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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조의 실험양식과 자유시에의 경계 - 신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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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100회 작성일 15-11-1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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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조의 실험양식과 자유시에의 경계

신 범 순(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 시조의 황혼, 변화에의 몸부림
우리의 전통적인 시가 양식에서 중추에 해당하던 시조는 개화기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어려운 길을 걸어왔다. 옛날의 번성을 회고하며 향수에 사로잡힌 자리에서, 또 우리가 간직한 정신적 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무감어린 외침들 속에서 시조는 수백년 이상 지속시켜왔던 생명력을 여전히 완전히 내던지지 못하고 힘겨운 숨을 쉬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이 옛날의 양식을 현대적인 감성과 사상 그리고 일상의 다양한 면모에 이르기까지 대응시키며 그 오랜 정형적 규격을 뒤흔들어 거기에 탄력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끊이지 않고 발전되어 왔다. 현대의 다양한 요구들을 담아내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들이 이루어졌으며, 노쇄한 양식에 현대를 호흡하는 젊은 조직들을 심어넣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에 대한 여러 논점들이 제기되고 논쟁들이 벌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날 시조는 옛날의 왕성한 기력을 되찾지는 못하고 있으며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앞으로도 별로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

현대시조를 한 차원 드높인 것으로 평가되는 시조계의 거목 백수 정완영에 대해 집중 조명한 한 시조잡지의 글을 보았을 때 이 노시인의 황혼이 시조계의 황혼을 보여주는 것 같아 필자에게도 처연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김천 직지사에 정완영 시조문학관을 짓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은 자신이 소장해온 책과 물품들을 이제 간수할 수도 없게 되어버린 시인의 궁핍한 처지와 함께 이야기되었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인기없는" 시조만을 붙들고 온 문인"의 경제적 몰락이 이 기사에서 부각되었다. 그는 특히 도남 조윤제 이후 시조의 정형인 3장6구를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되는 정갈한 그릇으로 소중하게 지켜온 분이기에 이 노년의 쓸쓸한 황혼은 단지 한 개인의 황혼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무엇인가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문단에서 수없이 쏟아져나오는 시잡지들 가운데 시조만을 취급하는 잡지는 손을 꼽을 정도이다. 이렇게 "인기없는" 환경 가운데서 시조인들은 시조의 활력을 위해 어떤 길을 모색하고 있는가? 오늘날 시조가 처한 모습을 두고 "변두리 문학"이라고 지칭했던(<<열린시조>>97년 겨울, 214쪽) 이재창은 시조단의 형식논쟁에 뛰어들어 이렇게 발언했다. "그 고정된 형식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할 땐 시조의 발전은 이제까지와 같이 정체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열린시조>>98겨울,305쪽). 고정된 형식을 비판하는 이러한 입장의 한 극단적인 자리에서 " 정형적 사고는 곧 식민지적 사고 " 라고 하는 윤금초의 주장(<<열린시조>>97겨울, 125쪽)이 있다. 시조의 고정된 형식을 변화시키려는 실험은 "시조혁신론"을 제기했던 가람 이병기 이후 계속 발전하여 오늘날 거의 자유시처럼 보이는 시조들을 만들어내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시조형식의 열림을 위한 실험은 그러나 이제와서는 도대체 이러한 실험적 시조가 과연 시조인가 아니면 자유시인가 하는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끔 한다. 위의 이재창의 글은 그러한 의문을 제기한 전원범의 글을 비판하고 열린 실험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조단에서 이미 그러한 실험을 두고 자유시 흉내내기인가 아닌가 하는 논쟁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시를 연구하고 또 현시단의 조류에 비평적 관심을 갖고 있는 필자로서는 시조단의 이러한 문제제기와 논쟁점이 남의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그것은 우리 현대시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지점에서 여전히 문제가 되는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시조가 특수한 상황에서 첨예하게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 먼 과거로부터 흘러온 것들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강물이 저 깊은 골짜기 상류의 물들을 버리고 바다로 흘러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서로 약간씩 연원이 다른 것들을 어떻게 뒤섞고 또 상류의 청정한 물결들을 어떻게 더럽히지 않으면서 강폭을 넖히고 많은 풍경들을 담아내며 흐를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현대시조는 이렇게 폭넓게 변화된 현대시의 강물 속에 뒤섞이기 위해 또 이 물결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 변화를 위해 많은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러나 이 변화를 위한 실험이 시조양식의 현대성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치밀한 논의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형식실험에 대한 옹호는 대개 기존의 낡은 정형으로는 현대의 복잡한 현상들과 다양한 사유들을 담아내기 어렵다는 식의 주장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왜 자유시를 쓰면 되지 여전히 시조라는 이름을 거기서 떼어내지 않는가 하는 것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없다. 정형성을 탈피하고자 하는 시조시인들 대부분은 시조의 정형이 갖고 있는 근원적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그저 한낱 무의미한 골동품으로서 답답한 제약이며 구속일 뿐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훨씬 매력적인 것은 그러한 정형성이 무너진 사설시조이다.

