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제 6회 시마을 문학상 수상작 발표 > 시마을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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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전용)

 

☆ 시마을 문학상은 미등단작가의 창작작품을 대상으로 엄정한 심사과정을 거쳐 매년말 선정, 발표됩니다


2010년 제 6회 시마을 문학상 수상작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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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423회 작성일 15-07-0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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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시마을문학상 대상 수상자로「희망정밀」을 쓰신 김준태(활연) 님이 선정되었습니다. 이외에도 금상에는 담우 님의「커피를 내리며」, 은상에는 가문비 님의 「풍경전사」, 동상에는 백경 님의「플로레타리아의 창」이 각각 선정되었습니다.

또한 청소년 부문 시마을문학상 대상 수상자로「주름」을 쓰신 노을진 님이 선정되었습니다. 이외에도 금상에는 조관희님의「단소」, 은상에는 정진혁 님의 「태양의 눈」, 동상에는 조성래 님의「고무인간」, 실마리 님의「고요가 돋다」가 각각 선정되었습니다.

이번 시마을 문학상 수상작은 지난 1년간(‘09.10~010.9월) 시마을 창작시, 청소년란에 올라온 작품 중에서 선정된 월단위 ’이달의 우수작(최우수작 및 우수작)‘을 대상으로 하여, 선정하였으며, 기 수상자및 본인이 삭제한 작품은 선정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문학상 대상 수상자에게는 소정의 상금과 수상기념패가 전달되며, 시마을 명예의 전당에 수록됩니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4일(토) 시마을 송년문학행사에서 개최될 예정입니다.

문학상을 수상하신 여러 님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더욱 정진하여 우리나라 문단의 대들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문학을 사랑하는 시마을 문우 여러분의 가정에 사랑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소망합니다.


2010년(제6회) 시마을 문학상 수상작


【 대 상 】


[내용보기] 희망정밀 / 김준태 (활연)

【 금 상 】


[내용보기] 커피를 내리며 / 담우

【 은 상 】


[내용보기] 풍경 전사 / 가문비

【 동 상 】


[내용보기] 플로레타리아의 창 / 백경



2010년시마을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


【 대 상 】


[내용보기] 주름 / 노을진

【 금 상 】


[내용보기] 단소 / 조관희

【 은 상 】


[내용보기] 태양의 눈 / 정진혁

【 동 상 】


[내용보기] 고무인간 / 조성래
[내용보기] 고요가 돋다 / 실마리



[시마을 문학상 심사평 ]



창작시 부문 심사평

정윤천 (시인)

시 마을로부터 선자에게로 넘어온 시는 약 40여 편이었다. 그 중엔 한 사람의 작품이 중복된 경우도 있었으나, 선자는 되도록 필자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에만 기대어 ‘절경’을 쫒아보기로 했다. 먼저 몸피가 그만 그만한 글, 결론이 너무 불분명하거나 뻔한 것에 관한 담론부터 선외로 밀기로 했다.
일차 관문을 거친 작품은 <풍경전사/ 가문비> <프로레타리아의 창/ 백경> <바람의 말/ 차윤환> <수직상승과 계단의 상관관계/ 개밥> <빌딩에서의 날들.2/ 원맨밴드> <커피를 내리며/ 淡友> <시간의 내부/ 내륙의 땅> <노루발 장도리/ 닷별 > <희망정밀/ 활연>의 9편이었다.
여기에 들지 못한 작품 중에는 분명 선자의 취향에 밀렸거나 그보다는 미욱한 심미안에서 비롯된 서투름이 있었음을 자인하기로 한다. 합장.
이후에 4작품을 골랐다. <희망정밀> <커피를 내리며> <풍경전사> <플로레타리아의 창> 표기의 순서대로 대상부터 동상으로 결정하였다. 사실 4작품의 순서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부언이기는 하지만, <시간의 내부>를 밀치는 일이 못내 마음에 아팠다. “...생은 끝나는 것이다”는 식의 종결 행 부분 ‘티끌’만 아니었다면, 이 시는 위에 있는 한 작품을 밀어냈을지도 모른다. 첫 자리를 차지한 <희망정밀>의 필자에게는 과도할 정도로 느껴지는 수사력의 풍성함과 그리고 대별이 되는 자리에서 차분한 어조로 전개되는 <풍경전사>에게서는 “단소매” “넌즛한다” “민모습” “학동전” 같은, 오랜 ‘연구생’의 체취가 느껴지는 자신만의 시어들을 함께 볼 수 있었음이 글을 고르는 기쁨일 수 있었다.
등사기를 밀어 찍어내는 ‘필경사의 시험지’같은 시들을 우리는 늘 함께 경계해야만 할 일이다. 그렇다고 불나방처럼 허망한 말의 풍경과 꾸밈의 외피에만 휘둘려서도 곤란한 일이라 생각한다. 논외의 작품들에게도 미안함과 더불어 머나먼 장도에서의 행운을 발원한다.

