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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과 '만하다'에 대하여 - 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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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87회 작성일 17-12-0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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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과 '만하다'에 대하여

   

      강 인 한

 

 

 

   요즘 잡지에서 흔히 보는 '만한'이라는 말. 편집자들은 절대적으로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을 신봉하는 이들이라서 "어떤 크기와 견주는 말"인 '만한' 도 '만 한'으로  띄어쓰기를 합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이처럼 커다란 구멍은 없을 것이다

      점점 커져서 지구만 한 

      구멍만 한 지구

 

   이와 같은 표기를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된 이면에는 컴퓨터의 '한글 프로그램'에도 책임의 일단이 있다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한글'로 문서를 작성할 때 '지구만한'이라고 붙여서 쓰면 맞춤법에 틀렸다고 컴퓨터가 스스로 알아서 빨간 밑줄을 쳐 줍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편집자는 그 지시를 받들어 의심 없이 '지구만 한'으로 띄어서 씁니다. 그러면 컴퓨터는 만족한 듯이 빨간 밑줄을 깨끗이 지워버리지요.

   1989년에 시행된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에 보면 말 곧 어휘 체계에 대한 개정을 한 것이지 그게 우리 국어의 문법 체계를 손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순 우리말 ‘만’의 쓰임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외에는 없습니다.

만¹ [의존명사] 동안이 얼마 계속되었음을 나타내는 말. * 이거 얼마  만인가? / 3년  만에 만나다.

만² [조사] ①사물을 한정하여 이르는 보조사. * 나만 가겠다. / 공부만 해라. ②앞의 사실 또는 동작을 강조하는 보조사 * 보기만 해도 마음이 흐뭇하다. ③정도를 비교하는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 이것은 저것만 못하다.

만³ [조사] 접속 조사 〈마는〉의 준말. * 받기는 받는다만 달갑지는 아니하다.

 

만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용법이 있습니다. 주의할 것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그 중 하나를 실수로 빠뜨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하다 [보조형용사] (어미 ‘-ㄹ'이나 ‘-을’ 뒤에 쓰여) ①동작이나 상태 등이 ‘거의 그 정도에 미치어 있음’을 뜻함. * 한창 일할 만한 나이. ②어떤 사물의 값어치나 능력이 ‘그러한 정도임’을 뜻함. * 다시 볼 만한 영화. /읽을 만한 책.

만하다[접미사] ①일부 체언 뒤에 붙어, ‘그와 같은 정도에 미침’을 뜻함. * 주먹만한 감자 ②일부 관형사에 붙어, ‘어떤 정도에 그침’을 뜻함. * 병세가 그저 그만하다.

 

    생각해 봅시다. ‘주먹만한 감자’라는 말은 ‘감자가 주먹과 같은 정도의 크기’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게 ‘공부만 한다’라는 말처럼 ‘감자가 주먹만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먹이 그 자체로 무엇을 한다는 말일까요? 이런 난센스가 벌어진 건 정말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허수경(1964~) 시인은 1987년 《실천문학》에 「땡볕」외 4편으로 등단한 바 있습니다. 그 등단후 첫 번째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를 실천문학사에서 출간한 게 1988년입니다. 이 시집을, 실천문학사에서 2010년 5월에 개정판을 냈는데 그 제목이 우습게도『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입니다. 최근 잡지사나 출판사 편집자들이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맹신하고 있는 까닭에 이와 같은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컴퓨터에 설치한 ‘한글’ 프로그램이 맞춤법에 틀린 말을 찾아내어 친절하게 빨간 밑줄을 그어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는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슬픔만큼 나중에 힘이 되어줄 만한 게 어디 있으랴, 아마 이런 의미의 제목일 터입니다. 그러므로 슬픔이 제 스스로 무엇을 행동한다는 건 아닙니다. 이 경우의 ‘만한’은 ‘만하다’ 접미사 ①로서 쓰인 것입니다.

 

   요즘도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인터넷 홈페이지)을 보면 1년을 넷으로 나눈 분기마다 표준어에 관한 새로운 보완 작업 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바다 속’이라고 띄어쓰길 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다가 최근에는 슬그머니 ‘바닷속’을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는 게 그러한 예가 될 것입니다. 장마철에 내리는 비를 ‘장맛비’라고 이상하게 억지를 쓰는 경우, 발음도 순하게 하는 방향으로 ‘장마비’라고 써서 의미상의 혼란을 가져오지 않으므로 간장 맛의 기이한 비를 만들 일이 아닙니다. 또한 수컷인 소를 굳이 ‘수소’라고 해서 산소, 수소와 같은 화학의 원소로 착각하게 할 일이 아니라 예전처럼 ‘숫소’라고 쓰는 게 실제 언중들의 발음을 따라가는 표준말이 된다고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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