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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잘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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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23회 작성일 18-06-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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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가 죽었다.

오전반 일을 마치고 너무 피곤해서 큰 아이 차를 타고 왔다.

고양이 난이는 남편의 트럭 소리를 알고, 내가 오후반 일을 마치고 오는

밤 열두 시에 항상 우리의 트럭이 서는 자리까지 나와 있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오늘은 남편의 트럭 소리와 전혀 다른,

아들의 승용차 소리를 마중 나와 있는 것이였다.

물론 다른 고양이들은 나오지 않았다.

아들에게 시원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라고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내가 살림을 살지 않으니 변변히 대접할 것을 찾기도 어려워

냉동실에 있는 오디를 믹서기에 갈아서 한 잔 주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밖에 와 계셨다.  시어머니도 나도, 큰 아이 때문에 당황해서

시어머니는 밀고 오시던 시장 바구니를 돌려 나가시려 하고, 나는

"어머니! 오셨어요?" 하며 일부러 인사를 건내고 이이를 불러 인사를 시켰다.

"어머니, 제 큰 아이 입니다.  00아 인사 드려라. 00삼촌 어머니시다."

아이는 오디 쥬스를 먹다 말고 입술이 드라큐라처럼 되어서 입술에 묻은

오디를 닦지도 못하고 인사를 꾸벅하고는

"안녕하세요! 엄마,,나 간다. 더운데 쉬시고 가세요!"하고 급히 집을 나섰다.

그때 난이의 발작이 시작 되었다. 입에 거품을 물고 토하며 바닥에 뒹굴었다.

결국은 댓돌 바로 밑에 오줌을 싸더니, 플러그를 뽑은 진공청소기처럼

잠잠해졌다. " 그냥 아프지 말고 놀다 가지"어머니가 고양이들이 뜯어놓은

방충망을, 문을 거의 여닫지 않는 쪽의 방충망과 바꿔달며 쯧쯧, 혀를 차셨다.

작년엔 깻잎 물결이 출렁이던 우리집 마루앞 공터에 올해는 새 집이 한 채 들어섰고,

작년엔 메롱고를 묻었던 그 공터 흙에 올해는 그렇게나 아팠던 난이를 묻었다.

난이는 아직 따뜻했고,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우리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내 잘못을 다시 돌아보지 않을 줄 안다. 내 잘못을 다시 돌아보지 않을 때

내가 얼마나 미친듯 아플지 무섭다. 어머니가 삽으로 난이의 몸에 흙을 끼얹었다.

새끼들은 어미가 죽거나 말거나 햇빛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밥만 주는 거라 생각 했다. 밥을 주는 일이 정을 주는 일이라니, 정을 주는 일은, 정으로 내 가슴을 쪼개는 일이라니,

호프집에서 마치고 돌아오는 열 두시에 그 아픈 몸을 이끌고 항상 우리 트럭이 멈추는 자리에 앉아있던

난이의 모습이 이렇게도 내게 큰 위안이였는지 몰랐다.

손님들이 먹다 남긴 안주들을 씹어서 뱉어주며 새끼 고양이들이 난이의 음식을 뺏아먹지 못하도록 지키고

앉아 달과 별과 어둠을 바라보며 내가 얼마나 깊이 쉬었던가를 몰랐다.

미안하다. 숨이 컥컥 넘어가는 너를 치료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씹어주는 음식도 삼키지 못해서 다시 토하는 너를 치료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수의사가 권하는 어린이용 감기약이 네게 해로운지 이로운지도 모르면서

너의 목을 잡고 억지로 먹여서 미안하다.

오늘도 호프집에서 가져온 안주들을, 네가 없는데, 네가 없는 것 따윈 아무일도 아닌것처럼

남은 고양이들에게 먹여서 미안하다.

 

어머니가 내가 잠든 동안 난이가 겨울을 났던 이불과 방석을 버렸다.

빈 요구르트 박스가 알몸처럼 드러나있고, 새끼들도 보이지를 않았다.

횟집 사장에게서 여러 통의 전화가 왔으나 수신 거부를 해두었다.

내가 사랑하는 생명체를 아프게 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만나려고 했으면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럴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내가 그러지 않을거라 처음부터 결심했기 때문에 끝내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퇴근을 해오니,

요구르트 박스에 새로운 이불이 깔려 있었다.

난이의 냄새가 베이지 않은, 새로운, 깨끗한.

난 깨끗한 것이 싫을 때가 많다.

누군가를 지운, 깨끗한, 누군가를 떠나보낸 깨끗한,

얼룩과 땀냄새와 토물, 너, 너의 살아있던 기록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잘가라, 난이야..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

치료해주지 못해서 내가 정말 잘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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