[대상]

희망정밀 / 활연

쇳밥이 고봉으로 솟아 허기를 깁던
밀링머신 절벽을 깎아내리는 소리가 삐거덕하다
멈춘다
사내의 등허리를 감아 도르르 말리는 기름얼룩이
번지르르하다
무거운 골목이 침윤하는 하오를
헐거운 빗물의 끈으로 동여매고 있다
골목 뒤란 핀 주저흔
꽃등심 만개한 꽃이 비리다
여인의 눈가에 번지는 묽은 추억 너머로
헛배 부른 저녁이 우두둑 뽑혀나간다
자물통 굳게 닫은 희망정밀
허공의 결박을 푼 빈 몸이 공장을 돌린다
악문 입으로 골목을 밀고 가는 여인의 손아귀에
전송을 멈춘 문자가 깜박거린다
사내의 생이 덜컹덜컹 읽힌다 옆구리를 베어낸 붉은 저녁
경첩에 매달린 환영이 불면을 닦아낸다
컴컴한 절벽이 켜켜이 쌓이는 무릎 아래
동그랗게 깎던 희망이 수북하다


[금상]

커피를 내리며/ 淡友


나는 황인의 주술사
원두 속에 웅크린 원주민을 불러낸다
그 몸에 간직한 검은 바람 강렬한 햇살
한 스픈 두 모금 석 잔만 주문을 건다
커다란 눈동자는 수심 깊어지고
출렁이는 두려움에 제단이 덜걱거린다
'라하 케결정 을간순 이 여피 은검'
그 몸을 빠져 나온 사막이 깔리고
모래 언덕을 넘어 오는 영혼이 거름 종이를 건널 때
절정으로 치닫는 주문, 한 방울만 이 씨씨만 세 컵만
사막의 샘이 제단을 적신다

정갈한 찻잔에 받치는 가장 경건한 시간
원주민의 별 같은 이빨이 딸깍딸깍 찻잔을 깨운다
문명이 익을 때부터 조금씩 반짝이던 소리
식인의 기억이 노을처럼 은밀히
정글을 뚫고 바다를 건너 빌딩 숲을 지나
전라의 영혼을 나른다
'검은 피여 이 순간을 정결케 하라'
오래 그을린 구수한 갈색 피부가
입술에 닿는 순간 혀를 찌르는 전율
나는 도시 속의 눈알 큰 원주민이 된다
독 화살을 메고 쏘아서 적중할
상아색 하트를 쫓는다.


[은상]

