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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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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49회 작성일 18-04-18 09:43

본문

오전반의 아침은 환해서 좋다. 사장이 문을 열어두는 것을 싫어해서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묵은 맥주 냄새에

찌든 어스럼 속에서 시작되는 오후는 서글프다. 오전반 가게는 큰 길가에 있는데 북동쪽 두 창으로 햇살이 넘치도록

비친다. 가게 입구의 김치 냉장고 위에는 누군가 캐어다 준 민들레와 고사리가 큰 바구니에 담겨 마르고 있다. 나는

큰 길가 전봇대에 철사를 달아 종일 햇볕에 잘 말린 밀걸레에 뜨거운 물을 붓고 바닥을 닦는다. 걸레나 행주가 금방

지나간 자리의 희미한 물기가 말라가는 모습이 참 좋다. 사람의 손이낸 길에는 참한 반짝임이 있어 좋다. 요즘엔 반찬이

참 좋다. 어제는 누군가의 농장에서 따 온 당귀가 상추와 함께 나갔다. 두릅과 원추리와 은계 나무 잎 데친 것이 초장과

함께 나갔다. 방풍과 잔파와 함께 된장에 무친 나물은, 입만 대장금인 내가 엄지 손가락을 척 들어준 음식 이였다. 나는

무엇을 무치던지, 나를 불러 맛을 보라는 언니가 참 좋다. 언니는 나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다. 정수기가 식당 입구에 있어

물을 받기가 성가셨는데, 주방 개수대로 정수기 물을 연결 시키자고 했더니 그렇게 해주었다. 여름 특별 메뉴를 뭘로

할까? 남아! 난 아무 뾰족한 의견도 없지만, 내가 무슨 기발할 생각이라도 해낼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주는 것 같아

무슨 일에나 의욕이 생긴다. 오후반 언니가 주문이 들어와서 앞 접시나 국자, 수저, 가스버너 따위를 미리 셋팅하는 것

까지 간섭하고, 무슨 일에나 상대방의 의견을 듣지 않고,  어떤 의견에도 발끈하며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옹졸한 태도와는

정말 다르다. 나는 스테인레스나 금속 모서리나 기둥이 더러운 것을 참지 못하는데, 어쩐지 오후반 언니는 필요 이상의

일을 하지 않게 만든다. 내가 열심이나 성의, 정성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해야 할 자발성 같은 것을 무참히 꺽어버린다.

이런 부류의 사장은 유능한 참모를 쓰지 않고 스스로 유능한 참모가 되어 돈을 주고도 생고생을 자처하는 사람이다.

오전반 언니가 물광 파운데이션을 하나 사주었다. 비비 크림을 바른 상태였지만 둘이서 금방 포장을 뜯은 화운데이션을

같은 거울에 비추면서 발랐다. 엄마 화장품으로 몰래 화장을 하는 자매들 같았다. 젊어서의 미모를 짐작케하는 언니의

까무잡잡한 얼굴과 나의 흰 얼굴이 비슷한 근육을 사용하면서 활짝 펴졌다. 칭찬을 많이 하는 사장이 있고, 지적만 하는

사장이 있다. 예쁘다고 하면 더 예쁘지고 싶고, 싫다 틀렸다 하면 마음이 경직 되어 이미 불쾌에 가까워진 감정에 주의가

분산 되어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음식 주문이 들어오면 그 음식을 먹는데 필요한 도구들이 셋팅 되는 것이 손님에게

무슨 불쾌감을 준다는 것인지 이해는 오지 않고, 불필요한 간섭이라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꾸역꾸역 속으로

밀어넣느라 손님에게도 부자연스럽고 퉁명 스러워졌다. 별 중요한 문제도 아닌데 손님이 불편해 한다는 말을 하며

자신이 까닭없이 거슬리는 일을 손님 핑계 대는 것이다. 물수건을 잘 풀리지 않게 바짝 감아두는 일도 손님 없는 시간에

텔레비젼 보고 앉았는 꼴이 어디 유흥 업소 대기실 같은 기분이 들어 뭐든 일을 하는 편이 낫지 않나 싶어 하는 것인데

더 이상하다는 한마디에 비닐 봉지를 까낸 물수건을 미친년 가발처럼 아무렇게나 쑤셔 넣게 되었다. 무엇에도 정성을

쏟기 싫어졌고,  야단을 맞게 될텐데 싶어 사장이 지시하는 일 외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전에 일하던 직원들 칭찬은 왜 그렇게 하는 것인지, 날더러 어쩌라는 이야기 인지, 정말 사람을

다룰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왜 상대방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일까? 왜 마음도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서 자꾸 시계를

쳐다보며 일하게 만드는 것일까? 사장이 불편하니까 그 집에 오는 손님도 귀찮고 싫다.  주문을 받으러 가면, 노래방

아가씨 쵸이스 하듯 훓어 보는 듯한 눈초리와 표정에 욱하고, 아주 오래 묵은듯한 구토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다.

