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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연인의 홍조와 열망 - 김백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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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166회 작성일 16-02-2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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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연인의 홍조와 열망 - 김백겸

 

 

순수의 전조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지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붙잡는다.

 

Auguries of Innocence

 

-William Blake

 

To see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a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 hour……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 부분)

 

이 시를 처음 읽고 가슴이 뛰었던 생각이 납니다. 큰 세계를 이토록 짧은 시안에 표현한 시를 전에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또 하나는 시로서 시 밖의 세계를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선시(禪詩)가 언어와 사건의 역설과 어긋남을 통해 생각 밖의 세계를 드러내는 데 비해 이 시는 언어와 사건이 어긋나지 않고도 유추와 상징으로 무한세계를 드러내는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주관적이어서 이런 시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이 익숙하게 보던 개념들과 언어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초등학생들이 이 시를 보고 느낄 당황함이 생각납니다.

 

언어

 

시는 언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언어들에는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르는 감각과 경험의 내용이 달라붙어 있습니다. ‘달라붙다’는 의미에는 ‘배워서 익혔다’는 뜻과 한 단어에 여러 경험과 감각이 동시에 매달려 있어 다양한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가 본 ‘들꽃’(쑥부쟁이나 수선화나 개망초의 경험이 다르겠지요)과 자기가 배운 “천국”(기독교인의 천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천국이 다를겁니다)으로 이 시를 이해할겁니다. 생각이 주로 언어라는 상징체계로 구성되는 데 비해 의식은 언어에 느낌과 감정을 포함한 보다 큰 범위입니다. 언어로 보는 그림보다 의식은 보다 큰 세계지도를 보고 있습니다. 세계(世界)란 인간의식이 파악한 시간과 공간의 그림입니다. 우리 각자가 본 세계지도의 크기는 대소(大小)와 고저(高低)와 형태가 매우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더 복잡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무의식입니다. 우리 뇌를 관찰한 결과 뇌는 자원의 5%를 의식활동에 무의식활동에 95%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프로이드가 ‘무의식’을 발견한 이래 무의식을 더 연구한 칼 융은 무의식이 계층구조(Persona, Shadow, Anima, Self)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신의 소여구조인 원형(Archetype)을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세계인식은 의식이 본 그림에 추사해서 선명하진 않지만 보다 큰 그림을 배후에 두고 있습니다. 시는 이런 무의식의 그림까지를 포함해서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이런 저런 사정을 감안하면 상징인 언어가 담당할 수 있는 용량은 인간 마음의 약 1% 정도라고 유추가 되는군요. 1%의 상징 언어는 글자를 포함한 도형, 기호, 색채, 음악 등 여러 형식이 있습니다. 글자를 주로 해서 마음이 본 세계(世界) 전체를 표현하는 시는 그래서 유추와 은유를 통한 암시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시를 쓰는 일은 조금 과장해서 바늘귀를 지나가는 낙타의 수고로움과 비견할 만 합니다.

 

유추(Analogy)와 은유(Metaphor)

 

유추와 은유는 복잡한 현상들 사이에서 내적 관련성이나 기능적 유사성을 알아내는 정신작용입니다. 패턴이 같다고 여겨지는 사건을 같은 개념의 범주로 파악하는 거죠. 과학은 유추와 은유가 비논리적이라서 사물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추와 은유는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경험에 알려진 것과 경험에 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에 다리가 될 수 있습니다. 상상의 도약으로 새로운 세계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창조적 상상력이란 두 사물간의 숨겨진 관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한 알의 모래”는 저희가 흔히 경험하는 사물입니다. 초등학생과 어린아이도 모래는 잘 이해하죠. 오히려 모래를 가지고 장난하는 놀이를 읽어버린 어른보다 더 생생하게 이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세계(世界) 즉 인간이 경험한 시간과 공간의 크기(기억과 교육으로 전승된 인류가 경험한 시간과 공간 내의 모든 사물로 확장할 수도 있겠네요)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블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유추했습니다.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저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독자는 자신이 본 시간과 공간의 경험을 살려 블레이크의 유추로부터 새로운 유추를 감행합니다. 유추의 유추는 고급정신기능입니다. 창조적인 사람만이 할 수 있지요. 저는 고급 독자로 하여금 이런 생각의 도약을 하도록 암시한 블레이크가 위대한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블레이크가 예시한 공간 안의 사물들 “한 알의 모래”와 “한 송이 들꽃”과 “손바닥”은 모두가 낡고 부서지는 존재들입니다.