풍경 전사轉寫 / 가문비


횡단보도 파란불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신호 걸린 택시기사 낙엽 몇 장을 넘기며 일당을 센다
타닥타닥 넘어가는 하루 그 앞을 구부정한 할머니가
유모차를 밀며 천천히 지나간다
가까스로 건넌 홍해의 길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아침마다 클로즈업되는 꿈들로
생활정보지함은 언제나 비어있다 밑 빠진 독으로
구름 낀 하늘로 휩쓸리다 만 전단지 한 장
도시풍을 좇아 단소매를 펄럭인다
썬팅한 창밖으로 역방향 차들이 노출된 필름처럼 겹친다
포플러에 가린 주꾸미 닭발 산낙지 밋밋한 철자들 사이로
파지 실은 손수레가 다가왔다 멀어진다
소나기는 흔적 없이 지워졌다
바닥난 자장면 그릇에 얼굴을 묻은 채 밖을 넌즛한다
서로 마주친 건너편이 민모습을 들이댄다
곱빼기 먹은 입술을 닦으며
잔돈으로 오백 원짜리 학동전을 건네받은 석양
평면의 계절이 도장밥을 묻히고 있다
요철 없는 부리의 문양이 자꾸 온몸을 찍는다


[동상]

플로레타리아의 창 / 백경

네가 없는 동안에 나는 걷는다 플로레타리아
나는 빙글빙글 목적없이 항해했다
유리컵에 소주는 비어있고
꿈에서 본 잃어버린 너의 첫 구절은 미련없다 돌아오지 않는다
벌써 6월의 나뭇잎이 몇 개나 마르다니
안절부절 왔다갔다 하다가
계단을 내려가 소주를 산다 플로레타리아
플로레타리아 나는 너를 잊기 위해
낮에 술을 마셨다 세상에나
누가 내 꿈 속에다 너를 써 놓았나 플로레타리아
너의 방문에 내 머리는 헝크러진 그물처럼 복잡하다
배 밑에 난 굴껍질을 떼어내듯 거칠어진
얼굴에 수염 속 여드름을 짜내고
나는 대낮의 백향기를 마시며 너를 다시 생각한다
잃어버린 첫 구절에 상관없이 저 건너
이층의 창유리처럼, 배 밑에 난 어탐의 유리눈처럼 매끄럽게
너를 다시 항해하려고 한다
플로레타리아
플로레타리아
창가엔 새로 사다놓은 저 풀잎 화분
내 좋아하던 저 풀잎의 이름이 뭐였더라 로즈마리향이라고
꽂혀있던 저 향기식물의 이름이 뭐였더라
플로레타리아
검은 나뭇잎 새떼가 유리창 속 바람에 한참이나 흔들린다
서로 마주친 검은 눈, 서로 못 본 체 지나는 검은 새들
내 거울에 비정규직을 누르며 군림하는 정규직
플로레타리아 위에 플로레타리아
플로레타리아
건너편 학원선생님의 목소리보다도 더 크게 외치는
창밖에 네시 이십분의 우렁찬 새 소리
밤이 오면 아이가 간지럼을 타는 듯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이의 웃음이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나의 플로레타리아
너의 플로레타리아 역사는 모든 것을 기록한다
녹빛 나뭇잎에 스민 샛노란 빛과 사각사각 부딪히는 소리가
플로레타리아 오후다




[정윤천 시인 약력]

1960년 전남 화순 출생
199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1년 계간 《실천문학》등단
<시의 지평> 동인, 계간 《시와 사람》편집위원
시집으로 『생각만 들어도 따숩던 마을의 이름』, 『흰 길이 떠올랐다』,
『탱자꽃에 비기어 대답하리』『구석』등




청소년 부문 심사평


고성만(시인)


이번에 처음 ‘시마을 청소년 문학상’ 심사를 맡으면서 내내 기분이 좋았습니다. 시를 사랑하는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편인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시를 정말 잘 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최종심에 올라온 시마을 시들은 그 수준이 높아서 우열을 가리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사유를 풀어내는 솜씨에 깜짝 놀라야 했고(「주름」), 비유의 참신성에 잠시 숨이 멎을 뻔 했고(「단소」), 장래성에 대한 기대로 뿌듯하기도 했고(「태양의 눈」),「고무인간」,「고요가 돋다」등은 오랫동안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새로움과 재치를 보여주었습니다. 수상한 분들은 이번에 머무르지 말고 장차 한국 시단을 이끌어갈 준비를 열심히 해주시고, 수상하지 못한 분들은 다른 지면에서 훌륭한 시인으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덧붙여, 좋은 시 쓰기를 위한 공부로 옥타비오 파스가 지은 산문집『활과 리라』라는 책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옥타비오 파스는 노벨상에 빛나는 시인이고, 이 책은 인간과 시에 깊이 천착한 한 거장의 사색의 절정으로 인간의 존재를 깊이 느낄 수 있으며, 시의 영감을 얻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청소년 시인 여러분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대상]