현대시조에서 사설시조는 평시조의 답답함을 해결해주는 통로가 되며 그들이 자유롭게 담아내고 싶은 현대성의 여러 가지 내용들을 많은 부분 받아줄 수 있는 해방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현대적인 사설시조가 시조를 극복하는 임무를 담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과거를 되돌아볼 때 역사적으로도 그러했다. 평시조와 사설시조는 문학사적으로 그 둘이 선후관계인지 아직 정확하게 증명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둘은 시가의 서로 다른 두 측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평시조는 그 안에 정치적 신념과 철학적 사상으로부터 개인의 서정과 자연의 풍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것들을 포괄할 수 있는 압축적 운문이었다. 그러나 사설시조는 구체적으로 부딪치는 시정의 산문적 현실들을 직접적으로 가져와 노래하며 육체적인 장면들을 구체적인 욕망들과 뒤섞어 평시조가 지켜내는 규칙을 위반하는 산문적 운문이었다. 그 둘은 차라리 서로 다른 영역을 가리키는 것이며 서로가 보완해주는 것이었다. 사설시조가 지닌 평시조에 대한 위반적 형식은 단지 형식자체에 대한 위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가나 판소리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너스레떠는 사설을 가져온 것이다. 흔히 수많은 사물들을 나열하고 반복하는 이 사설의 형식은 급박한 리듬으로 이끌고 가서 결국에는 육체적 흥분과 정신적 황홀로 귀착시키려는 의도를 갖는다.

파계승의 노골적인 육체적 애정행각이 돋보이는 탈춤처럼 사설시조의 많은 성적 모티프들 역시 계율과 금기를 넘어가는 육체적 흥분의 한 양상을 보여준다. 위반의 형식은 위반의 내용과 함께하는 것이다. 사설시조의 이러한 위반이 무조건 평시조를 비판하고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쉽게 말해버려서는 곤란하다. 마치 제의 뒤에 벌어지는 축제의 난장판처럼, 그리고 그 축제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위반의 형식들이 사실은 신성한 법과 질서의 생명력을 다시 불러일으켜 갱생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듯이 사설적 형식의 충동 역시 그러한 것이다. 따라서 사설시조적인 위반의 형식도 평시조의 정형성을 단순히 부정하는 것만은 아니다.

평시조적인 정형을 깨뜨리고 현대적인 형식 실험을 통해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견해들은 그러기 이전에 먼저 그 정형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어떻게 한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형식이 될 수 있었는지, 또 그 형식과 더불어있던 이념은 과연 완전히 생명력이 끝난 것인지? 그것이 어떤 계기를 통해서 미래를 선취할 수 있는 과거로 부활할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은 자유시와 여전히 대결하면서 있어야 되고 또 그러할 몫과 임무가 아직 여전히 남아있는지 진지하게 질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2. 삼장육구라는 그릇(器)과 六의 律呂 사실 평시조의 정형은 사설시조로 인해 파괴된 것이 아니다. 시조 정형의 뒤흔들림은 개화기에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때 양장시조라든지, 민요와 잡가 등의 형식과 내용이 뒤섞여 들어와 장르혼합 상태가 된 것 등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최동원에 의하면 당시 시조양식은 이분화된다. 근대화에 따른 이와같은 변화의 다른 한편에서는 과거의 고착된 전통이 그대로 이어졌다. 시조창의 가사로 쓰이는 시조는 음악의 측면에서 고시조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한 채 변화없이 그대로 계속해서 지어졌다(최동원<개화기시고>,<<고시조연구>>(국어국문학회 편)태학사,428쪽 참조).

