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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시와 못쓴 시 - 이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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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834회 작성일 15-08-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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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시와 못쓴 시 - 이창배

 

 

[1] 서론 : 시에서 감정은 무엇인가
시는 감정을 서술하는 글, 또는 감정을 쏟아내는 글이라는 견해가 우리의 보편적인 생각이다. 그것은 시의 주종을 이루는 서정시라는 한자 낱말에 잘 드러나 있다. 서정시의 '抒'자는 '물을 쏟다', '물을 덜다' 등의 뜻을 갖는 한자로, '서정시'란 단어가 어떤 사전에는 '감동적 정서를 주관적으로 나타낸 시'라고 정의되어 있다.

용어 문제와는 상관없이 시가 감정의 표현이라는 생각은 동서양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서구에서 '시가 감정의 표현이다', 또는 '감정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18세기 말 낭만주의 문학의 시작 이후부터 제기되었다. 그 이전에 시는 운문으로 표현된 일종의 수사학이라고 생각되었다. 여기에 반기를 든 것이 워즈워드이다. 그는 시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수사여서는 안되고 '힘찬 감정의 자연스러운 발로'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에서 수사보다는 감정의 표현에 무게가 두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전환기를 거쳐 시는 점차 감정 표현의 힘찬 발로로 나아갔고, 낭만주의 문학의 전성기에 접어들면서 감정 과다의 병폐 또한 심해졌다. 이때에는 시의 본질은 감정이라고 생각하여 감정 (혹은 열정)이 결여된 글은 시가 아니라 산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감정에 치우친 낭만주의적 병폐에 반대하는 혁명적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지만 시가 감정의 표현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까 18세기까지 시와 산문의 구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감정과 이성도 분열되지 않고 통합된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시가 감정에서 출발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때에 쓰는 '감정'이라는 말과 '정서'라는 말은 적어도 시론에서는 동의어로 써도 상관없다. 영어에서 'emotion'과 'feeling'이란 단어는 구분 없이 비평 용어로 쓰인다.) 감정은 인간의 희노애락의 심리적 반응을 총칭하는 말로서 시는 시인의 감정에서 출발하여 독자의 감정에서 끝나는 시의 본질이다. 사랑, 미움, 슬픔, 원망 등 복잡 미묘한 시인의 감정이 시를 통하여 어떻게 전달되며, 시인의 감정과 시에 나타난 감정, 그리고 독자가 받아들이는 감정은 모두가 동일한 것인가 등의 문제는 자주 논란이 되는 현대 비평의 중요 쟁점이다.

수사에 주력하던 시로부터 감정이 중요시되는 시로 발전함에 따라 시인들은 말과 싸우는 것 못지 않게 자기와의 싸움에서 시의 성패를 기대하게 되었다. 자기와의 싸움이란 경험과 사물을 보는 데 있어서 자신의 감정과의 싸움을 의미한다. 감정이란 말에 해당하는 희랍어 파토스 pathos는 본래 고통, 병과 동의어로 쓰인 말이다. 감정은 그냥 방치하면 마음을 병들게 하거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인간을 제멋대로 끌고 다니며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사탄과 같은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잘 다스리는 자가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고, 시에 있어서도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다.

시인에게 요구되는 원숙하고 세련된 감수성은 풍부한 감성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냉정한 知的 인 자세를 필요로 한다. 현대시는 매우 '지적'이다, 또는 지적 특성을 갖는다라고 말했을 때, 이 '지적'이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다. 그것은 추상화하고 개념화하는 지식 작용이 아니라 감정과 대치되는 이지적(지성적) 정신기능이다. 지성 시인은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사물을 분석하고 판단하면서 동시에 부분과 전체의 관계, 역사적, 우주적 의미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힘을 갖는다.

시인의 감정이 이성적 훈련을 받지 않으면 그의 정신은 구름낀 거울처럼 흐려서 판단력과 직관력을 상실하여 오히려 사물을 주관적으로 개념화하게 된다. 센티멘탈한 시나 개념시, 혹은 사상시 등은 모두 감정에 이끌려서 쓴 시들이다.

시는 감정의 산물이라고 하면서 한편 시인에게 차가운 지성의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된 말인가. T. S. 엘리엇은 감성과 이성의 통합을 주장하면서, 지성 시인들은 '사상을 장미 향기처럼 맡는다'라고 말했고, 예이츠는 '새벽처럼 차고 / 정열적인 한 편의 시를 쓰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말들은 결코 쉬운 말이 아니어서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엘리엇은 시는 구체적인 것이고 산문은 추상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말을 얼른 들으면 어리둥절하게 된다. 감정을 다루는 시는 구체적인 것이지만 지식의 산물인 산문은 추상적이란 생각은 시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이고 지식 이전의 '사실'이지만 산문은 사실에 '관한' 지식이라는 뜻이다. 한 알의 사과는 사실(현실)이고 구체적 존재이지만 '사과는 맛있다'라는 진술은 추상적 지식이다. 애인과의 이별은 구체적 사실이지만, '애인과의 이별은 슬프다'라는 진술은 추상적 지식이다. '사실'은 지성의 그물로 잡을 수도 없고 지식으로 바꾸어 놓을 수도 없는 설명 불가능의 '세계'일 따름이다. 그것은 비순수, 비추상의 '본체'일 따름이다. 시인은 그 '실재'의 세계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러면 시인은 그 설명 불가능의 세계를 어떻게 시로 표현하는가. 엘리엇의 시론에 의하면 시인은 감정의 同價物을 제시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메타퍼는 그 동가물을 가르킨다. 메타퍼 안에서 이성과 감성은 통합된다. 그러니까 결국 시는 메타퍼의 문제에 귀착되고, 엘리엇의 영향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시론에선 메타퍼가 주요한 비평 기준이 된다.
예이츠가 말하는 뜨거우면서 찬 시에 대한 주장도 결국 시에서의 감정과 이성의 관계에 대한 말이다. 그는 감정은 뜨거운 것이고 이성은 찬 것으로 생각하여 그 양자가 통합된 시를 쓰고자 했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스타일이 생기고 남과의 싸움에서 웅변이 생긴다'라고 말한 일도 있다. 시는 시인이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스타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열매를 맺는다. 그 만들어내는 과정은 뜨거운 감정에 대한 차디찬 지성의 싸움이다. 시인은 검증하고, 분석하고 반성하는 지적 작업을 통하여 감정을 메타퍼로 바꾸어 놓는 창작 과정을 겪는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시적 전략이 따른다.



이창배 교수 약력
동국대에서 근 40여년간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정년 후 단국대학교 대학원 특별대우 교수로 임명. 현재 동국대 명예 교수로 있음. 한국영어영문학회 회장과 한국 T. S. 엘리엇학회 초대 회장직을 역임.
주요 저서로는 [20세기 영미시의 이해], [20세기 영미시의 형성], [예이츠시의 이해], [T. S. 엘리엇 연구], [T. S.엘리엇 전집](역서), [현대 영미시 해석], 등의 많은 역서와 논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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