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골, 흠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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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현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0건 조회 1,504회 작성일 17-08-07 08:09본문
깊은 골, 흠한골 / 최 현덕
잠든 그 길을 깨우면
길 위에 육남매가 서 있다
흰 수건 두른 어머니가 맨 앞에 서서
아이들과 읍내 오일장에 가는 날
늘어져서 허술하고 힘든 30리 길이 서고
대장 어머니 앞에 범도 넙죽 엎드렸다
깎아지른 협곡은 쥐 죽은 듯 가라앉아
절벽에 핀 꽃은 만월을 품은 듯 고고했다
하얗게 내리쬐는 여름 햇살 그 길은 적적하여
늘 시커먼 입을 열고 유유낙낙 호랭이굴 옆에
굴피나무를 오르내리는 담비가 길을 홀렸다
무장공비가 드나든 흠한골은 더욱 괴괴한 시름에 젖었다
눈에 익숙한 풍경 속, 그 길 위
머릿속은 늘 맑은 날 보다 장대 같은 소낙비 였다
산사태로 소외양간도 쓸고 간 그 길,
육남매가 근근부지 연명 할 때 마디마디 옹이진
어머니의 손끝을 호호 불어주던 그 길,
긴 장마가 하늘을 뭉개도 입에 풀칠 해 준 그 길은,
시퍼렇게 멍든 손으로 화전민이 됐을 때, 멍든 손에
따라지목숨을 무쇠목숨으로 감겨 준 길이었다
세상에 유일무이唯一無二 한 길이었지
한줄기 빛이 깊은 골을 감싸 안을 적,
어머니는 목젖이 찢어질 듯 그르렁 자연을 삼켰고
산야초가 손짓하는 모랑가지엔 메아리가 걸려 있었다
허기진 뭉클함이 어머니품속을 그려놓았다.
그 길 위, 허기는 육남매 전용 공간 이었지.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7-08-12 10:16:53 창작시에서 복사 됨]
댓글목록
36쩜5do시님의 댓글
36쩜5do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시에서 말한 '허기진 뭉클함'바로 그것때문에
시인님이 시를 쓰시는 것 같습니다.^^
시 쓰는 이들 모두가 아마도 그런 '허기진뭉클함'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
최현덕님의 댓글
최현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옛시절 그 길은 모두가 엄청 힘들었지요.
유년시절에 흠한골에서 풀 뜯어 먹으며 연명 해 온게 지금 생각해 보면 기적입니다.
다녀 가심 감사드립니다. 시인님!
별들이야기님의 댓글
별들이야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쩌면 저리도 울집과 똑 같나요
울집은 오남매 였고
제가 대장 이었지요
저는 아들이라고 강냉이를 삶아도
제일 맛난것은 내 차지였고요
새옷에새신발만 신었는데
동생들은 돌아가면서 옷도 입었지요
옷도 대물림 이었어요
그때 생각하면 마음이 저리 옵니다
감상 잘 했습니다
최시인님!!
최현덕님의 댓글
최현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50,60세대는 거의 비슷한 처지가 아나었나 생각합니다.
입에 풀 칠하기 힘든 세상에서 뭘 바랬겠어요. 그저 허연 이밥 한그릇 먹어 보는게 소원이었지요.
량재석 시인님도 강냉이 세대시군요. 고생 하셨기에 글이 참으로 맑습니다.
고맙습니다. 량재석 시인님!
두무지님의 댓글
두무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련한 추억으로 끌려가다보니
저도 눈물이 왈칵 쏟아 집니다.
육 남매를 이끌고 가시는 생전의 어머님 앞에
호랑이도 놀라 벌떡 일어서서 도망치는 근엄한 모습!
이제는 미움인지, 그리움인지 알 수 없는 피안에 뒷길,
헤아려 본들 무엇하리까 이미 떠나가신 영혼들,
더운 날씨에 함께 촉촉히 젖다 갑니다
평안과 건필을 빕니다.
최현덕님의 댓글
최현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흠한골 같은 오지에서 유년시절을 보낸지라
뼈는 통뼈 입니다.ㅎ ㅎ ㅎ
맛짱 뜨면 절대 안집니다. 깡다구가 쎄그던요.ㅎ ㅎ ㅎ
웃자는 소리입니다.
더위에 건강하세요. 두무지 시인님!
고맙습니다.
추영탑님의 댓글
추영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머니 나서면 줄줄이 따라 나서던 길,
목숨줄 설움줄 이어주던 길,
어린 나이 육 남매를 열매처럼 달고 고생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제는 돌아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그길,
오히려 자랑스러웠을 그길에 박수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최현덕 시인님! *^^
최현덕님의 댓글
최현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선친의 묘가 그쪽에 있어
가끔 들려보면 이 험한곳에서 어떻게 살았나 싶게
우거진 숲속이었습니다
국민학교 30십리 길 등하교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신기합니다 밤톨만한 놈이 책보 짐어지고 험한 산길을 다녔으니,
다녀가심 고맙습니다
추 시인님!
라라리베님의 댓글
라라리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묘사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어렵고 힘든 시절인데도 자연속에 그려지는
서정의 풍경이 그지없이 촉촉합니다
진한 그리움에 젖는 시간일지라도
시인님은 행복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최현덕 시인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글 감사합니다
평안한 시간 되십시요^^~
최현덕님의 댓글
최현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갑장님의 빛나는 졸업장 같은 세련된 글과는 비교가 안되지요.
투박한 삶 속에서 긴 터널을 헤맸었지요.
그 시간, 너무 배를 곯아서 지금도 국수는 2그릇 먹습니다. 뱃고래가 커져설랑. ㅎ ㅎ
더위에 건강하세요. 강신명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