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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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9건 조회 2,195회 작성일 15-11-18 12:17본문
겨울의 무늬
1
겨울이 오고 있다
문고리 걸었는데도 창틈으로 문틈으로
갈라진 벽 틈으로
식칼을 든 아귀가 뼛속까지
가만히 떨고 있는 심장까지
찌른다 더운 현기증 같은 것들을 찔끔거렸던
한 번도 아이를 낳은 적 없는 질 속으로 부랑한 물질이 흘러들어오듯이
허물 같은 어둠이 오그라든 방에 쌓인다
누런 자루 속으로 기어들어가 위턱과 아래턱을 달그락달그락 맞춘다
입술 퍼렇게 바르고
가슴뼈 휘어진 골을 더듬다가 발끝에 맺히는 얼음 방울들
육탈한 짐승의 뼈처럼 식은 방구들
아홉 겹 날개를 껴입고 붉은 목장갑 뭉툭한 손가락 가리고 더 깊은 겨울로 떠나자, 차디찬 골마루는 절망처럼 따뜻한데… 터진 풍선처럼 살갗은 널브러진다
죽은 나뭇가지에서 카랑카랑 깨지는 새소리
2
벽과 담 사이
빙판길 기척 없는 곁으로 곁이 흘러간다
여름이 살갗을 태워 침출하는 잠 가라앉히듯이
녹슨 도관으로 죽은 물이 천천히 흘러나오듯이
함박눈 사박사박 밟아오는
치명적인 고요가 뭉크러진 두어 평
식칼을 든 유령이 조금씩 떼어다가 길바닥에 뿌렸을지도 모를 고립된 냄새가 스스로 머리칼을 자르고 발톱을 깎고 검은 강 한 줄기 흘린다
천정에 박쥐처럼 매달려 있는 겨울들
몸속 깊이 눈이 내려 푹푹 빠진다
맥없이 허물어진 콧날, 다문 입 넋 없이 풀어 빙그레 웃기도 하다가
어둠을 뭉텅뭉텅 뱉을 때 쿨럭거리기도 했던
목젖이 가라앉는 날카로운 침묵 속으로
3
겨울이 오고 있다
시곗바늘 위를 맴도는 시간이 우두커니 보다가
아무런 방향도 없이 주시하다가 그만 놓아버린
어느 봄 여름 가을도 다녀간 적 없는
오래된 동굴 속에서 온몸을 친친 감고
미라가 된 한 구(軀)의
겨울이 발굴되었다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종유석
성동혁
해방된 식물들은 천장 너머에서 산림을 이룬다
어미 새가 하늘에 있다
움직이는 열매
손을 뻗는 작은 알
차가운 수저가 이곳을 휘돌고 가면 영혼은
하나의 맛처럼
액체처럼
더 가늘어졌다
이불과 커튼도 함께
덤불처럼
바닥에 가라앉은 나를 휘젓는 것들은 분명 있었다
머리만 내밀고 네 발을 힘껏 내딛는 뭍짐승처럼
열심히 움직여도 나아가지 않는다
나는 하늘을
어미 새를
보며
잠긴다
떼쓸 곳이 없어 의젓해진다
등에 쇠가 달라붙으면
팔꿈치가 쏟아진다
공간을 의심하기 전
휜 나무의 팔꿈치들이 나를 천장으로 데려간다
`
生土/강태승님의 댓글
生土/강태승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자기 관절을 부러트리며 쓴 듯한,
무릇 시는 이렇게 격렬해야 합니다-ㅎ-
시마을 송년회 때 뵈야죠?
안희선님의 댓글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엘리옷이 그랬던가요..
의미의 불명료는 그 시가 보통의 언어로
표현 할 수 있는 이하가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에 기인 할 것!
남들에 의해 한 번도 발굴된 적 없던, 겨울의 의미
그간의 숱한 겨울들이 지니지 못했던 의미..
곱씹어 봅니다
동피랑님도 저보구 쓰잘데기 없는 얘기 하지말구
빨랑 잠이나 자라고 하시니
늦저면 먹구 눈 좀 붙일까 합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강! 하시고 건필하세요
고현로님의 댓글
고현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고요로 깊어지소서
-김사인-
시마을 운영위원회에서 보내주신 시집을 받았습니다.
'치명적인 고요가 뭉크러진 두어 평' 창고에서
어린 당나귀 같은 멍멍이들 옆에서
조심조심 책장을 넘기는 낮입니다.