주름 / 노을진(19세)

빗살이 사선으로 내려앉는다
발이 달린 건 뿌리가 깊어지고
치적한 걸음걸이는 좀 더뎌보였다
소매가 젖은 사람들 버스 한켠으로 쌓여
제각기 번진 생각을 창가에 비춘다
관성에 좌우로 퍼진 빗방울
듬성듬성한 게 꼭 모시 같다
뭉치다 못해 주룩 흐른 줄기는
어느 짓눌린 삶의 나이테 같았다
나는 리어카 끄는 노인을 생각한다
눅눅히 퍼진 폐지가 자글자글한 날
주름진 종이의 무게가 곱절인 만큼
꺼끌꺼끌한 노인의 피부 구겨진다
오르막을 기어드는 낡은 엔진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쿨럭인다
오늘을 위해 쌓아올리는 통증 위에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생의 길
굴러 떨어진 폐품 하나가
흘러가는 뒷모습을 건조하게 바라본다
-------------------------------------
시는 비유에서 출발합니다. 비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결합입니다. ‘~같이, ~처럼, ~듯이’의 매개어로 결합되거나, 매개어가 없이 ‘A는 B다’의 형태로 결합됩니다. 이런 비유의 근거는 유추, 즉 두 사물 사이의 유사성 또는 연속성에 기인합니다. 이 시 ‘주름’은 ‘생명체’를 함축하는 말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주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시인은 버스 안에서 비를 바라보고 ‘관성에 좌우로 퍼진 빗방울/ 듬성듬성한 게 꼭 모시 같다/ 뭉치다 못해 주룩 흐른 줄기는/ 어느 짓눌린 삶의 나이테 같았다’와 같이 ‘주름’을 떠올립니다. 주름과 삶은 ‘나이테’라는 공통점을 매개로 하여 성립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름’은 ‘노인’을 연상하게 합니다. 노인은 ‘주름진 종이’를 싣고 다닙니다. 폐지를 줍는 노인입니다. 노인은 힘겹게 살아갑니다. 이 모든 과정을 단 하나의 단어, ‘주름’으로 요약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눈은 매우 예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은 마지막 세 줄입니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생의 길
굴러 떨어진 폐품 하나가
흘러가는 뒷모습을 건조하게 바라본다

사람이 ‘폐품’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폐품’이 사람을 바라봅니다. 이 분은 사물에 다가가 그것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미덕을 지녔습니다. 이렇게 대상과 적당한 거리를 떨어트려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주 강렬하진 않으나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의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솜씨는 그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합니다. 적당히 좋은 시를 쓰기보다는 앞으로 더 개성적인 시를 쓰시기 기대하겠습니다.


[금상]

단소 / 조관희(15세)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갈색 새가 앉았다.
손가락으로
입구멍
똥구멍
배꼽과
콧구멍 2개를 만져주니
새는 높은 저음으로
내 귀를 만져준다.

어느 날
새벽 연기가 피어오를 때
아직 잠을 자는 그 새를 데리고
숲에 앉아 숲과 합창한 적이 있다.

그 후로는 그 새도
숲이 그리워졌는지
내 손에 앉아있으면서도
숲을 소리 내었다.

숲 소리에 젖어든 새는
가끔씩 내 손을 타고 들어와
코를 만지며 숲을 숨쉬게 했고,
눈을 만지며 숲을 만들었다.

