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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방법 5 - 고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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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229회 작성일 15-09-0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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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방법

고재종


시란 다른 질서 안에서 존재하는 사물을 자신의 질서로 바라보는 것이다. 시는 타자를 자신의 질서 안에 재편할 뿐만 아니라, 타자의 질서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 뿌리내리고 있는 본질적 의미를 역설적으로 깨닫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타자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혹은 자신의 질서 안으로 타자를 끌어들이는 시적 관계 양상을 유추라고 명명할 수 있다.
유추는 두 대상을 나란히 마주 세움으로써 시작된다. 물론 그 한편에는 항상 인간의 삶이 있다.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여우는 여우가 아니라 사람이다.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나폴레옹이라는 시커먼 돼지 역시 탐욕스런 인간의 상징적 대체물이다. 이 두 상징이 얼마나 엄밀히 조응하는가에 따라 유추의 효과는 그 빛을 발한다.
일반적으로 유추를 통해 획득되는 시적 인식은 계몽적이거나 풍자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유추의 대상을 통해 삶이 무엇인지를 배우라고 말하고 싶거나, 삶이 얼마나 비루한 것인지 잔뜩 조롱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유추가 삶 전체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열려 있지만은 않다. 시가 문제 삼는 삶은 특정한 삶이지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추상으로서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가 어떠한 삶을 풍자하거나 외경스러워하는지를 무엇보다 명료하게 인식해야 한다.

(14) 느티나무 여자 - 안도현

평생 동안 쌔빠지게 땅에 머리를 처박고 사느라
자기 자신을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가을날, 잎을 떨어뜨리는 곳까지가
삶의 면적인 줄 아는
저 느티나무

두 팔과 두 다리로 허공을 헤집다가
자기 자신을 다 써버렸다
그래도 햇빛이며 바람이며 새들이 놀다 갈 시간은
아직 충분히 남아 있다고, 괜찮다고,
애써 성성한 가지와 잎사귀를 흔들어 보이는

허리가 가슴둘레보다 굵으며
관광버스 타고 내장산 한 번 다녀오지 않은
저 다소곳한 늙은 여자

저 늙은 여자도
딱 한 번 뒤집혀 보고 싶을 때가 있었나 보다
땅에 박힌 머리채를 송두리째 들어올린 뒤에,
최대한 길게 다리를 쭉 뻗고 누운 다음,
아랫도리를 내주고 싶을 때가 있었나 보다

그걸 간밤의 태풍 탓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은
인생을 절반도 모르는 자의
서툴고 한심한 표현일 뿐

(15) 오징어 3 - 최승호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부둥켜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 릇이 있다

시 (14)는 태풍이 지나간 뒤 쓰러진 느티나무의 모습에서 모든 유혹을 물리친 채 온갖 고생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온 농촌여성의 내면에 깃든 광포한 욕망을 읽어내는 시인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가을 날, 잎을 떨어뜨리는 곳까지가/ 삶의 면적인 줄 아는/ 저 느티나무” 같은 구절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또 스러진 느티나무를 여자에 비유하며 “최대한 길게 다리를 쭉 뻗고 누운 다음,/ 아랫도리를 내주고 싶을 때가 있었나 보다”처럼 표현한 구절은 얼마나 짓궂은 유머를 담고 있는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걸 간밤의 태풍 탓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은/ 인생을 절반도 모르는 자의/ 서툴고 한심한 표현일 뿐”이라고 한 대목에서 이 시인의 경우바른 성실함이 물씬 묻어난다. 비유가 극명하게 드러난 시이지만 사실 비유조차도 유추적 상상력을 통한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방법인 것이다.
시 (15)는 3행으로 이루어진 시다. 이 짧은 시의 대상은 ‘오징어 부부’이다.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남다르다. ‘부둥켜안고 목을 조르는 버릇’은 결코 사랑의 자연스런 방식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표현은 오징어의 여러 개의 긴 발의 형상에서 취한 상상력인데, 그러나 이러한 부부는 그 오징어 부부만이 아니라는 현실 때문에 표현의 성공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류의 사랑은 많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은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목을 조르고 있지는 않았던가. 교묘하게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속하고 억압하고, 풍부한 인간적 감성을 마모시키지나 않았던가. 결국 그 오징어 부부는 우리들 사랑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욕망으로 뒤덮인 인간이며 그 사랑의 방식은 우리들이 항용 지니고 있던 버릇이었던 것이다.
안도현과 최승호의 시는 모두 인간적인 세계가 아닌 자연의 세계 혹은 우화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한데 이런 유추는 현실과의 접촉면이 현저히 차단된 채 자연 세계의 환멸과 동경만을 가능케 할뿐이다. 어떻게 한 편의 우화를 통해 삶의 현실성을 획득할 수 있겠는가. 고작해야 즉자적인 찬탄과 모멸이라는 양극단의 감정적 대응만이 가능할 뿐이다.