이 일회적인 존재의 가엾음에서 유추한 “세계”와 “천국”과 “무한”은 녹슬지 않고 부서지지 않는 ‘황금’으로서의 세계전체를 암시합니다. 블레이크는 개별적인 사물에 깃든 전체로서의 일자(一者)를 드러냄으로서 ‘낡고 부서지는 존재’가 자신의 한계를 초월한 존재의 일부임을 드러냈습니다. 강력한 은유는 인간의 경험에 ‘알려진 것’에서 ‘알려지지 않은 것’을 드러낼 때 이루어집니다. 훌륭한 은유는 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지닌 최대의 지혜와 집중력을 요구하죠. 물론 독자에게도 동일한 크기의 상상을 강요합니다. 현대 물리학은 시간과 공간안의 모든 사물이 빅뱅 후 ‘초 에너지’가 식으면서 디자인 됐다고 말합니다. 중력과 강력과 약력, 그리고 전자기력이 나타난 후 서로의 상관관계로 시공간과 물질이 디자인 됩니다. 태초의 재료가 모두 같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이런 직관은 인도의 ‘우파니샤드’나 ‘불경’에 있는 사상들입니다. 서양은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의 사유와 ‘영지주의’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나 블레이크의 시적 직관은 자신이 본 눈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 언어로 이를 표현해 냈습니다.

 

감정이입(Mirroring & Empathy)

 

뇌 과학자들이 재미있는 결과를 밝혀냈습니다. 원숭이가 땅콩을 집어 먹는 순간에 이 동작을 보던 다른 원숭이의 뇌도 동일한 흥분이 일어나는 뉴런집단을 발견했습니다. 인간이 타인의 정서를 이해하는 신경기전이 밝혀졌습니다. 타인이 매를 맞는 장면을 보고 내가 매를 맞는 것처럼 고통을 느낍니다(물론 강도는 차이가 있겠지요). 영화나 연극을 보는 관객이 주인공이 되서 스토리에 몰입하는 내부가상 현실시뮬레이션을 과학자들은 미러링(Mirroring)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타인에 대한 행동모방능력은 진화상 5만 년 전 쯤에 폭발적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집단생활이 중요해지면서 타인에 대한 모방능력이 문화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됐다고 해석합니다. 이 능력이 손상된 자폐아와 정신분열자들은 심각한 사회부적응장애를 나타냅니다.

모든 예술은 감정이입을 기반으로 해서 성립합니다. 작가의 정서(타인의 정서)를 이해할 수 없으면 그 작품의 내용은 전달이 될 수 없습니다. 칼 포퍼는 새로운 이해를 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으로 감정이입을 생각했습니다. 그의 생각에 의하면 감정이입이란 ‘문제 속으로 들어가 문제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감정이입의 가장 친숙한 경우가 인간의 사랑인데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 일부가 되는 것처럼 느낍니다. 육체적으로 한몸이 되는 에로스와 정신적으로 한 몸이 되는 ‘아가페’의 형식이 생각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시(Poesie)’와 사랑에 빠지지 않고는 시를 쓸 수가 없습니다. 그 감정이입의 형식이 에로스와 아가페를 취하는 것은 개인의 스타일이지만 사물에 대한 깊은 공감능력-사랑이 필요합니다. 무용가 이사도라 던칸은 무용이 사람의 몸 속에 감정이입기제를 자극하여 ‘관객이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싶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란 시를 읽은 독자가 시인이 느낀 포에지의 세계를 스스로 시인이 되어 체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시인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 이것이 시 창작의 요체입니다.

 

열정(Passion)

 

이 단어를 단순히 배웠을 때는 영한번역으로 열정, 격노, 욕망을 의미하는 심적인 에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삶의 다른 일도 마찬가지이지만 예술은 특히 열정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열정(Passion)이야말로 시창작의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야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Passion of Christ)」라는 영화제목을 보고 ‘Passion’이 ‘수난(受難)’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무식을 면했습니다. 기표 하나에 다중 의미는 이미 알려진 언어이론이지만 저는 열정과 수난이 한 몸의 다른 표현이라는 점에 흥미를 가졌습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예수는 종교적 열정이 지나친 분이었지요. 당대의 보수이데올로기인 유대교의 교리를 부정하고 혁명적인 종교사상을 퍼뜨려 집권층의 반감을 샀습니다. 예로부터 권력은 체제 위협자를 반역이라는 누명을 씌워 삼족을 멸했지요. 신의 소명과는 상관없이 객관적 상황으로 보건대 예수의 수난은 예고된 수순이었습니다. 시도 종교적 열정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시인(예술가)은 자신의 열정에 의해 기존 문화가치가 찬양하는 예술형식을 새롭게 전복하려고 합니다. 혁명가는 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수난을 당합니다. 혁명적인 작품을 창작했으나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수난을 당한 예술가들이 많습니다. 화가로서는 고흐가 대표적이지만 「순수의 전조」를 쓴 블레이크도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종교적인 신비를 주제로 시를 많이 썼는데 기존의 기독교 교리해석을 뛰어 넘는 작품이 많았습니다. 사회적인 불이익과 수난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기존의 사물인식을 전복하려는 이유는 심혼의 열정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Passion’은 축복과 저주의 양가감정을 가진 말입니다.

