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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규의 시론(2) - 몸의 말, 현부를 드나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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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121회 작성일 15-11-0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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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몸의 말
- 현부玄府를 드나들며



<현부玄府>를 전에 없이 즐겁게 드나들고 있다. 시를 쓰는 일은 <현부玄府>를 드나드는 일이다.(그렇다면 요즈음 그렇게 즐거울 정도로 시가 아주 잘 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는데 작품을 만드는 일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현부玄府>는 어쩌면 그 반대로 작품을 만들지 않는 게으름의 행복을 부추기는 어떤 요소의 것일 수도 있다.)
오래 전부터 <현玄>자字의 그윽함에 매료되어 왔었지만, 이토록 <현부玄府>를 나의 은밀한 또하나의 정부政府로 믿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이 <현부玄府>를 드나드는 아름다운(즐거운) 굴종의 신민臣民으로서 요즈음 매우 충실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현부엔 정문이 따로 없다. 담장을 넘거나 문 틈서리로 빠져 들어갈 때가 더 행복하다. 전율의 아름다움이 있다. 이 현부에의 드나듦이 허락되는 날은 더없이 운신이 부드럽고 평화롭다. 몸이 말을 제대로 듣는다.(몸이 말을 제대로 듣는 그 일순一瞬속에 <현부玄府>가 수립 탄생한다.) 그렇다. 몸이 말을 제대로 듣는다는 것, 그것이 바로 <현부玄府>의 삶이다. 밀린 잠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멍든 자리의 어혈을 풀어 낸다. 잘 굴러가는 둥글고 큰 수레바퀴 소리가 아득하게 거기 깔린다. <원융圓融>이 있다.
그게 도대체 왜 <현부玄府>인가. 그 명명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에 대한 사전적 풀이를 할 수도 있겠으나 그럴 필요를 나는 느끼지 않는다. 이 말이 내게로 다가온 것은 사전의 어휘로서가 아니라 그 말 자체가 <몸>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현부玄府>라는 말을 쓰기 이전부터 나는 그걸 살고(체험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사소한 일이기야 하지만 그걸 「현현玄玄」(「몸시·74」)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옮겨 놓은 나의 시가 있다. 그 한 부분을 보면 이렇다.

메뚜기 한 마릴 잡자고 지난 늦가을, 오직 그런 목적으로만 거길 가서(요즈음엔 이런 일도 일이 된다) 나 개골창에 나둥그러지기도 했는데, 너의 손은 날렵했다 백발백중이었다 알고 보니 메뚜기가 너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온몸을 한 손에 모았고, 나는 온몸이 다 보이게 작동했다 그런 온몸에는 잡을 수 있는 손이 없다 온몸만이 있다 그런 까닭이다 그 너는 누구니! 묘덕妙德이다 너는 메뚜기와 함께 살았고 나는 객이었다 몸이 달랐다 아, 까불지 않으리라

이처럼 메뚜기 한 마릴 잡는 하찮은 일상 속에도 <현부玄府>는 자리하고 있다. <너는 메뚜기와 함께 살았고 나는 객이었다 몸이 달랐다 아, 까불지 않으리라>고 쓰고 있는 마지막 대목이 중요하다. 한 몸이 되는 순간 속의 그 적막이 곧 <현부玄府>의 세계라 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아, 까불지 않으리라>. <나>를 다 내주어야 하리라. 어쨌건 <현부玄府>는 이렇게 내게 왔다. 이런 나의 언술이 억지로 굴절시킨 하나의 궤변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그것이 주는 감동의 전율로 새겨진 문신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에 한 독서에서 나는 그것을 확인받은 바 있다. 그것이 우리의 <십삼경十三經언어가 지닌 축적된 묵계의 마법>을 이루는 궁극이든 또다른 어떤 세계이든 나는 관여치 않는다. 분명한 것은 그걸 시를 하는 동안 조금씩 터득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 책은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언어는 인간이 발명한 최대의 저의 저주요, 지고의 행복이다. 인간의 언어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인간의 언어생성이 고도화되는 작업은 바로 그 욕심의 충족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과정이다. 언어가 추상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심볼리즘 속에 보다 많은 의미체계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명의 진전과 더불어 언어의 추상성과 함축성은 그 약속된 규칙들의 축적된 궤도 위에서 증대의 일로를 걷는다. 그 심볼리즘은 개념에 그치지 않는다. 개념과 개념을 연결하는 문장에 그치지도 않는다. 문장과 문장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언어 배면의 현부玄府에까지 그 심볼리즘은 확대되어 나간다.
-화이트헤드, 김용옥 옮김, 「이성의 기능」 탈서(脫序) 부분, 통나무, 1999.