개화기 시조의 이러한 형태적 변화는 내용의 심각한 변화를 동반한 것이었다. 즉 그것은 당시의 개화가사나 창가 등 다른 신종장르에서 쉽게 엿볼 수 있듯이, 시대의식을 고취하고 민족감정을 토로하거나 개화의 필요성과 방향 등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은 시조형식을 이용했을 뿐 그것이 간직했던 미의식에 대해서는 대부분 망각했다. 사실 개화시조는 예술로서 창작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목적을 위해 개발된 계몽과 저항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개화기의 변화는 두가지 점에서 주목된다. 첫째로는 시조의 정형적 구조가 지녔던 미적 특성은 거의 무시되어서 형식에서의 퇴행 현상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그것이 필연적으로 유발하는 음악적 요소가 더 이상 이 양식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전히 일정한 율조를 견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시조만이 갖고 있던 여러 가지 음률을 섬세하게 고려한 것이 아니라 가사나 민요의 율조와 별로 구분될 수 없을 정도로 형식적인 수준에 머무는 것이었다.

최동원은 당시의 특이한 유형인 흥타령체 시조를 두 수 들고 그것이 "시조의 율조는 아니다"라고 확인한다(위의 책,446쪽). 이렇게 개화기의 변화된 시조들은 주로 잡지와 신문(대한매일신보의 역할이 가장 막대하다)에서 일어난 것이어서 근대적인 인쇄매체와 관련된 것임을 주목하게 한다. 김제현은 이에 대해 이러한 인쇄문화의 발달이 '노래하던 시조'에서 '읽는 시조' '생각하는 시조'로 새로운 진로를 열게 하였다"(김제현, <<시조문학론>>,예전사,1995, 214쪽)라고 하여 시조의 근대적인 변화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

김제현은 더 나아가서 최남선의 <국풍4수>의 사설시조와 <삼면환해도>의 사설시조적인 부분들이 소위 신시라고 하는 것에 선행하였다고 하여 사설시조가 자유시의 선구적인 자리에 설 수 있음을 확인하고자 하였다(위의 책,226쪽 참조). 김제현이 춘원과 주요한의 시조에서 근대적인 개인의 자아인식과 서정적 기교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김소월의 실험적인 시조들을 통해서 시조와 자유시가 연관되는 흔적을 찾고자 하는 것도 모두 전통적인 양식인 시조가 근대적인 측면에서 성공적으로 변화될 수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요한의 시각적인 변화까지 보여준 실험 같은 것들은 시조가 이제 음악적 창으로부터 독립하고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노래로부터 시로 변화되는 이 모습이 과연 조동일의 말처럼 노래인 가(歌)에서 시(詩)로 승격된 것일까? 그리고 근대적인 개인의식과 개인적인 기교가 두드러지는 것이(오늘날의 현대시조에서 그러한 것의 궁극적인 발전을 볼 수 있는) 시조의 발전에 해당하는 것일까? 이러한 방향은 모두 자유시가 얻어낸 것들을 향한 것이며 그러한 것들이 발전적인 것이고 긍정적인 것이기도 하다(결국 자유시로의 도정은 모두 긍정적인 것이며 발전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거의 무조건적으로 승인되는 것을 여기서 목격한다).