 

은폐

 

사랑에 빠진 영혼은 그 열정을 감출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열정을 감추고자 할 때 눈은 대상을 직접보지 못하고 눈길을 아래로 향하게 합니다. 발화하지 못한 정념은 얼굴과 목에 홍조로 나타납니다. 많은 문학작품에서 사랑에 빠진 연인이 침묵과 그윽한 눈길로 말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침묵하는 연인 사이에는 긴장이 있지요. 사랑에 빠진 정신―시도 이와 비슷한 위기와 과정을 거칩니다. 시적 대상에 매혹당한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으로 시를 씁니다. 현실가는 욕망의 대상을 싸워서 쟁취합니다. 권력과 돈과 육체적인 힘으로 얻습니다. 시인은 현실의 약자이기에 자신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못합니다. 연애에 비유하면 구혼을 못하는 것이죠. 그러나 욕망은 감출 수 있는 성질이 아니어서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수줍게 표현하는데 저는 문학의 아름다움과 매혹이 여기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줍음은 현실적으로 드러낼 수 없는 것을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강력한 기호입니다. 시는 현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지요. 말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표현입니다. 시는 은유와 상징이라는 감춤을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간절하게 드러냅니다. 인간만이 사랑과 욕망의 미로인 삶에서 먼 길을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동물은 욕망의 순간에 바로 섹스를 합니다(가장 에너지가 적게 들고 현실적입니다). 인간 중에서도 특히 시인은 사랑의 방식에서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정하고 환상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열정과 숭고함을 사랑하는 나르시스트입니다.

이 얘기를 블레이크의 시 「순수의 전조」에 대입해 봅니다. 블레이크는 사물에 깃든 ‘절대정신’에 매혹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대정신이라는 ‘대타자’에게 자기주장을 할 수 없는 약한 인간이기에 그는 ‘한 알의 모래’ ‘한 송의 들꽃’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문학적인 용어로 ‘주체’와 ‘대타자’와 ‘현상’과 ‘본질’ 사이에 긴장이 발생합니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거리가 멀수록 시적 긴장이 높아지는 은유법칙이 있지요. 얼굴을 가린 베일이 깊을수록 연인에 대한 환상이 깊어지고 유혹이 발생합니다. 인간이 표현하는 수줍음과 유혹은 한 욕망의 다른 형식입니다. 수줍음은 대상에 대한 욕망을 끝없이 지연시키고 방황하게 만들어 욕망의 샘물이 마르지 않도록 합니다. 예술가는 결코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가 없지요. 문학작품이 끝없이 창작되는 이유입니다.

 

놀이

 

시란 사고와 감정을 재료로 해서 상상력으로 만들어지는 놀이입니다. 사고란 내면화된 행동이며 실제 행동을 위한 시뮬레이션입니다. 감정은 사고의 다른 형식이지요. 외부사물에 대한 희로애락의 판단이 개체가 취하는 행동지침의 원인입니다. 저는 그래서 시란 현실에 대한 많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인간의 앎의 형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놀이이기 때문에 현실의 성패를 따지지 않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상상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꿈과 같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을 시에서는 할 수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뒤집고 기존의 앎을 변형시키고 시형식 같은 게임의 규칙마저 자신이 새로 만들 수 있습니다(능력이 된다면 말이지요).

시를 잘 쓸려고 너무 심각하게 긴장해도 시는 ‘구멍을 판 여우’처럼 숨어버립니다. 어떤 시인은 열심히 지나쳐 여우 구멍을 파는 사람도 있지만 영리한 여우는 이미 세 개의 예비구멍을 파고 있어 달아나고 없습니다. 시는 자신과 놀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에게 고개를 내미는 어린 여우와 같습니다. 자유연상에서의 언어는 여우처럼 상상력의 변화를 보여주고 결국은 다른 세상의 마법을 보여줍니다. 어떤 여우와 노느냐가 시의 내용과 품격을 결정하는데 꼬리가 아홉인 천년 묵은 구미호이면 더 좋겠지요.

「순수의 전조」에서 블레이크는 ‘무한’과 ‘영원’이라는 구미호와 놀았고 그의 상상력은 단순하면서도 통찰이 깊은 시를 썼습니다. 사실상 이 시는 다소 긴 장시의 첫 부분입니다. 천변만화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시행들이 이어지지만 핵심은 이 4행에 있습니다. 나머지는 다 사족입니다. 현교(顯敎)인 『반야심경』은 공(空)에 대한 해석을 보여주다가 마지막으로 말할 수 없는 경지를 드러내기 위해 밀교(密敎)인 주문으로 끝나고 마지막에는 침묵이지요. 언어분석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명제를 말했지만 시는 침묵으로부터 수줍게 드러내는 연인의 홍조이자 열망입니다. 시인은 침묵할 수가 없습니다. 세계에 대한 그의 사랑에 대해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연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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