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만 400여 시간의 인터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동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0건 조회 1,176회 작성일 16-04-07 21:17본문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6-04-11 18:36:15 창작시에서 복사 됨]35만 400여 시간의 인터뷰
1.
묵묵히 걸어가다 발걸음을 잠시 멈춘다
선인장에 다가서더니 거침없이 야금야금 먹어댄다
낙타가 커다란 눈을 껌뻑이더니
'살기 위해 얼마든지 선인장 가시마저 삼킬 수 있다
아무리 무거운 혹을 짊어지더라도
척추는 똑바로 펴고 살아야 하는 거다'
2.
폭염이 지속되는 흔한 날의 연속이었다
탈수현상이 계속되면서 다리의 힘이 풀려갔다
아지랑이에 시야가 막히는데도 낙타는 한 곳만 보고 있었다
환각에 취해야 제대로 사는 거라던 비난들을 뿌리치자
오아시스들이 돌아눕는 것을 보았다
낙타는 여전히 묵묵했다
대체 얼마나 자신의 발굽을 몇 번이고, 지독하게,
이 뜨거운 모래 속에 담금질해야 평원을 찾아갈 용기가 생기는 걸까
남은 일은 기도가 아닌
깊숙이 발목을 잡는 모래 속에서
한 발 한 발
저항하며 걷는 일
3.
모래폭풍을 만난 적이 있었다 지형을 이용해 간신히 대피할 수 있었다
거친 모래들이 피부를 쓸고 나갈 때 낙타의 발목에 묶여진 북극성이 희
미하게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두 눈조차 부릅뜨고 온갖 기염을
토해내듯 눈물 없이 울음을 찢어지도록 토해냈던 모습이 희미하지만 아
직 남아있다
4.
사막에서는 어디로 가든 길이다 다만 목적지는 모두 틀리게 나온다
폭풍이 지나간 후의 자리는 걸어온 내 발자국도 찾을 수 없다
황사현상을 보고나니 아지랑이가 오히려 반가울 지경에 이르렀다
물러날 수도, 직진할 수도 없는 이 황사의 공기가 탁하기만 하다
한참을 넋을 잃고 앉아있던 낙타가 다시 일어났다
5.
낙타는 말했다
마두금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한 번이라도 초록 평원 위를 달려 보고 싶다면
발자국을 새긴 수만큼
침묵을 집어삼켜야 하는 거라고
너는 모른다
사막이란 낙원을 꿈꾸며 횡단하다 황혼녘에 타들어간
낙타들의 재가 모인 곳임을
*35만 400여 시간 - 낙타의 평균수명
댓글목록
최정신님의 댓글
최정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낙타의 일생이 바스라져 모래 언덕이 되었군요
차진 진술로 풀어준 장시에서 고뇌의 땀을 읽습니다.
모바일로 읽었으나 낼 컴 켜고 다시 정독해야겠단 욕심...
동하님의 댓글의 댓글
동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가 써놓고 저도 몇 번이고 다시 읽네요.
다시 본다하시니 어디 틀린데 없나-----하고 ^^
좋은 꿈 꾸세요.
문정완님의 댓글
문정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동하님 반갑습니다 무지 올만에 인사드립니다. 시마을 제일 신비인 ㅋ
잘 지내시리라 믿습니다.
퇴고작인가 봅니다 쇠와 시는 두드릴수록 단단해지고 날이 서지요
자주 오시고 복면가왕 언제 한번 벗어 주실련지 ㅎ
항상 건강하십시오 동하님^^
동하님의 댓글의 댓글
동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러게요 수상작에 이름이 올라갈 때마다
'왜?'라는 생각에 왜 뽑혔는지 아무리 읽어봐도 납득이 안가서
송년행사 한 번을 안갔는데
어쩌다 보니 이름이 '베'씨에 이름이 '일남'이었다가
이번에는 '신'씨에 이름이 '비인'인가요^^
저도 납득할만한 좋은 시로..
상을 받는다면 아마 송년회에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
14년에 비해서 퇴고 잘 했나 그것도 분간 못하는데^^;;
항상 건강하세요.
-시마을 창작방
아마 제일 막내 올림
시앙보르님의 댓글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낙타의 여운이 꽤 길어질 듯 합니다.
무소의 뿔처럼 가라, 가 낙타처럼 가라, 로 바뀝니다.
편한 밤 되십시오.
동하님의 댓글의 댓글
동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엇! 처음 뵙는 분
반갑습니다 시앙보르님
제가 원래 네셔널지오그래픽, 이런 걸 좋아해요.
고대에 낙타는 원래 서식지가 초원인데 천적들을 피해
알래스카로 이동했다가 사막으로 온 거라고 하더군요.
반대로 해보면 어떤 모습일까 하고 가정하고
써봤어요. 여운이 길다 하시니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수크령님의 댓글
수크령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그냥 너무 좋네요.
동하님의 댓글의 댓글
동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감사합니다~~~
현상학님의 댓글
현상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발자국을 새긴 수만큼 침묵을 삼켜야 하는 것/ 캬~ 절창입니다.
동하님의 댓글의 댓글
동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절창이라는 소리 처음 들어봐요
이런 감격을ㅠ
자주 뵈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