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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규의 시론(3) - 몸의 말, 화자 우월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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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091회 작성일 15-11-0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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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몸의 말
- 화자 우월성에 대하여



또 우愚를 범했다. 살아가는 시간 속의 일들이라는 것이 하찮은 욕망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음과 어리석음의 이어짐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야 하지만 바로 그것을 또 잊고 있었다. 똑똑한 또 하나의 내가 따로 분리된 자리에서 나를 부리고자 했다. <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우월코자 하는 또 하나의 나 속에 나는 여전히 갇혀 있었다. 그간의 내 공부(시집 ꡔ몸시ꡕ, 세계사, 1994.)가 그만 탈이 나고 말았다. 우월코자 하는 거만한 또 하나의 <나>를 <몸>은 제 몸의 황폐함으로 마른 풀잎들만 굴러다니는 메마른 들판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나는 그렇게 버려졌다. 그것은 가해도, 자해도 아닌 또 하나의 실상이었다. 순식간에 무섭게 화농된 자리를 칼로 째고 고름들을 긁어내야 했다. 열흘이 넘게 나는 병원 침대에 버려져 있어야만 했다. 아프다는 말의 실체를 다시금 깨달았다. 생체험生體驗, 지워지지 않는 상처의 흔적을 <몸>은 그렇게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남겨 놓았다. 내 부끄러운 시간이 거기 그렇게 봉인되었다. 하찮은 내 욕망들, 이것 때문에 나는 흔한 말로 나를, 내 몸을 그토록 혹사했던 거다. 지난해 시월에서 십이월까지가 특히 그랬다.
나는 앞서 가고 싶었다. 칭송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 든 길이었다. <가장 우리에게 감동을 주거나 새로움, 놀라움을 주는 것들은 사실 이미 내면에 형성되어 있었던 불가시의 고전들이다. 감동이란 이미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보편적 공간과 시간을 구체화하는 상태, 그런 본질의 것이니까.>라고 타르코프스키의 일기 ꡔ시간 속의 시간ꡕ을 읽었을 때 내 독서 노트에 그렇게 적어 놓고서도 나는 그러하였다. 또는 「몸시」를 한참 생각하고 있었던 그 무렵(1993년)의 내 토트엔 하이데거의 다음과 같은 장황한 내용이 옮겨져 있기도 했다.

우리는 사유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유 역시 아마도 하나의 상자를 쌓는 것과 같은 그런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일종의 기술, 하나의 <손작업>이다. 는 말 그대로 우리 손의 힘과 기술을 뜻한다. 손이란 독특한 것이다.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손은 우리 몸의 유기체 중 한 부분이다. 그러나 손의 본질은 결코 쥘 수 있는 기관으로 정확하게 한정되거나 설명될 수 없다. 유인원들 역시 쥘 수 있는 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손은 모든 쥘 수 있는 기관, 즉 발, 발톱, 이빨과는 완전히 다르다. 양자는 본질의 심연에 의해 구별된다. 말할 수 있는 존재, 즉 생각할 수 있는 존재만이 손을 가질 수 있으며, 손으로 하는 작업을 솜씨 있게 해 낼 수 있다. 그러나 손의 기술은 우리가 보통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풍부하다. 손은 쥐거나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닐라 밀거나 당길 수 있다. 손은 어디에 닿거나 쭉 뻗고, 받으며 환영한다. 손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손은 그 자신을 연장하며, 타인의 손이 나타내는 환대를 받는다. 손은 움켜?다. 손은 설계하고 신호를 나타낸다. 이는 아마도 인간 자신이 하나의 기호이기 때문일 것이다. 두 손을 하나로 포개는 것은, 사람을 커다란 하나로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제스처다. 손은 이 모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참다운 손작업이다. 통상 손작업으로 알려져 있으나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여기에 뿌리박고 있다. 그러나 손의 제스처는 언어의 모든 곳에 편재하고 있다. 그 제스처가 가장 완벽하고 순수한 경우에는 정확히 사람이 침묵으로써 말할 때이다. 그리고 말할 때만 사람은 생각한다. 형이상학이 지금까지 믿어 왔듯이 인간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서의 모든 손놀림은 일관되게 사유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손의 모든 행동거지는 그러한 요소 속에서만 처신하다. 손이 하는 모든 일은 사유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러므로 만약 사유가 적시에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사유 자체는 인간의 가장 단순한, 그러나 그 때문에 가장 힘든 수작업이다.

정화열 교수의 「신체화/탈신체화」를 분석한 김흥우 교수의 글을 읽으며 <신체화된 자유>에 관련된 주석 부분을 흥분에 들떠 그대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이 밖에도 그 무렵 김형효 교수의 이율곡에 관한 논의, 김용옥 교수의 <몸>을 <기氣의 집합>으로 보는 견해 등은 나의 「몸시」를 괴롭혔고 황홀케 했으며, 내 「몸시」를 직접 다룬 김상환 교수의 지적도 역시 그러했었다. 나의 <몸공부>가 어지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최근 나의 <몸>이라는 것이 그토록 지독한 반란을 일으키고 말았다. 나의 존재론이라는 것이 그 꼴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그 상처의 자리에서, 너무도 선명한 그 봉인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아직도 데카르트의 애독자에 지나지 않는다. 극복해야 한다.
나는 틈이 날 때마다 내 시를 포함한 우리 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자성이 이루어지기를 스스로 촉구하고 있다. 우리 현대시는 아직도 <화자 우월성>의 화법과 사유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또한 분리된 또 하나의 <우월한 나> 때문이다. 대상, 그것이 사물이 되었건 상황 또는 일이 되었건, 사람이 되었건 우리 시의 화자들은 늘 어리석게도 그 밖에 자리하고 있다. 아니, 높은 자리에 앉아 내려다보고 있다. 정현종이 어느 시에선가 말하였듯 <전망>이라는 말을 발음할 줄은 알지만 높은 나무 위에 직접 올라가 펼쳐진 너른 들판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게 훨씬 나은데>도 그런다. 이른바 백면서생의 꼴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몰골이 그 꼴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소월)와 같은 낭만적 투사와 <거리>가 상상력이라는 이름으로 죽은 이미지들을 날조해 내고 있다. 이른바 오규원이 틈틈이 내세우고 있는 <날 것의 이미지>가 크게 외면되어 있다. 상상력에 의해 발견되는 대상과의 동일성을 부인하고자 함이 아니다. 대상에의 가담이 결여된 상상력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그러한 <동일성>이란 공소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투명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실제 나무가 되었건, 강물이 되었건, 마른 풀잎들과 풀잎들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이 되었건 그들은 그들만의 생동하는 <말>을 가지고 있다. 장자는 그걸 일러 우주의 <천뢰天籟>(하늘피리)라 했던가. 인간의 지시적 언어란 고정된 관념일 따름이다. 관념의 언어만으로는 또 하나의 관념을 가설할 수밖에 없다.
늘 <몸>과 의논해야 한다. 혹 마음이 서둘러 앞서 가고자 지시의 화살표를 긋는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결국 추한 욕망이 되고 만다. <몸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사물들의 몸짓을 읽을 수 있을 때, 생명들의 행간을 읽어갈 때 시의 행간 또한 빠듯한 탄력과 넉넉한 평화의, 자유의 충만으로 자리하게 된다. <똑똑한 나>를 앞세우는 <화자 우월성>에서 말끔하게 벗어나야 한다. 어떻게 거기에 이를 수 있겠는가. 그 <경계 지우기>에 대하여 다시 생각을 이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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