나뭇가지에 앉은 그 새는
아직도 숲을 부르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
처음 이 시를 읽으면서 잠시 호흡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햐아~’하는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그럴듯하게 비유했을까 ‘단소’는 ‘갈색의 새’가 되었고, 음악 연주는 ‘입구멍/ 똥구멍/ 배꼽과/ 콧구멍’을 만지는 일입니다. 그랬더니 새가 ‘높은 자음으로/ 내 귀를 만져’줍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어느 날 새벽 나는 ‘아직 잠을 자는 그 새를 데리고/ 숲에 앉아 숲과 합창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시보다도 새롭고 아름다운, 이 시의 지은이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미적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최우수작’을 놓친 이유는 ‘삶의 진정성’이라는 측면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를 쓰는 이유는 살아가는 의미를 찾기 위한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삶의 무게를 운율에 담는 것이 시라고 할 때, 위의 시 「주름」보다 깊이 면에서 조금 쳐진다고나할까 그러나 이 시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아직 어린 분인 듯하니 이런 발랄한 상상력으로 좀 더 과감하게 밀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은상]

태양의 눈 / 가는대로 (정진혁, 20세)

눈을 뜨고 있을 때 눈을 만져주는 풍경이라든가 눈을 감고 있을 때 비켜주는 풍경은 태양의 눈동자와 마주치는 일이다 다만, 비켜준 풍경이 돌아오지 않을 때를 태양의 눈이 당신의 눈에서 비켜서는 일이라고 하자

빌딩의 눈 하나 지상을 곁눈질하다 비켜선다
태양의 시선하나 지상을 곁눈질하다 객사하고 만다

누군가의 발뒤꿈치 뒤에서 눈을 감는 일 매일 아침부터 자신을 닮은 관을 이끌고 잠들기 전까지 치르는 장례를 수없이 마주치고 비켜선 눈동자들의 작은 계절이라 부르고 이 계절에 잠시 왔다가 떠난 시선은 철새라고 하자 여름에 머문 새는 돌아오지는 않지만 떠나버린 애인이고 겨울에 머무는 새는 떠난 애인의 입술이 남긴 오래된 온기이다

내 방의 내장을 다 파먹은 새의 날개짓에 태양의 주홍색 속눈썹이 나뒹군다 제멋대로, 이별과 이별해버리려는 태양의 머리끄덩이를 쉬이 놔주지 않는다 얼굴이 푸르딩딩해질 때까지 흰자위가 까맣게 뒤집어질 때까지

당신의 방에 기생한 태양의 눈을 만져준 적이 있나 만개의 풍경을 끌어안고 비켜줬고 구천구백구십구 개의 풍경이 돌아왔다 미처 돌아오지 못한 풍경 하나 검지 손가락에 작은 파문으로 멈추었고 깊게 잠든 눈꺼풀 위로 눈곱만 수북이 쌓여있다
-----------------------------------------------------
선자는 이 시를 놓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표현 면에서는 훌륭한데 최우수작, 우수작으로 밀기에는 뭔가가 아쉬운, 그것이 무엇일까 지금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를 쓴 분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시를 써서 승부를 걸어보라고. 우선 이 시는, 어떤 기성 시인의 시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 시인의 영향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이미지와 착상 면에서, 비슷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 시에 ‘눈을 뜨고 있을 때 눈을 만져주는 풍경’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 어떤 시인의 시에는 ‘누군가의 검은 눈을 만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잠이 들 수 있었던 순간’(김경주, 「고래의 저녁이 걸려 있는 화실」)이란 구절이 나옵니다. 또, ‘잠들기 전까지 치르는 장례를 수없이 마주치고 비켜선 눈동자들의 작은 계절’, ‘당신의 방에 기생한 태양의 눈을 만져준 적이 있나’ 이런 구절들도 엇비슷합니다. 비슷하다 비슷하지 않다는 점을 떠나서도 이 시는, 알쏭달쏭한 의미로 독자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이별과 이별해버리려는 태양의 머리끄덩이를 쉬이 놔주지 않는다’와 같은 구절이 그러한데, 자기 자신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발효와 숙성의 과정이 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인은 앞으로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품게 합니다.