명쾌하다. 그러나 뛰어난 이 역자가 중장한 대로 <창진적 요소로서의 자기 규율>에 의해 논리화한 이런 이성적인 글만으로는 <감동의 전율>이 주는 <문신>을 새길 수는 없다. 생동하는 <몸>으로 현장에 다가가야 한다. 거기 <있어야> 한다. 차라리 손에 닿는 대로 따라가 본 한 젊은 조각가의 자신의 작품에 대한 스케치가 훨씬 신선하다. <현부玄府>를 드나들고 있음이 보인다.

365일 유령과 함께. 한 번 이렇게 살다 보면 유령이 어느덧 많은 것을 일러 주기에 이른다. 실체 없이 떠도는 그림자들이 끊임없이 그 모습을 바꾸면서 이곳 저곳에서, 이 순간 저 순간에서 이 문 저문을 열어 주고 있다는 사실. 때로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기까지 하면서. 그러나 또 변신……그렇게 틈과 틈 사이는 벌어지고, 또 그렇게해서 틈과 틈 사이의 이어짐-잘/aht 볼 수 있는 그 고무줄-이 마침내 보인다.
-정서영, 「스케치」, '현대문학', 1999. 2.

사물들과 사물들, 그리고 화자들은 이렇게 서로 내통하고 있다. 이른바 <현기玄機>에서 <현기玄機>로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때로는 그 이어짐이 팽팽한 탄력으로 긴장을 계속할 때도 있다. 예술가(시인)들이란 이 <틈>에서 <자유自遊>(정효구, ꡔ한국 현대시와 자연탐구ꡕ, 새미, 1998.)하고 있는 자들이다. <틈>, 그 <경계>를 지우려고 끊임없이 몰입하는 자들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경계를 실감하고 있는 자들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 상황에서 시달렸다. 그렇다. 이 상황이다.
이 상황에 시달리면서 나는 조금씩 터득해 가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의 표제도 고심 끝에 「현부玄府를 드나들며」라고 쓸 수밖에 없었다. <드나들며>라는 말 속에는 상주가 허락되지 않는 비극이 있다. 어쩌니 저쩌니 해 보았자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다만 그 순간의 길고 짧음이 있을 따름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이런 시를 쓴 적이 있었다.)

글씨를 모르는 대낮이 마당까지 기어난온 칡덩쿨과 칡순들과 한 그루 목백일홍의 붉은 꽃잎들과 그들의 혀들과 맨살로 몸 부비고 있다가 글씨를 아는 내가 모자까지 쓰고 거기에 이르자 화들짝 놀라 한 줄금 소나기로 몸을 가리고 여름 숲 속으로 숨어들었다 매우 빨랐으나 뺑소니라는 말은 가당치 않았다 상스러웠다 그런 말엔 적멸보궁이 없었다 들킨 건 나였다 이르지 못했다 미수에 그쳤다
-「미수(未遂)·알6」, ꡔ알시(詩)ꡕ, 세계사, 1997.

그 때의 아득했던 소외와 단절을 잊지 못한다. 그간 살아오면서 거듭 당면했던 어떤 현실적인 소외와 단절보다도 깊은 상처로 그것은 남아 있다. <현부玄府>까지는 다가갔으나(거기에 이르는 일만 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과장을 하자면 명부冥府의 고통이 있었다 할 수 있다.) 나는 상주를 허락받지 못했다. 어디 이 경우뿐이었으랴. 그래서 <드나들며>이다. 또 그러다 보니 조금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게 되기는 했다. 조금은 침착해졌다. 요즈음엔 이런 생각을 가끔씩 해 본다. 이미 서로가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을! 어떤 하찮은 내 지적 순치가, 혹은 형이상학적 중독이, 그 우월성이 스스로 그걸 거부하는 것이라는.
길들여짐이 가장 무섭다. 우리를 한없이 주눅들게 한다. 이를 극복해야 한다. <자연自然!> 이미 그 속에 십삼경의 판간들이 길로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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