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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집 아줌마의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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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1회 작성일 18-06-2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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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 집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분무기로 소주를 뿌려 탁자를 닦는다. 내가 하는 일이라 그런지 손님이

와서 탁자나 수저 유리 컵에 손이 닿으면 내 피부에 닿는 것 같다. 끈적끈적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세제를 묻힌 수세미로 닦아 마른 수건으로 다시 닦기도 하고, 뜨거운 물로 닦기도 한다. 손님이

식탁이나 테이블 냅킨통을 불결하게 느끼면 나를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 마음이 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 세개의 크고 작은 탁자를 닦고, 기본 안주로 나가는 당근을 썰고, 멸치 똥을 따고 있는데

도어 벨이 딸랑거리며 문이 열렸다. 키가 작고 몸빼 같은 바지를 입고, 파지를 줍다 온 그리 늙지 않은

할머니 행색을 한 여자가 들어왔다. 부랴부랴 멸치를 뒤로 밀어 두고 기본 상을 차리려니 사장이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저 여자가 땅콩이야. 진호 오빠 따라다닌다는..."

정말 솔직해도 된다면, 땅콩이라는 별명은 그녀에게 아깝다. 땅콩은 뭔가 유쾌하고 발랄한 느낌이 들지만

그녀는 그녀라고 칭하기에 너무나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이가 육십이라는 그녀는 쌀집 사장이라고

했다. 남편도 장성한 아이들도 셋이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남자 주머니 돈은 보는 놈이 임자라는 진호라는

하루 일당 벌어 술값으로 다 쓴다는 노가다 아저씨를 사랑해서 술 사주고 밥 사주고 옷 사주고, 죽자 사자

따라 다닌다고 했다. 그런데 진호 아저씨는 술이 취하면 입과 눈이 돌아가고,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아 대는

소 혓바닥(내가 지은 별명이다)을 좋아한다고 했다. 세상 남자들이 다 죽어버리고, 진호 오빠 혼자만 남는다해도

나는 않한다.하고 술만 취하면 선언하고, 진호 아저씨에게 호통만 치다가 술자리를 끝내는 그녀를, 쌀집 아줌마가

명을 떼놓고 따라다니는 진호 아저씨는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호프집에서는 초저녁인 그 시간에 누구를

만나기로 했다면서 온 것은 진호 아저씨가 늘 간다는 싸구려 소줏집에 진호 아저씨가 몇일째 오지 않아서

혹시 진호 아저씨가 이리로 오나 싶어 염탐하러 왔다는 것이다. 아들이 시의원에 출마 했던 고지식한 사장 언니는

"미친년이 따로 없어. 한 동네에 쌀집을 하고, 버젓이 서방이 있고, 딸년이 셋이나 있다는 년이, 넘의 남자

따라 댕기면서 돈을 펑펑 쓰대고"라며 혀가 입천정에 달라붙도록 혀를 찼다. 나도 먼저 장님이 아니라면

거들떠볼 건덕지가 없는 그녀의 행색이 거슬려서 한마디 답을 했다. " 언니, 참..남자 한테 갖다 바치는 돈 갖고

지 옷이나 한 벌 변변한거 사 입지..남자라는 동물은 눈으로 보고 그시기로 반응하는 긴데...저래 갖고는

집을 한 채 사다 바쳐도 눈도 깜짝 몬하것다" "아이구 미친년! 쯧쯧" 여자장이 다시 한번 그녀가 미친년이라고

못을 박듯 혀를 차는데, 문득,

 

그래! 원래 사랑은 미치는거지. 이래 저래 비정상적이고 미친 증상이 없다면 자신의 사랑을 의심 해보아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고 달고,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 내 위치가 보이고, 내 모양새가 보인다면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이다. 미친년이 되고 미친놈이 되는 것이 사랑아닌가? 자신의 옷은 구제 옷가게에 팔려고

한 가마니 리어카에 실은 것 중 한 벌 걸친 것처럼 입고도 사랑하는 남자 옷은 한 벌 사오십만원짜리 아웃도어를

사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고, 사람들의 손가락질하는 손가락을 온 몸에 꽂고 고슴도치가 되어도 스스로도