[동상]

고무인간 / 조성래(19세)

1
허공을 잔뜩 머금은 그는
마찰이 싫다
풍선이 되고 싶다
허파에 바람이 들었단 소릴
못이 박히도록 듣고
피식
펑크가 나기도 하지만

2
매어있지 않은 애드벌룬은 아무것도 광고할 수 없다 아득한 허공으로 날아가 사람들이 굳이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운전 중에 애드벌룬을 보려고 하다간 끼이이이익 새카만 상처만 남을 것이다, 라고 그는 생각했었다

광고기획 서류를 뒤지다 발견한 이력서 위 새카만 바퀴자국이 어지러웠다 멈출 수 없는 브레이크와 마찰의 연속이 빚어낸 고속도로의 이력이었다

그는 아들을 호주로 보내며 부딪히고 부딪혀라, 라며 발을 동동 굴렸다

혼자 방을 쓸다 문득 한 움큼 한 움큼씩 흩어져 있는 타이어의 흔적들을 보았다 과열된 머리에서 뽑혀나가고 무너져 내린 고속도로의 이력이었다 새카만
상처였다

겨우 흔적을 광고하기 위해 그토록 미친 듯이 구르고
굴렸던 것일까

Hi

국제전화를 걸어온 아들은 열심히 혀를 굴렸다
세상의 모든 타이어들은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었다

1
러시아워에 걷는 공원길
풍선 파는 사내는
아이들이 몰려오자
모든 풍선을 허공에 놓아주었다
껑충껑충 뛰어오르는
아이들의 탄성

타이어는
날 때부터 타이어가 아니다
---------------------------------------
이 시는 풍선(애드벌룬)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시의 소재를 잘 골랐습니다. 이런 소재로 이만한 글을 써낸다는 사실에 먼저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일상에서 탈출하고픈 시인은 ‘애드벌룬은 아무것도 광고할 수 없다 아득한 허공으로 날아가’는 풍선에게서 자유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풍선은 ‘고무’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고무인간’이라는 상상이 가능한 것이지요. 마지막 연 ‘풍선 파는 사내는/ 아이들이 몰려오자/ 모든 풍선을 허공에 놓아주었다’와 같은 표현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다만, 이 글을 쓴 분에게 시와 산문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 ‘운율과 이미지와 비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많은 시를 필사해보라 권유하고 싶습니다.


[동상]

고요가 돋다 / 실마리(김태형, 19세)


밤, 할매가 마루 우에 앉았다
이 빠진 자국마다 돋은 고요를 밭은 기침으로 닦는다
손등 위 얹힌 달빛을 거두어 내며
어렴풋이 비치는 콩밭에 대고 반갑다, 속삭이듯 눈을 껌뻑인다

순하게 여물은 할매 눈이 언뜻
언젠가 묻었던 누렁이와 닮았다
도시 멕히질 않을 것 같여, 한사코
본인 손으로 십년지기 축생을 묻던

콩밭이 희게 세었다
할매도 콩밭 따라 세어가고 있다
늙은 밭 우에로 달빛 쌓이는 까닭을 알까, 할매는

오만 데에서 고요가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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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시에 접근하는 자세가 아주 진지합니다. 분위기 자체가 시적입니다. 그리고 시의 내용이 매우 쉽습니다. 그러면서도 신선합니다. ‘손등 위 얹힌 달빛을 거두어 내며/ 어렴풋이 비치는 콩밭에 대고 반갑다, 속삭이듯 눈을 껌뻑인다’와 같은 구절은 섬세합니다. ‘콩밭이 희게 세었다’와 같은 구절은 천성적으로 시인인 듯합니다. 이렇게 곱고 아름다운 시상이 장점이자 단점이 되었습니다. 매운맛이 조금 부족하다고나할까 거칠지만 감칠맛 나는 시를 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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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심 진출작품]
웃는다 / 김재호(꿈꾸는 사탕, 18세)

1.
겨울 아이스크림들 창문을 열고 들어온 햇살같은 손에 부스럭 부스럭 간지럼을 탄다 깔깔깔, 메론맛 바나나맛 딸기맛 초코맛 웃음들 나도 모르게 혀가 둥글게 웃는다

