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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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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65회 작성일 18-04-22 15:20

본문

돈 있으면 술이나 마시고,
월급 받으면 가불이 반이고,
갚을 것 갚으면 없고,

전에 다니던 직원에 대해 오후반 사장이 말했다.
나는 사실은 그녀가  정말 잘못 살고 있는 것일까? 생각했지만
"돈 없으면 쓰지를 말아야지" 하며 얼굴도 본 적 없는
그녀의 불성실한 생활태도를 손가락질 하는 손가락
하나를 더 보태었다. 내일이 도대체 어디에 있다고 사람은
내일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믿는 것일까? 내일은
언제나 오지 않은 날이고, 오늘은 바로 여기 와 있는 날인데
왜 오늘을 건너띄고 내일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내일을 위해 오늘 마셔야 할 술을 내일로 미루고,
오늘을 위해 쓰야 할 돈을 내일 쓰려고 비축해 두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내일이란 나의 내일이 아니라 자식들의 내일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럼 나는 도대체 뭐하러 태어난 것일까? 내일의 나를 위해 태어나서
오늘이 없는 나는 아직 내일이 되지 않은 이 세상에서 살고 있기나 한 사람일까?
자식들은  내가 그들의 내일까지 살아주어야 하는 수동의 존재들일까?
왜 우리는 오늘을 냉동실에 급냉 시키거나 말려서 맛도 없게 먹어야 하는 것일까?
다리가 곧고 통통할 때 미니 스커트를 입지 않고, 하체가 골아서
하지 정맥이 툭툭 불거질 때 입어야, 제대로 사는 것일까?
몸도 정신도 온전할 때 산이고 들이고 다니지 않고, 늙어서 심신이 불편할 때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지혜롭게 사는 것일까? 
오늘 월드컵이 4강 진출을 했는데 미뤄 두었다, 내일 사장에게 닦여서 피죽 쓰는 날
맥주를 마셔야하는 것일까? 지금 사랑하지만 나중에는 후회 할거니까, 지금 사랑하지
않지만 나중에는 편안할 남자에게 시집을 가고, 말랑말랑한 지금이 없어서
견고한 집을 가지기 위해 맨살에 닿으면 행복한 극세사 이불의 촉감과 출근 전에 내린 원두
커피의 향기와 동네 옷가게에서 새로 산 봄옷의 산뜻함을 버려야 사람다운 삶을 사는 것일까?
내일을 향해 오늘을 퀵 배달하던, 오늘과 결혼하지 못한 노총각은 퀵 배달 주문 전화를 받다
교통 사고가 나서 당도할 내일을 잃고, 뇌의 절반이 함몰 되어 식물이 되었다. 바쁘게 내일을
버느라, 발효유 병의 유산균 같은 오늘을 팔아먹다보니, 내일을 위한답시고 요구르트 한 병
사먹지 않고, 내 전동카가 있는 느티나무 밑에서 트로트 음악을 크게 켜 놓고 주문 전화를 기다리던
그에게 좀더 따뜻한 오늘이 되어주지 못한 것이 죄송한, 그날의 내일이 오늘이다.
내일을 준비하는 것은 인간만의 특징은 아니다. 사막의 여우도 굴속에 음식을 숨기고
나무 위의 청설모도 옹이 속에 토토리를 숨기고, 짐승들도 내일을 낳는다. 인간만의 특징은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맹신하는 일이다. 오후 사장은 말했다. 나중에는
그녀가 거리에서 박스나 줍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늙어서 박스나 줍게 되는게
뭐 어때서? 라고, 늙어서 기껏해야 정년 퇴직해서 뒷방을 뒷짐지고 서성거릴텐데. 거리에
버려진 세상의 껍데기라도 거두어 주는 일이 할일 없는 노후보다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아프면 남에게 폐 끼치니까 보험이나 하나 들어 놓고,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더라도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오늘 따뜻하게 쏟아지는 엄마 젖을
짜서 냉장고에 보관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밥을 싸먹는 풀잎 한 장을 시장에서 사도
새록새록 살아 있는 싱싱한 것을 고르는데 왜 새록새록 돋아나는 햇잎 같은 시간을
사는 것은 불성실하고 사람 답지 못한 일이라고 믿는 것일까? 

나는 아무 분별도 없이 다만 채찍에 길들여진 코끼리나 소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훌룡하고 타외모범이 되는 일로 여겨지게 만드는 것은 
오늘의 패스로, 내일의 비축으로 세상이라는 거대한 흙덩어리를 굴리는
힘 있는 자들이 개체의 힘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설치한 선이라는
장치인지도 모른다. 어느 시대 충성심이나 극단적인 효의 개념이 한 국가 조직을
지탱하기 위한 정신적인 장치였듯이 말이다. 오후 여섯시만 되면
부동 자세를 취하고 가슴에 손을 얹지 않으면 그 시대에는 간첩이였지만
지금은 그 시간에 그 자세를 취하는 사람이 간첩으로 보이듯, 맹목적인
노동과 근면 성실이 영원한 사람의 자세가 될지는 의문이다. 근면 성실
예측 범위 안의 노동력은 이제 기계가 대신하게 되는 세상이 목전에 와있다.
좀 더 자신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인간, 좀 더 자신의 자율성을 즐기고
자기만의 행복을 창조하지 못하는, 잘 놀지 못하는 인간이, 쓰레기처럼
필요의 사슬에서 버려질 날이 목전에 와 있다. 그것이 내일이라는 종교의
맹신자들이 그렇게 강림하기를 기도하던 내일이라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돈이 있으면 있는데로 놀고, 돈이 없으면 없는 데로 놀 수 있는 인간이
기계와 다른 고급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나는 본다.
언제나 생각하듯, 나는 누구를 위해서도 훌륭해지기 싫다.
훌륭이라는 껍질을 벗은 뱀보다 터무니 없이 커다란 껍질을 입기 싫다.
얼마나 거추장스럽겠는가? 

사실은 오후반 사장이 혀를 끌끌 차는,
되먹지 못한 그녀랑 술 한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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