무조건 건필하소서^^
향일화님의 댓글
향일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활연 시인님이 빚어내신 사유 깊은 좋은 시에
한 참을 푹푹 빠졌다 갑니다.
근무 시간이 마친 후
다시 곱씹으며 한 수 배우려 합니다.^^
이종원님의 댓글
이종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지어놓으신 겨울의 무늬에 살을 베일 것만 같습니다
가슴까지 찔러오는 그 초식은 3D 프린터로 출력해놓은 가상이 아닌 실상처럼 느껴져
아릿아릿해집니다.
좋은 시 앞에 문득 발이 멈춰지는 것은, 아마도 향기 때문 인것 같습니다.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가을밤
서대경
어느 가을밤 나는 술집 화장실에서 원숭이를 토했다 차디찬 두 개의 손이 내 안에서 내 입을 벌렸고 그것은 곧 타일 바닥에 무거운 소리를 내며 떨어져내렸다 그것은 형광등 불빛을 받아 검게 번들거렸고 세면대 아래 배수관 기둥을 붙잡더니 거울이 부착된 벽면 위로 재빠르게 기어올라갔다 나는 술 깬 눈으로 온몸이 짧은 잿빛 털로 뒤덮이고 피처럼 붉은 눈을 가진 그 작은 짐승의 겁먹은 표정을 바라보았다 나는 외투 속에 원숭이를 품었다 그것은 꼬리를 감고 외투 속 주머니 안에 얼굴을 파묻은 채 가늘게 몸을 떨었다
내 잔에 술을 채우던 사내가 놀란 눈으로 어디서 난 원숭이냐고 물었다「구역질이 나서 토했더니 이 녀석이 나왔네」나는 잘게 자른 오징어 조각을 원숭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옆자리에 앉은 사내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가여운 짐승이군. 자네도 알다시피 그놈은 자네의 억압된 무의식의 외화된 형체일세」「그렇겠지」우리는 오징어 조각을 물어뜯고 있는 원숭이의 작은 주둥이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말없이 지켜보았다「저 이빨 좀 보게. 그리고 저 피처럼 붉은 눈을 보게. 겁먹은 듯 보이지만 저놈의 본성은 교활하고 잔인하지」내게 술을 따르던 사내가 경멸 어린 표정으로 속삭였다「물론 자네를 공격하려는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닐세」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비웠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원숭이를 품에 안은 채 낙엽 깔린 가로수 길을 걸어갔다 밤하늘은 맑고 차가웠다 그것은 자꾸만 내 품속으로 파고들었고 고통스럽게 헐떡거리고 있었다 나는 속삭였다「슬프고 고통스럽니?」「응」품속에서 원숭이의 힘없이 갈라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는 너를 부인하고 너를 저주했지. 너를 때리고 너를 목 졸랐다. 하지만 넌 너 자신이 나의 억업된 무의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응」「너는 죽고 싶니?」「죽고 싶어」「하지만 넌 나의 환상일 뿐이야」「죽고 싶어」나는 천천히 품속에서 온몸이 오그라든 채 떨고 있는 그것을 꺼냈다 그것의 짧은 잿빛 털 위로 가을의 가늘고 메마른 달빛이 눈부시게 반짝였다「너는 누구니?」「죽고 싶어」작고 투명한 핏빛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며 속삭이고 있었다
&
날흙형 요즘 자연산 활시, 뜸하십니다. 자주 봬요.
요즘 격렬하면 엉치뼈 부러집니다. 벌써 연말인가요, 피부관리가 잘 되면 혹시.
멀리 이국에서 '늦저면'을 드신다니 좀 그렇습니다. 늘 상다리 부러질 듯 만찬 있으시기를.
깊은 잠은 만병통치약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늘 깊고 푸른 밤 되십시오.
김사인 '어린 당나귀 곁에서'도 좋더군요. 비 오는 날
강아지 포근한 털에 둘러싸여 시를 읽는 모습, 그만이겠습니다. 나는 한 권도 안 주던데 부럽네요.
늘 소녀같이 사시는 향일화님, 잘 계시지요. 업무시간에 딴짓하는 재미란 이만저만
좋은 것이 아니라서, 자주 한눈파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시고요.
요즘 형광등이 문제라지요. 그러나 늘 환한 모습도 있다는 거.
고매한 인격이 느껴진다,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형님 보면 그런 생각이 말뚝처럼 박힙니다. 향기로운 그대.
김동현님의 댓글
김동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오 ............ 오오!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육 ............육육!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