어? 아가씨가 바뀌었네(이 엑스 지랄아! 이모라고 불러라! 아가씨는 무슨 얼어죽을 놈의) 오십이 넘어서 흰머리가

자글자글한 나를 굳이 아가씨라고 부르는 저의를 짐작하면 들고 있던 쟁반을 획 집어 던지고 싶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쳐먹으면 되지 술 한 잔 하러 오라고, 질기게 권한다. 술 못 마신다고 하면 그만해야 할텐데 계산 할 때까지 보챈다.

오전반 손님들에게는 절로 나오는 웃음과 배려의 말들이 오후반 손님에게는 나름대로 노력을 해보아도 쉽지가 않다.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일까? 사장은 자신이 서로를 알지 못해 그런 것이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나를 설득시키지만

사장은 웃는 얼굴의 독재자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얼마나 독선적인 사람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녀의 갑각은 무쇠로

만든 것보다 더 단단하다. 나 같이 다루기 쉬운 사람이 있을까?

 

빌어먹을!  더 말이 하기 싫었지만 그녀가 손님에게 주문 받은 안주를 셋팅하는 것을, 왜 음식이 나갈 때 해야하는지를

우기고, 내가 미리 셋팅을 해야 하는지를, 내 입장에서 설명하는 동안 바깥에 세워 두었던 자전거가 사라졌다. 자정의

도로가를 터덜터덜 걸어 오는데 담배를 피워문 고등 학생인듯한 아이들이 아무도 없는 길에 두 명 서 있었다. 자전거

자물쇠를 사야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사주지 않은 남편에게 중얼중얼 욕을 한바가지나 하며 걸었다. 고양이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못하는 것에 관해 늘 남편 핑계를 댄다. 휴대폰 케이스에 돈 만오천원이 있었는데도

자전거방을 날마다 지나면서도 그것을 사는 것이 귀찮았고, 돈이 아까웠던 것이다.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그것말고도

돈을 쓰야 할 일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래, 어차피 자전거가 너무 낡았어. 바구니는 큰 쥐가 다 파먹을 것 같고,

타이어는 바람이 새고, 잘 되었다. 차라리" 난 스트레스를 가장 적게 받는 방향으로 나 자신을 설득 시키는 재주가 있다.

내 몸속에 코르티솔 같은 맹독이 다량으로 분비 되지 못하게 생각이 몸에까지 이르지 못하도록 돌이키는 재주 말이다.

그 까짓거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  사장에게 영혼을 눈꼽만치도 주지 않는 일 말이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도 영혼을

투영 시킬 수 없는 그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신명이 들어야 할 수 있다. 신명이 들때는

정말 트럭이라도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재미가 없을 때는 머리카락 한 올도 무겁다. 오후반 사장은 내가 사람이 미처

발명하지 못한 로봇처럼 자신이 주입 시키는 요구들을 실행 해주기 바란다. 재미가 없다. 오전반 언니는 정말 게으르고

귀찮은건 내게 미루지만, 그녀가 내게 미룬 일들을 행복하게 해치우게 만든다. 마감 시간에 그릇 하나 빼주지 않고

주식 동향만 살피고 있어도 화가 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차린 영업장에서 남인 내가 실컷 존재 하도록 허용 해주기

때문이다. 나를 자신의 파트너로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그제 새벽엔 오디 아저씨가 소주 한 박스를 사다 주었는데

꼴짝 꼴짝 마신 술이 세병 이였다. 술이 떨어져서 마트에 사러 나가지 않아도 되니까 경계 없이 자꾸 마셨던 것이다.

그랬더니 아침에 꽐라가 되어 출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언니는 나랑 오분을 이야기 해보더니 내가 술에 취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라면이라도 끓여 먹여야 겠다고 걱정을 했다. 화를 내지 않았다. 역정을 내지 않았다. 내가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자 우습다고 웃었다. 내가 취중에도 너무 미안해서 "언니! 다시는 술 취해서 출근 하는 일 없도록 할께요! 자

약속!" 내가 새끼 손가락을 내밀자 자신도 새끼 손가락을 내밀고 엄지 손가락으로 도장을 찍었다. 사랑과 관용만큼

확실한 채찍은 없다. 언니는 네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의 눈초리로 나를 보지 않았다. "아이구, 이노무

가수나야, 니가 얼마나 쏙이 쓰리고 문드러졌으면, 아침에 술을 못깨도록 마싯것노" 그런 눈빛이였다. 그래,.

아침에 취해 와도 출근 해줘서 고맙다.  몸 상한다. 작작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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