시조에서 음악적인 것을 제거하고 났을 때 시조혁신의 문제는 자수의 문제에 집요하게 매달리게 된다. 1930년대 시조혁신론에서 가람 같은 선두주자는 "부득이한 경우 자수를 깨뜨려도 가함" 이라고 하여 기본적인 표준적 음수율을 고집하던 도남 조윤제와 맞서게 된다. 김윤식은 도남의 이러한 고집을 변증법적 미학으로 비판한 바 있다. 즉 형식을 만들어낸 내용에 대해 도남이 무지했음을 은근히 꼬집은 것인데, 김윤식은 그 비판을 본격화하기 위해 그 형식이 유교적 세계관과 엄밀히 대응하고 있음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시조의 정형시적 형식을 결정한 것은 유교적인 세계관"(김윤식, <<한국근대문학양식론고>>, 아세아문화사, 1980, 88쪽)이라고 하면서 "3장 6구의 극히 단순하고도 명백한 형식은 사상의 명백성과 밀접한 관련하에서만 고찰될 수 있다"(위의 책,92쪽)고 결론을 내린다. 이후 김윤식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시조의 이 정형이 지닌 단수형의 새로운 경지(이호우의 시조학)와 가람적인 형식초과가 갖는 멋의 경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탐색이다. 그의 생각으로는 이호우를 잇는 백수 정완영의 시조는 오히려 근대적인 측면에서 후퇴한 것이다(위의 책, 105쪽). 백수의 <조국>은 이호우의 그것에 비해 막연하며 미분화된 감정의 응어리로 된 조국을 담아낸 것으로 평가된다. 그것은 이호우의 절대적인 세계관과 대비된다. 김윤식이 도남과 이호우에게서 읽어낸 것은 도학파적인 선비의식이었으며, 그것의 사라져갈 운명에 대한 것이었다. 반면 가람의 형식파괴에서 그가 읽어낸 것은 근대적인 세계관이 아니라 주자학적 세계관의 한 측면인(변두리적 餘技 정도로 김윤식이 생각한) 사장파적 멋이었다. 그 멋은 "심심풀이이며 장난삼아 할 일이 없이 (역사나 사회에 관심이 없이도) 묵화를 치듯 하는 것일 따름"(위의 책, 97쪽)이라는 것이다.

결국 김윤식은 가람의 형식파괴가 근대적이기는커녕 묵직한 세계관적 이념과도 상관없는 장난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호우의 정형적 틀은 그 안에 선명한 계층의식(선비의 세계관)을 담고 현대의 역사와 대결함으로써 오히려 더 근대적인 의미를 담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백수 정완영은 그러한 세계관이 선명하게 내비치지 않으므로 오히려 퇴영적으로 보인다고 평가한다. 김윤식의 이러한 주장은 거친 듯 보이지만 지금도 논쟁의 여지를 남기고 있는 논의의 깊이를 지닌다. 시조의 정형을 단지 퇴영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이호우의 시조를 현대시조의 한 봉우리로 세우는데 서슴지 않는 것은 근대적인 학자로서는 보기드문 일이다.
시조의 형식을 파괴하는 실험들에 대해 근대적인 시도라고 말하지 않은 것도 여전히 인상적인 대목이다. 여기에 덧붙여 3장6구를 "천지의 말씀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던 백수에 대해서는 그 세계관적 결핍을 들어 비판한 것 역시 인상적이다. 김윤식의 이러한 논점은 오늘날 시조문단에서 벌어지는 논쟁, 즉 정형에 대한 옹호와 비판에 대한 여러 논쟁들을 어떤 부분에서 훨씬 이전에 이미 넘어서 있다.

즉 시조의 정형은 그 시조를 만든 계층의 세계관을 담은 그릇이라는 것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거기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그 계층은 이미 역사적으로 몰락했으며 그 그릇을 이렇게 저렇게 변화시켜 봤자 그 기본틀을 유지하던 세계관에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는 운명을 시조는 간직하고 있으며, 시조를 짓는 현대 시조시인들에게 그 몰락한 세계관의 운명은 마치 마법처럼 작용하여 그들을 미혹시킬 뿐이라는 냉혹한 생각이 그의 글에는 숨어있다. 그러나 김윤식은 시조의 풍류와 멋을 도학적인 세계관과는 관계없는 단순한 기교로 착각했다. 또 삼장육구의 정형적 틀을 주자학적 세계관의 예술형식적 외피로만 축소시킨 감이 없지 않다. 그는 그것을 만들어낸 선비계층과 그 형식을 너무 완강하게 고착시키고자 했다. 마치 그 계층만이 시조의 골수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그 형식과 대응되는 철학을 그들만이 가지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이러한 생각은 시조양식을 주자학적 선비계층의 전유물로 만들며, 그들이 살던 시대의 한계 속에 가둔다. 즉 그것을 만들어낸 계층없이 그 형식만을 가지고 논의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오늘날 시조에 대한 논의나 창작은 근대적인 문제의 중심에 설 수 없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러한 허무주의적 관점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필자는 하나의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시조에 달라붙은 퇴영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던 악(樂)에 대해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새로운 논점들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사실 노래를 시조에서 삭제하는 순간 시조의 정형이 갖는 진정한 형이상학은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되었을 때 음악의 비본질적인 요소인 자수율에 대한 논의들이 시조형식에 대한 논의에서 중심적인 것처럼 논쟁의 초점이 된다. 시조를 일정한 곡조가 없는 민요와 달리 악과 곡이 합해진 노래(歌)로 인식할 때 가사의 자수가 음악적 단위가 되지 못할 것은 당연하다.가사를 다스리는 고저장단의 율동이 거기서 문제된다. 그리고 이 음악적 요소에는 시인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 악의 요소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보면 오히려 가장 근본적인 것이었다.

