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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한 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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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40회 작성일 18-06-22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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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보내준 책을 읽었는데 아버지 간병과 외손자 친손자 수발에 지질대로 지친 엄마가 동네 의원에 가서

링거 한대 맞은 것처럼 기운을 차린다. 쓴다는 것, 그것이 시든지 수필이나 편지나 간에 어디론가로 향하는 영혼의 통로라는 생각이든다.

영혼은 그리로 다니는 것이다. 그나저나 카톡에서 사라져서 그가 어디로 간 것일까? 전화 번호가 바뀐 것일까?

그러나 찾지도 묻지도 않기로 한다. 아침 출근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내가 요즘 병적으로 집착해서 입는 흰 옷에

초록색 얼룩이 하나 생긴 것이다. 푸른 것이라곤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어디서 튀였는지 흰 티셔츠 아래 입은

백골처럼 하얀 바지에 생긴 점 하나에 내 주의의 빨려들어갔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무슨 국물이 튀인

것이 아니라 초록색 벌레였다. 물방울이 튀인듯 등이 반질반질한 벌레였다. 그런데 나는 순간 왜 그랬을까?  횡단보도를

다 건너서 벌레를 털면 맥문동 군락이 있는 화단에 벌레가 떨어져서 어떻게든 살아갈텐데, 차들이 씽씽 다니는 횡단보도

한가운데에서 벌레를 털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의 내가 무서워졌다. 왜 그렇게 무신경하고 무감각해지고 만것일까?

한 때는 내리는 빗줄기 한가닥 한가닥에 내 신경이 연결 되어 있었다. 지쳐 누운 벤치 위로 우거진 나무 그늘이 아코디언처럼 연주하는

햇살 덩이에서 음악이 들렸다. 내가 벌떡 일어서면 물고기 한마리가

물 위로 튀어 오른 호수처럼 나를 에워싼 투명한 유선의 물결이 일렁이고 나 또한 나부끼는 나뭇잎의 일렁임을 따라

일렁이고 출렁이는 것이라 생각했다. 파리도 모기도 지네도 쉰발이도 바퀴벌레도 죽어도 되는 것은 없었고, 죽여야 하는

모순 때문에 사는일이 달팽이관이 부서진 것 같지 않았던가? 지리산 계곡물에서 이틀 밤낮으로 잡은 다슬기를 가지고 오는 것이 죄스러워서

다시 패트병 표면에 아이슈비츠로 가는 열차에 탄 유대인처럼 매달린 다슬기들을 다 쏟아놓고 오지 않았던가? 닭도 먹었고

소도 먹었지만 늘 죄송했고 내 식탐이 더럽고 구역질나게 느껴지지 않았던가? 그 흰 섬유를 계속 희게 한다는 것이 초록색

생명 한 방울보다 더 유의미한 일이였던가?

 

오전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가에 한참이던 산딸기가 다 졌다. 그 밭의 주인 할머니가 너무 늙어 일부는 따고, 길가의 것은

내가 따먹어주지 않으면 저절로 떨어져 개미밥이 되고 있다. 논의 벼들은 논물에 고인 구름을 빨아먹고 자라서 속이 하얀 열매를 낸다

도라지 밭의 도라지 꽃을 보면 꽃을 오려낸 꽃 종이가 어딘가에 흩어져 있는 것 같다. 산에서 내려온 산비둘기의 주둥이가 호미처럼

땅을 파고 무엇을 캐는지 모르겠다. 식물들은 평생 땅을 책상 삼아 우주와 네트워크를 즐기는 것 같다. 캐낸 감자들은 골방에 쳐박혀서

게임만 했는지 하나 같이 얼굴이 멀겋다. 개미 한 마리도, 흙 한 톨도 모두 열려 있고 연결 되어 있다. 욕심은 신이 선물한 결핍이다. 세계와 우주의 풍요에 매몰 되지 않게 아무리 채워도 남는 곳간 하나를 우리들 마음속에 지어 놓으신 것이다. 문제는 우리들 자신을 그 곳간속에 가두어 버린다는 것이다. 우린 곳간에 갇힌 쥐처럼 그 안의 것을 파먹으며 욕심의 바깥과 단절 되어 있는 것이다. 적금 칠십만원과

보험료 이십만원과 카드비, 또 남편에게 주는 생활비 백만원, 난 욕심의 곡간이 무너지지 않게 욕심의 내면을 지키느라 스스로 문을 닫았다. 이년 약정의 욕십을 부리고 있다.  이년만 딱 다니고 적금을 타면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내 평생 견뎌본 적 없는 시간을 견디며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싶다. 욕심이라는 곳간에 갇혀서 좋은 점도 많다. 삶이 단순해진다. 주변이 정리 된다. 정말 꼭 필요한 것만 사고, 하고, 먹고 사니까 생활의 라인이 살아난다. 날아다니는 종이에 작은 돌을 얹은 것 같다. 같은 자리에 오래 서성이며 보게 되는 것도 시가 될것이다. 오래 들여다보아서 오래 퇴고한 시처럼 다작이 아니라 수작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가진다. 그래, 그대도 가라. 나를 시인이라고

부르는 이가 아무도 없는 세상을 견디는 것이다. 그래서 천번이고 만번이고 내가 나를 시인이라 부르며 내게서 확고부동해지는 것이다.

"나는 시인도 아니고 뭣도 아닙니다." 그가 나를 시인이라고 불러주기를 바래서 나는 나를 부정한 것이였다. 시인도 아니고 뭣도 아닌 자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오십, 한 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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