2.
입 안 같은 방에 들어가서 아이스크림은 내 입에서 녹는데 나는 왜 녹지 않을까 생각하며 초코 아이스크림에 케이크란 이름을 지어준다 그래, 오늘은 내 생일

3.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는지 수도꼭지에서 물이 쪼르르하고 웃는다 라면 한 봉지도 오랜만에 웃는다 파르르 웃는 가스불이 열일곱개다 ^^ 친구들의 문자메세지처럼 오늘 난 생일, 생일 축하해 이불이 날 끌어안고 온종일 지켜온 티비리모컨을 펄럭 선물처럼 드러낸다 나는 입을 틀어막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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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의 시가 수상권에 들지 못한 것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이분은 말의 재미를 알고 있는 듯합니다. 아이스크림들이 간지럼을 타고 ‘나도 모르게 혀가 둥글게 웃는다’와 같은 표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아름다운 노랫말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주제) 불분명하고, 짜임새 면에서 덜 다듬어진 느낌을 줍니다. 여기에서 머무르지 말고 앞으로 더욱 정진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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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베이비 / 꿈을찾는사람(16세)


드디어 집 밖 우주공간으로 나갈 수 있어요 도로를 타고 흐르는 불빛을 모아 별자릴 만드는 놀이는 더는 안 할 거에요 직접 보고 올 거니까요 유모차에 올라타서 발사신호를 기다려요

철컥

현관문이 열리고 로켓은 발사돼요 엄마 조종사를 바라봐요 엄마는 우리가 지하철별으로 가고 있데요 도로를 타고 흐르는 불빛들이 가까이서 보여 눈이 너무 부셔요

지하철별에 착륙을 해요 별은 아빠 양복을 입은 외계인들로 꽉 차 있어요 외계인들의 팔이 자꾸 로켓을 치며 지나가요 외계인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옮겨와요 그들의 눈은 나를 겨냥한 레이저 총이에요 내가 우니까 그들의 무기는 더욱 무섭게 나를 겨냥해요 엄마와 나는 곧바로 무기를 피해 비상탈출을 해요

아마 그때부터일 거에요
우주공간은 무섭다는 걸 깨달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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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습니다. ‘로켓’과 인간의 삶과 연결시켜, 우주선이 발사되는 순간에서 아기가 세상에 나가는 순간을 유추했군요. 이런 재치는 좋은데 모 방송사 프로그램 멘트를 흉내 낸듯한 어조를 인해 시가 지나치게 가벼워졌습니다. 그래서 ‘불빛을 모아 별자릴 만드는 놀이’ 같이 새로운 표현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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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담동 6동 2호구 이점순할머니 / 포우


노크는
무심코 뿌린 손짓의 둔탁한 뼈마디에서부터


뿌리를 둔다.

더 이상 쪼갤 수 없을만큼 가느다란 기침이 있다.
그 기침을 마저 우는 젖은 새도 있다.
폐근육의 섬유 구멍. 증식시키는 예리한 조각들.
점차로 침해당한 각개 구멍들 사이로
조그만 새들이 팔짝팔짝 튀어 나와요.

피씨익



마을에서 달과 가장 가까운 곳.
들숨과 날숨과 그들의 출입구가 저산소병으로 고생하는 곳.
젖은 날개로 비행하는 새들의 궤도를 싸잡아 수돗물 한입으로
하강시키는 곳.

그곳


노크는 이윽고 다 자랐다
모든 식물은 척박한 곳에서 더 잘자란다 그 씨앗은 부재된 공간의 틈새를 쭉쭉 가르고 들어가 미동없는 한 노인의 귀속에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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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무척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많은 기대를 했습니다만 내용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끊어지는 듯한 문장, 형상화 덜 된 이미지 등이 점수를 얻기에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시를 끌고 가는 패기가 엿보입니다. 삶의 그늘진 곳에서 아름다운 시상을 낚아 올려 문학의 힘으로 우리의 삶에 빛을 던져주시기 바랍니다.


[고성만 시인 약력]
전북 부안 출생
1998년《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올해 처음 본 나비』『슬픔을 사육하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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