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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주일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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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263회 작성일 18-04-23 10:03

본문

비가 내린다.

새 순을 튀운 나무와 풀꽃들과 몸에 숨구멍 가진 것들

모두 모두 목축이고 살라고, 누군가 물을 뿌리고 있다.

딱딱한 것을 싫어하시는 하느님의 물조리개들이 비고 있다.

아침에 마당에 나가 신발 벗는 댓돌에 한참을 앉아

이제는 한 채 두 채 사람의 집들이 하느님의 그림을

가려가는, 담벼락 너머 풍경이 하느님의 물조리개 밑에

순하게 엎드린 모습을 바라 보았다.

또 우리는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살라고, 누구라고 지칭할 수 없는 그가 저 높은 곳에서

물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 병원에서 수의사가 바르다 남은 연고를 좀 싼값에

사와서 난이의 눈에 발랐지만, 난이의 눈알은 점점 더

막에 싸여가고 있다. 이름을 불렀더니 곁에 다가오는 난이를

마구 쓰다듬었다. 난이는 길고양이인데다, 아파서 몸이

더러웠지만, 혹시나 내 손길이 난이의 혈액순환을 도울수

있을 것 같아 안마하듯 몸을 만져 주었다. 하늘에서 우리들

살라고 잊지 않고 물을 주시는 그분이 우리 난이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기와를 얹는 노가다 일을 하게 되었다고, 사나흘 자동차

산다고 낸 대출금을 갚으라고 돈을 부쳐주었는데, 비가

이삼일 오게 되어 큰 아이는 또 쉴 것이다. 기와를 얹는

일은 지붕에 올라가면 낙상사가 많다고 해서, 돈 벌지

않아도 되니까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노가다 오야지들이

초보자는 지붕에 올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일을 한다고 했다.

큰아이는 체중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흙을 이개어 얹은 기와지붕이

아이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폭삭 내려 앉는 상상을 자꾸

하게 된다. 비가와서 일을 나가지 못하는 이삼일은 그 걱정 하지

않게 되어 좋다. 사람이 살려고 태어난 것이지 돈을 벌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도 엄마라고 장래, 미래 같은 묵직한 불투명을 화두로

아이를 덜덜 볶긴 하지만, 나는 요즘 젊은이 사이에 유행처럼 번진다는

소확행이 우리 늙은이들도 배워야 생각이라 싶다. 내일은 아직 없고

오늘은 어떤 몰골과 누추를 하고 있더라도 확실히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이다. 미래를 바라보느라 내 곁에 있는 작은 사람들과 소소한

기쁨들을 향해 웃어보이지 못하는 것은 신기루를 수확 하느라

눈앞에 차려진 밥을 먹지 않는 것과 같은 일이다. 다행히도 아이는

돈 없이도 잘 놀 줄을 안다. 작고 예쁜 것들을 사진속에 담고

녀석이 입고 다녀도 될 것 같은 녀석의 거구에 꼭 끼는 

작은 차 모닝속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가득 담고, 산과 바다가 인접한 우리 도시의 구석구석을

먼 외국을 여행하듯 다니는 것이다. 시간만 나면 그차에 여자 친구가

아닌 나를 태워주어 고맙기도 하고 미안키도 한 것이다.

 

아침에  뉴스가 화면을 가득채운 모니터에는 많은 죽음들이

올라와 있다. 그냥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 있어주어

고마운 것이다. 그들 속에 나 또한 살아 있어 고마운 것이다.

누가 호사스럽게 몸을 편하게 사는 것이 사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는지 몰라도, 어떻게 살아도 사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도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달콤하고 황홀한 체험인 것이다. 난

텔레비젼이나 소설 속에 나오는 어떤 호사에도 이르러 보지 않았지만

나는 정말 죽기 싫다. 그러기에 이 생은 너무나 아름다운 공간이다.

관광 버스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돈 떨어지는 소리

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던, 땡전 한 푼 남지 않은 아침도

문밖만 나서면 봄이면 봄이라고, 여름이면 여름이라고, 꽃이 피고

하늘은 철철이 포프먼스를 벌이는 것이다. 먹고 버린 종이컵과

담배 꽁초 뒹구는 보도블록 틈새와 맨홀 두껑 틈새, 열린 하수구

두껑 사이까지 우리가 보험 회사에서 승진을 하거나, 졸업을 하거나

프로포즈를 받을 때 선물로 주는 꽃들을 피우며, 오고 가는

무거운 발길들을 한 발도 남김 없이 축하하고 환영하고 환송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우리는 죽음을 꿈꾸어야 하는 것인가?

이 동그란, 누가 전기 콘센트를 끼워 둔 것처럼 쉬지 않고 돌아가는

원구를 , 초록색의 거대한 구슬을 우리는 선물로 받은 것이다.

그기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놀며 웃다 가라고 도시락도 싸오지 말고

맨손으로 와서 맨손으로 가라고, 모든 먹거리를 다 갖추어 놓은 곳이다.

 

비가 내리는 것은 또 살아보라는 뜻이다.

 

식당 홀을 청소하며 군데군데 오아시스처럼 있는 화분에 물을 준다.

"요놈들! 예쁘게 살아라. 예쁘게 살려고 태어난 놈들아"

화분은 화초가 먹을 도시락이고 놀 놀이터이며, 잠잘 숙소다.

화초가 아름답게 태어난 자신의 생명을 향유하는 것말고

무엇인가를 할 필요가 있는가? 맛있게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먹고, 어쩌다 주는 물을 흠뻑 마시고, 윤기나고 건강하고

무심하면 되는 것 아닌가? 우리 또한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생기에 넘치기 위해서 이곳에 뿌려졌는데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바쁘게 시들어가는 것을 삶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출근해야 한다.

물을 실컷 마시고 햇볕을 실컷 본 화초처럼

반짝이며 하루를, 살아보자.

누군가 배를 내리는 것은 살아보라는 뜻이다.

살아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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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동백꽃향기님의 댓글

profile_image 동백꽃향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녕하세요..오늘 정말 비요일처럼  흐리고  봄비가 아주많이 내렸지요.
봄비처럼 처음 아름다운곳을 방문해 구루 돌아다니는 행복,,감사합니다,모든귀한님들께
많이 배우고 가고싶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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