<<樂記>>에서 말한 것처럼 시와 노래와 춤은 음악을 구성하는 세가지 요소이기 때문에 시는 음악에 포함되는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음악적 요소가 시조가사의 문장구성을 어느 정도로 통어해갔을 것은 물론이다. 그것이 외면적으로 확연하게 드러난 것이 삼장육구의 형태일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시조에서 이것이야말로 악의 기본이며 그 악의 이념이 겉으로 드러난 형상이다. 그것은 마음의 근원자리에서 흘러나와 모든 것을 다 담고 조율할 수 있으며 어떠한 변화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인 것이다.

말의 음악적 질서를 보여주는 이 "그릇"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와 음악의 관계양상을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자리에서 보여준 순임금의 이와 같은 언급을 참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순임금은 삼례(三禮)를 담당할 신하를 찾아서 사악(四岳)에게 물었을 때 백이를 천거받는다. 그러나 백이가 사양하며 기(夔)를 천거한다. 그러자 순임금은 기를 전악(典樂)의 직에 임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시(詩)는 뜻을 말로 표현한 것이고 노래(歌)는 말에 가락을 붙여 길게 읊은 것이고, 소리는 가락을 따라야 하며, 음률은 소리와 조화를 이루어야 하오. 팔음이 조화를 이루어 서로의 음계를 빼앗지 않으면 신과 사람들이 조화를 이룰 것이오.(강명관/이상진 편역,<<서경>>,자유문고,1992,41-42쪽) 순임금은 천지인 三神에게 바치는 禮를 천거받은 夔에게 담당시키기 위해서 말의 문학(시)과 음악적 측면을 동시에 이야기 한다. 여기서 우리는 말의 음악적 측면을 조율하는 "律"이라는 단어를 만나게 된다. 이것은 자연의 조화로운 질서를 생명의 율동으로 파악한 것으로서 일년 열두달의 12律呂를 가리킨다.

<<禮記>> 중의 <樂記>편을 보면 순임금을 비롯한 "선왕들이 음악을 만든 것은 선왕이 천지의 이치에 따라 백성을 다스리려고 했기 때문"(이상옥 역저, <<예기>>중, 명문당,1995,224쪽)이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樂이란 천지의 조화와 화합의 이치에 상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악기>의 다른 부분에서 이에 대한 더욱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이리하여 선왕은 음악(의 조직)을 만드는데 인간의 성정에 근거를 두고 정연한 원칙을 세우고 예의에 맞추어서 천지의 和氣에 맞추고 五行의 이치에 따르게 하며 發揚하는 음은 있어도 산만하지 않고 陰이 밀폐되지 않고 剛氣가 성내지 않고 柔氣가 두려워 하지 않게 하였다.

