨달았다는 진리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언어로 밖에 표현하지 못했던 심정을 시인만이 이해할 것입니다.
시는 의도의 전달입니다. 함축을 통한 의도의 전달인 것입니다. 고려 이제현은 시를 마음먹은 것을 표현하는 지향의 발현이라고 했고, 무의미시를 주창했던 김춘수조차 시는 관념, 정서, 욕망 등을 함축성 있게, 음영이 짙게, 미묘하게 실감을 가지도록 전달하는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시를 아무리 뜯어보아도 시가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는 것은 독자의 잘못이 아니라 창작자의 미숙에서 오는 것입니다. 특히 시 공부를 잘못하여 시를 쓰기 위한 시를 쓸 경우에 내용 전달이 안 됩니다. 물론 시는 자기규정이 없어서, 일방적으로 시인만 아는 불통을 전제로 쓰는 시가 있기도 하겠지만 저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소위 유명하다는 시인, 유명 출판사에서 나온 시를 읽으면서 도저히 해독을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시인이 시를 잘못 배우거나 잘못 쓴데서 오는 것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소비자, 감상자인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불량품을 만든 창작자의 잘못입니다.
어떤 책이든 읽기 어려운 것은 작가가 충분히 정성을 들이지 않아서입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나 역시 명망 높은 경제학자로서 아무나 읽지 못하는 어려운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은 충분하다.”고 하여 대중이 알아먹는 쉬운 글쓰기를 중요시하였습니다.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에 횡설수설과 난해 난잡 불통하는 시를 인정하고 독려하고 양산하는 평론가와 학자와 문예잡지들이 있습니다. 당장 이러한 허망한 것들을 용기 있게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기 바랍니다. 그리고 쉽고 아름다운 시를 찾아 읽고 쓸 것을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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