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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감나무에 연두가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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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17회 작성일 18-04-1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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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의 감나무에 연두가 돌아왔다.

나중엔 어린 감의 모자가 되고 양산이 되고, 푸른 빵이 될 연두가

마술사의 부채처럼 팔랑대며 제 안의 꿈속에서 하얀 감꽃을

불러내고 있다. 나는 감나무 가지에서 일용할 에피타이저나

디저트가 주렁주렁 열려, 손님 없는 식당 음식처럼 바닥에

철벅철벅 떨어져, 무심코 밟으면 똥처럼 감나무의 일년치 노고가 

재수 없어지던 늦은 가을에서 까치밥 한 덩이 없이 가지가 텅비고,

그 빈가지에 집나간 며느리처럼 다시 연두가 돌아 올 때까지 몇 군데의

식당을 전전하며 끝내 따지 못한 감처럼 많은 인연을 만났고

분명히 바닥에 떨어졌고, 비질도 하지 않았는데도 흔적도 없어진

깨진 홍시들처럼 느낄수도 없는 많은 이별들을 했다. 해가 갈수록

감나무는 꿋꿋해지고, 그늘이 깊어지고, 우듬지가 높아져 가듯,

나 또한 올해는 누구에게라도 좀 더 당도 높은 인연을 맺는 나무가

되어야 겠다는 결심도 연두처럼 새록새록 해진다.

지나가던 누가 사다리도 없이 팔을 뻗고, 뚝 따서 먹어도 요기가 되고

못 먹는 것이라고 흙바닥에 뱉아도 세상에 감나무의 의지를 퍼뜨리는

씨앗이 될 수 있었으면 싶다. 밥 집 언니는 오늘 허리가 아파서 한의원에

가고, 나는 음악을 들으며 청소를 했다. 스마트 폰 브루투스에 연결해서

들을 수 있는 주먹만한 오디오를 그녀에게 선물 했다. 그녀는 검은 장갑과

그녀의 전성기에 들었던 음악들을 잔뜩 내게 주문하고, 나는 도끼빗을

바지 뒷 주머니에 꽂고 다니는 디제이처럼 그녀의 신청곡들을 켜 주었다.

어쩐면 선물이란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침에 시장에서 사온 방풍과 원추리와, 아는 언니가 따다준

두릅을 데치고 물에 헹구는 그녀의 마음에 음악이 스며드는 것을 느
끼는 일로 얼마나 황홀한 기분이 되었는지 모른다. 혼자서 아이 셋을 키우며

한 때 누구의 눈에도 예쁜 꽃이였던 그녀의 자존심과 함께 한 잎 두 잎 시들어

왔을 희망과 기쁨을 향해 물 조리개로 불을 뿌려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무슨 깊은 생각에라도 잠겨 있을 때면 느닷 없이 옆에 가서

"언니 까꿍! 왜 기분이 않좋아?"하며 놀래 킨다. 나는 언니가 나 때문에

웃는 것이 참 좋다. 언니는 짬짬히 스마트 폰으로 주식 동향을 지켜보며

나에게 오르면 올랐다고 보라 하고, 내리면 내렸다고 보라 하는데

주식의 문외한이라 그냥 거울처럼 언니의 표정을 따라할 뿐인것이 미안하다.

내일은 쉬니까 모래는 가루 비타민을 한 통 사가서 언니랑, 오후반 언니랑

나눠 먹어야 겠다. 내가 산 레모나 시가 그녀들의 혀끝에서 마음으로 녹아들어

나른하고 졸리운 봄날을 상큼하게 깨웠으면 좋겠다. 돈을 쥐고 쓰지 않는 것은

티켓만 들고 영화를 보지 않는 것과 같다. 기쁨과 나눔과 사랑이라는 영화를 보려고

돈이라는 티켓을 사는 것이다. 호프집 언니는 좀 심술 맞은데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수건 끝이 풀려서 잘 풀리지 않게 꽁꽁 다시 말고 있는데 그렇게 하니까

더 이상하다며 면박을 주었다. 텔레비젼이나 보라는 것이다. 어차피 손님 없는

시간에 텔레비젼이나 보는 것보다 물수건 한 장이라도 정성스럽게 매만지는 것에

대해 꼭 그렇게 말해야 되는 것일까? 그녀의 열혈팬인듯한 전기 공사하는 아저씨가

맥주를 한 잔 하라고 해서 마셨는데 그가 팁을 이만원 주었다. 어차피 택시비 하라고

주는 돈 같아 옆에 있던 언니에게도 만원을 나누었다. 사실은 만원이 아쉬운게 내 형편이지만

난 그런 불로소득이 생기면 거의 반사적으로 옆의 사람에게로 돈이 갈라진다. 나 혼자

이만원치 앗싸하는 것보다 옆에 사람도 만원어치 기분 좋아지는것이 마음 편하다. 그런데

그 일로 그 아저씨는 심사가 틀어져 다시 그 돈을 돌려 달라고 했다. 별 쪼잔한 새끼도

다 보겠네 생각하며 지폐 두장을 다시 돌려 주었는데, 그 돈을 다시 나에게로 이만원을

주는 것이였다. 이번에는 내 쪽에서 기분이 확 상했다. "이 씨발 자석이, 사람을 뭘로 보고

내가 접대부도 아닌데 누가 달라는 것도 아니고, 돈 이만원을 가지고 지랄이가" 하고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지만 참았다. 나는 말없이 다시 받아서 다시 옆 사람에게

만원을 갈라주었다. 그가 가고 나서 사장은 나를 나무랬다. 나때문에 기분 나빠서 갔다는 것이다.

"언니! 내가 여기 손님 접대 하려고 앉았습니까?  누가 돈 달랬어요? 돈을 주었으면 그 돈을 내가

어떻게 쓰든지 상관하면 안되지 않습니까? 제가 왜 술 한 잔 먹어라고 그 쪽에서 부탁해서

술 한 잔 마시는데 손님 비위를 맞춰야 되죠?  언니 저를 접대부로 고용 하신겁니까?"

언니는 멘붕 상태가 온 것 같았다. 장사 십년을 하면서 " 접대부"이야기는 처음 들어 본다고 했다.

나는 그 상황을 내버려 두고 자전거를 타고 퇴근했다. 봄밤에는 어둠도 달콤하고 도발적인 것 같았다.

뒷날 혹시나 잘리지 않을까 싶어 술이 과해서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다행히도 나는 잘리지 않았다.

뒷날은 손님이 미어졌고, 나는 3800원짜리 콩나물 국밥 집에서 시루의 콩나물보다 더 많은 손님들을

받던 실력으로 단체 손님과 개인 손님들을 아무 잡음 없이 처리 했다. 사장이 주방에서 누군가랑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일 하나는 끝내주게 하네"

그래 일 하나는 끝내주게 하는 선물을 그녀에게 주어야 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누가 내 감을, 내 홍시를 따 먹거나 말거나, 나는 미치도록 열렬히 붉고 달콤한 나를 빚고 익혀야겠다.

어쩐지 나는 누가 나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고 웃는 것이 기분좋고 웃음이 절로 나온다.

홍시처럼 이가 잘 들어가고, 말려서 먹어도 얼려서 먹어도 그냥 먹어도 달달한 내가 되어야겠다.

그래서 봄이면 집나갔던 며느리처럼 연두가 돌아오듯,

이전에 내가 떫고 딱딱해서 나를 떠났던 마음들이 돌아와서 순한 감꽃 같은 용서의 마음들이

꽃 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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