음양강유의 이 네가지 기운이 적당한 정도로 악곡 속에 배합되어서 음이 되어 밖으로 발현하는 것이고 이 네기운이 모두 각각 위치를 차지하고 서로 침범하지 않도록 한다(위의 책, 227쪽 참조). 이렇게 보면 음악의 律이란 것은 천지 자연의 질서와 대응하는 것이다. 그 자연의 질서는 위에서 보듯이 음양오행의 질서이며 그것은 시공간적으로는 네 방위와 네 계절이 된다. 그것은 시가의 기본형식인 기승전결의 구도와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시의 오언절구와 칠언절구는 아마도 이러한 음악적 질서의 구도일 것이다. 오언은 5행을 칠언은 음양오행을 의미할 수 있다. 시조의 형식 역시 대략 이러한 음양오행의 질서에 대응되는 음악적 구도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삼장의 형식은 기승전결의 구도를 축약하고 압축한 것으로 대개는 이야기되고 있다. 즉 종장 첫구는 한시의 轉에 해당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단지 압축하여 간결미를 드러냈다는 것보다는 그렇게 압축함으로써 셋이라는 단위를 선명하게 드러내게끔 만들었다는 의미를 추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음악의 자연적 질서를 드러내는 것으로서 세가지 큰 묶임(삼장)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앞에서 순임금이 말했던 삼례의 三과 통하는 것이 아닐까? 즉 천지인의 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기승전결을 대입한다면 천지는 기와 승에 대응되고 그 둘이 합쳐서 전환되어 귀결되는 것이 人이기 때문에 전결이 인에 해당 될 것이다. 육구의 六은 천지인의 각 爻가 動靜하여 6爻로 작용함을 의미하며 그것이 오행으로 움직이며 자연의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사방과 사계는 이것의 드러남이다. 시조의 삼장육구라는 그릇은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르는 자연의 도를 담고 있을 수 있으며 따라서 그것을 통해서 그러한 도를 닦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의 연원이 어찌 조선의 도학적 선비계층에만 국한되겠는가. 그 구체적인 형태는 시조에 들어와서 정립되었어도 그 형태를 지배하는 정신의 연원은 위의 순임금 시대에서처럼 그지없는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형태적 연원은 신라 향가의 三句六名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유종국은 불교에서 句와 名의 쓰임새를 고찰한 김준영의 글을 인용하면서 그것이 결국 삼장으로된 여섯마디를 일컫는다는 결론을 내렸다(유종국,<<고시가양식론>>,계명문화사,1990,171-172쪽 참조). 일연은 <<삼국유사>>의 <가락국기> 편에서 김수로왕이 즉위하고 서울을 정할 때 "하나에서 셋을 이루고 셋에서 일곱을 이루었던 七聖이 살았던 땅이 진실로 여기에 부합된다"고 한 말을 인용한다. 우리의 고유한 경전이라고 하는 <천부경>에도 비슷한 구절이 존재한다. 따라서 시조의 삼장을 민요의 어떤 형태들이 발전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진 우연한 산물로 보는 막연한 추정이나 한시 형식의 축약정도로 해석하는 것은 이러한 내용을 갉아먹는 자기비하에 불과하다. 그것을 단지 우연히 삼장으로 고정된 것으로, 간결미를 사랑하는 계층의 미의식 정도로 축소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유학자들의 명백한 사상을 드러내는 것에 고집스럽게 갇혀있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주자학 이전의 고대 유가사상과 최치원이 언급했던 우리 고유의 풍류도 사상, 그리고 향가의 삼구육명이 함축하고 있는 불교적 사상의 미묘한 복합 속에서 사유되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시조가 왕성하게 창작된 시기에 시조는 이 세가지 영역을 모두 포괄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시조와 자유시의 경계,
시조의 나아갈 길 시조의 정형이 갖는 이 오랜 연원과 그로부터 흘러온 형이상학을 되새겨볼 때 백수 정완영이 "천지의 말씀을 담는 그릇"이라고 말한 것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권갑하가 "절제와 갇힘의 미학"에 대해 말하면서, 갇힌 형식을 통해 "모든 것을 포용하고 지상의 모든 때 묻은 것을 정결히 걸러낸다"(<<열린시조>>97년겨울, 213쪽)라고 했을 때 그것은 어느 정도 백수의 생각과 비슷한 것이 된다. 김준태는 "오랜 세월을 통해 보석처럼 갈고 닦아진 문학장르" (위의 책, 74쪽)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을 표명하는 시인들 역시 옛시조의 평이하고 자연스러운 말과 어법을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는 노래가 아니라 시이기 때문이다.

노래를 잃어버린 시조는 삼장육구의 형식을 갖추어도 그 형식이 마치 김빠진 것처럼 생명력을 잃어버린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 음악적 요소가 탈락된 시에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산수자연 속에서 음풍영월했던 가락의 상실이다. <악기>에서 "악(樂)이라는 것은 즐거움(樂)"이라고 하였듯이 시조의 풍취는 그 요체가 山水樂(樂山樂水)에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음악적 요소의 탈락은 이러한 山水樂의 경지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산수자연에서의 음풍농월이란 자연을 음율로서 구성하는 가락을 전제할 때만이 그 의미가 생생하게 살아나기 때문이다.