(16) 개밥풀 - 이동순

아닌 밤중에 일어나/ 실눈을 뜨고 논귀에 킁킁거리며/ 맴도는 개밥풀/ 떠도는 발끝을 물밑에 닿으려 하나/ 미풍에도 저희끼리 밀고 밀리며/ 논귀에서 맴도는 개밥풀/ 방게 물 장군들이 지나가도/ 결코 스크럼을 푸는 일없이/ 오히려 그들의 등을 타고 앉아/ 휘파 람 불며 불며 저어가노나/ 볏짚 사이로 빠지는 열기/ 음력 사월 무논의 개밥풀의 함성/ 논의 수확을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함부로 버리며/ 우리의 자유를 소중히 간직하 더니/ 어느날 큰비는 우리를 뿔뿔이 흩어놓았다/ 개밥풀은 이리저리 전복되어/ 도처에서 그의 잎파랑이를 햇살에 널리우고/ 더러는 장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어디서나 휘몰 리고 부딪치며 부서지는/ 개밥풀 개밥풀 장마 끝에 개밥풀/ 자욱한 볏짚에 가려 하늘은 보이지 않고/ 논바닥을 파헤쳐도 우리에겐 그림자가 없다/ 추풍이 우는 달밤이면/ 우리 는 숨죽이고 있다/ 옷깃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귀뚜라미 방울새의 비비는 바람/ 그 속 에서 우리는 숨죽이고 있다/ 씨앗이 굵어도 개밥풀은 개밥풀/ 너희들 봄의 번성을 위하 여/ 우리는 겨울 논바닥에 말라붙는다

이 시 또한 다르지 않다. 이 시의 화자는 분리되어 있다. 전반부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개밥풀이란 수생식물의 생태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후반부에 들면 관찰자의 관찰에 응답이라도 하듯, 개밥풀 자신의 목소리로 한 떼의 여리고 작은 이파리들의 헌신을 노래한다. 여름에서 가을로, 다시 겨울로 이어지는 계절의 변화 안에서 그들이 어떻게 몸을 부리며, 마침내 어떻게, 그리고 왜 논바닥에 말라붙는지를 노래한다. 물론 이 개밥풀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유추의 원형질은 민중이다. 김수영의 풀보다 더욱 미천하고 더욱 낮은 대상에까지 천착하여 형상화함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이름 없는 무지렁이 민중들과 그들 민중의 삶 구석구석에 연결된 자그마한 살아 잇는 모든 것이 얼마나 견고하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단지 헌신과 희생의 속성만이 연결될 뿐만 아니라 자잘한 생태적 순환들까지도 완벽하게 일체가 됨으로써 자연의 순환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의 긴밀한 유대와 삶의 동일성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운다’는 말이 있다. 이 간명한 명제야말로 시적 상상력을 튼실하게 받치고 있는 또 다른 한 축인 것이다. 느티나무, 오징어, 개밥풀 등 이 모든 세상을 구성하는 존재들로부터 이 세상을 구성하는 다만 또 다른 하나의 존재에 불과한 인간들이 삶의 철학과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위의 명제를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삶을 배운다’라고 수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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