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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별 - 서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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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378회 작성일 16-01-1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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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별

 

 

서해성(소설가)

 

괴테는 별과 별 사이에 다리를 놓곤 했다

케플러는 모든 별들의 움직임에서 음악소리를 들었다(미친 과학이 시다)

고흐는 별들을 보리밭에 아무렇게나 찔러 두거나 주머니 속에 넣고 다녔다

때로 술집에 흘리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은 길 잃은 별을 달래서 집으로 데리고 와 책 속에 넣어주었다

이백은 물을 통해 달 표면에 곧장 도착했다

암스트롱보다 1천5백년 전 일이다

시란 걸어서 문득 별에 이르는 과학을 말한다

 

케플러 묘비에 남아 있었다는 글귀가 전하길, ‘어제는 하늘을 재더니 오늘 나는 어둠을 재고 있다. 나는 뜻을 하늘로 뻗쳤지만 몸은 땅에 남는구나.’ 그날 별비가 내렸다. 죽어, 그는 우주의 시가 되었다. 아직 별들이 방향을 잃지 않고 있는 건 케플러가 저 밤하늘을 헤쳐 별길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칠삭둥이로 태어난 그는 천연두를 앓아 평생 흐릿한 눈으로 별을 관찰하고 질서를 부여해주었다. 그 뒤로 별들의 협주가 가능해졌다.

 

단순한 천체학자는 인간세상에 뜨는 별을 보지 못한다. 하위헌스는 스피노자가 갈아낸 렌즈로 토성의 고리를 발견했다. 갈릴레오가 토성의 귀로 이름 붙이고 남겨둔 것이었다. 하위헌스의 별은 과학으로서 별이고, 사유 역사와 인간진보 역사에서 별은 스피노자다. 스피노자는 렌즈를 깎느라 허파에 유리 가루가 가득 찬 채 굴절 없는 인간양심의 렌즈로 죽었다. 그는 말했다. 국가의 목적은 자유다. 그 스피노자가 하늘로 흩어져 근대 이후 우주가 마침내 푸른 것이다.

 

알다시피 인간들은 별을 창조해왔다. 고흐의 별은 감성의 별이다. 윤동주의 별은 양심의 별이다. 고은의 별은 시대의 뜨거운 직관으로서 별이다. 옥담 위의 별은 불행히도 여전히 실천의 별이다. 생텍쥐페리의 별은 상상의 별이다. 사막에 도착했는데도 미처 귀 큰 사막여우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건 시력 탓이 아니라 시를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와 연애는 삶의 시력을 높이는 유이한 외길이다. 참고로 사막으로 떠날 일이 있다면 간짓대를 가지고 가는 게 좋다. 별들이 둥근 지평선에서 떠올라 이윽고 손에 잡힐 듯 눈앞에 왔을 때 휘저어 몇 개쯤 떨구어내고 싶다면 꼭 필요한 장비다.

 

시에 돋아나는 별을 볼 수 없는 자가 하늘의 별을 읊조리는 건 별과 우주에 대한 모독이다. 어떤 시도 별보다 먼저 태어나지 않았지만 어떤 별도 시보다 먼저 뜨지 않는다. 언어 자체는 별일 수 없다. 시에서 별은 말과 말 사이에서 뜬다. 거기가 시의 거처다. 별을 노래할 때 시란 신의 바느질 자국이다. 시가 없으면 하늘과 땅을 기울 수 없고 굴러 떨어지는 이슬 또한 꿸 수 없다. 시가 있어 별이 가슴에 살고 소동파네 뜨락 국화는 여태 시들지 않고 피어 있다. 시는 언어의 별이고 별은 우주의 시다. 반짝이는 별은 실로 육체로서 정신이다.

 

남도에서는 죽은 자가 지상을 마감하는 저녁 푸른빛을 띠는 불이 먼저 집을 나선다고들 한다. 혼불. 사람 저마다는 살아있을 때 필시 별이었던 것이다. 최명희는 이를 섬세한 소설의 제목으로 삼아 한 생애를 문자의 별로 살다 갔다. 망원경으로 측정할 수 없고 카메라로 찍을 수 없는 별이야말로 인간사 친족인 것이다. 과학은 이 삶의 별을 더 닮아야 한다.

 

맹골죽도는 인구 두셋이다. 어제 본 갈매기 일곱, 매 다섯 마리, 맹골수도를 떠나지 못한 아이들이 돌담 틈새 파도소리로 찾아와 별 삼백넷, 그 밤하늘에서는 섬 인구가 삼백예닐곱이 된다. 바다가 별을 품고 사는 까닭은 파도가 우는 일을 포기한 적이 없는 까닭이다. 칠월 하늘바다, 저기 별이 운다.

 

서해성 | 1961년 출생. 1989년 《실천문학》에 단편소설 「살아오는 새벽」으로 등단. 한신대학교와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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