현대시조의 실험적인 것들을 주장하는 시인들은 그러한 음풍농월을 구태의연한 것으로 경멸하기 일쑤이다. 그만큼 이제는 악樂의 본질에서 멀어진 시조가 현실적으로 남아있으며 그로부터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악(樂)의 탈락은 근대화의 진행과 함께 점차 심화된 현상이다. 서구적인 근대화는 곧 서구적인 부르조아적 합리성과 민주주의적 정치체제를 지향하는 것으로서 동양적 형이상학과 정치철학의 폐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우리의 악학사상에 내재한 음양오행의 자연철학은 개화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숨어든다. 시조에서 음악이 탈락한 것은 시로 승격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적 철학적 재산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린 것이 된다. 현대시조의 언어들은 이제 음악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으로 말들 자체의 내면적인 울림들에 귀를 기울이면서 옛날의 음악적 흔적인 삼장육구의 정형 속에서 불안하게 움직인다. 왜냐하면 삼장육구는 이제 현대적인 언어들에게는 마음에 썩 들지도 않고 자신들의 활동에 별로 어울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백수가 삼장육구는 등불이요 지팡이라고 했지만 그 뒤를 따라가는 시인들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는 않다. 많은 시조시인들은 삼장육구의 틀을 뒤흔들면서 여전히 시조의 내밀한 율조를 새로운 방식으로 추구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그러한 시도들은 상당 부분 자유시의 형태와 혼동을 일으킬 정도로 심각하게 시조의 정형으로부터 일탈되어 있다. 아무리 본인들은 시조의 변형이라고 하지만 현대시 연구자가 볼 때에도 자유시와 구별이 가지 않을 때 과연 그것을 여전히 사람들에게 시조로 읽어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현대시조의 나아갈 길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먼저 그것의 첫 번째로 필자는 전통적 이념의 새로운 발견에 두고 싶다. 시조의 정형 속에 스며있는 오랜 철학적 이념을 사라진 것으로서가 아니라 부활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할 때만이 현대에 시조의 존속 이유와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적인 문명을 시조의 본래적인 이념으로 비판하고, 현대문명과 불화관계에 빠진 시조의 형태를 불안하게 뒤흔들린 모습으로 창조하는 것은 따라서 의미있는 시도이다. 시조는 위협받는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며 자신의 근거에 대해 성찰하고 과거를 되살릴 수 있는지 불안하게 모색하는 모습으로 이 시대에 자신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자유시의 자의식적인 주체가 그러한 성찰과 모색을 위해 시조 속에 등장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은 자유시를 흉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즉 그것은 시조의 정형과 이념을 의식하면서 자신에 대한 질문을 등에 지고 가야하는 것이다.

시조의 현대적 실험이 시조의 경계선을 넘어선 경우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러한 실험들은 오히려 더욱 자유롭게 열려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시도는 어디까지 시조의 영역을 확대해볼 수 있는가 하는 시험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시조 양식을 바탕으로 해서 혁신적인 실험을 해나갈 때 현대시의 영역은 얼마나 새롭게 개척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여전히 "시조"이어야 하는가에, 또는 여전히 "시조"인가 하는 물음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러한 물음은 시조양식의 현대적 실험들이 가져올 많은 소중한 결과물들을 제약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실험들을 통해서 얻어내야 할 것들은 오히려 자유시의 문제점들을 꼬집고 자유시의 파행적인 현대성을 비판하며,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영역들이다.

서구적이며 식민지적 편향에 의해 우리의 정서를 왜곡하고 우리 언어를 엉뚱한 외래미학으로 도배하는 것을 현대적인 것의 전위처럼 앞세우는 것들에 대해 이러한 시조의 실험들이 맞서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아마도 이러한 실험들이 제대로 길을 간다면 우리의 자유시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며 시조와 자유시의 문학사적 연결도 자연스러움을 얻어 지금까지의 파행적 역사를 뛰어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조의 진정한 실험은 삼장육구를 낡고 퇴행적인 것으로 팽개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 정형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그것과 긴장된 관계를 맺으며 그것을 팽팽하게 의식할 때만이 의미 있는 일탈들을 만들 수 있다. 그러한 정형으로부터 어떻게, 왜 떨어져나 왔으며 그렇게 해서 얻어낸 자유의 영역은 과연 무엇이고,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러할 때 비로소 대답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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