어쩔수 없는 중력에 이끌려  자석을 향해 딸려가는 쇳가루처럼 마음의 알갱이들이 스스스 몰려 가는 것이

사랑이고, 오십살이거나 백살이거나, 상대방을 쳐다보느라 거울도 한 번 볼 수 없는 것이 사랑이고, 큰 별의

중력에 이끌린 작은 별처럼 빨려들어가서 산산조각이 나도 어쩔수 없는 것이 아니던가? 누가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고가 무슨 상관인가? 남자를 기회나 돈으로 여기고 사랑의 무늬만 보여주며 목적을 달성하는

여자들이 부지기수고, 세상이 두려워 사랑 한 번 못해보고 늙어 죽는 여자들도 부지기수인데, 파지 줍는 할머니

같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어쨌거나 무작정 들이댈 수 있는 그녀의 용기가 부러웠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자주 그렇게 사랑을 하며 이 별을 건너고 저 별을 건너 이 시간까지 온것 같다. 사랑 할 때마다

아프고 버려지고 자존심이나 마음이나 무엇이나 상하고 뭉개졌지만, 지나고 보니 모두 영혼의 성장통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전에 어떤 미용실 언니가 말했다. 혼자 사는 아가씨였던 그녀는

"나는 자주 사랑하는 사람을 바꿔. 사랑할 때마다 긴장하고 속이나 겉이나 아름답고 예쁘지려고 노력하게 되고

가슴이 설레이는 상태가 지속 되니까 덜 늙는 것 같아" 사실 그녀는 덜 늙어보였었다. 나는 이제 용감해지지를 않는다.

어쩌면 지금의 이 사람과 계속 살아가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무모한 용기인지도 모른다. 쌀집 아줌마 같은

열정도 오래 타면, 데이지도 춥지도 않은 딱 좋은 온기가 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쌀집 아줌마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이루어진다는 것이 결혼인지, 그저 그의 마음이 내 마음 같아지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둘다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쌀집 아줌마는 혀를 끌끌차는 미친년이 아닌 그 어떤, 그 또래 여자들보다 뜨겁게 살아 있다. 타는 것은 빛을 낸다.

재가 되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랴. 미쳐서 살던 멀쩡하게 살던 삶이라는 불은 언젠가는 꺼진다.

 

나는 중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한 중력을 가진 여성들을 부러워했고, 지금도 부럽다.

사랑은 늘 나를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어

그 부족함을 보충하려고 발레리나처럼 발을 돋우고 날아오르는 자세로

나를 살게 했던 것 같다. 사랑 때문에 읽었던 책, 사랑 때문에 들었던 음악,

사랑 때문에 썼던 시, 사랑 때문에 보았던 그림, 사랑 때문에 했던 여행,

사랑을 하면 사랑을 하는 그 사람은 늘 높고 손닿을 수 없는 고귀함을 지닌 것 같아

그에게 도달하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사랑했던 계동 양아치도, 발이 썩어들어가던

당뇨병 영감도, 감옥을 들락거리던 상건달과, 선생과 문청,들은 각각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같은 한 존재였다는 생각도 든다. 세균이 생긴다고 식칼을 냉장고에 보관하던

계동 양아치는 내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싫다고, 냉장고에서 칼을 꺼내어

꺼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내가 그가 아닌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재수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것은 무당이 벽에 걸린 동자나 장군의

울긋불긋한 그림을 보는 그런 눈빛이였다. 나의 난잡한 전전을 신비한 것으로

포장할 생각은 없다. 실제의 그가 아니라 내가 보고 싶어 했던 그를 본 것은

사실이다.  실재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남편인 것 같다. 그에게는 아무 환상도

덧 입히지 않고, 나 자신에게도 그에게 보이기 위한 어떤 환상도 주문하지 않는다.

환타지가 없는 사랑은 탄산이 없는 음료처럼 두껑을 따고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다.

 

쌀집 아줌마를 본다. 내가 듣고 보고 알고 있는 모든 사랑의 불을 끄고 보면

분명 아름답게 타고 있는, 그녀의 사랑의 빛이 보일 것이다. 파지 줍는 할머니 같은 행색으로

사랑이 성령처럼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환하게 밝힌 등 같은 그녀가 보일 것이다.

사랑이 사람을 미친년이나 미친놈으로 만드는 것은

사랑은 내안에 귀속된 어떤 에너지 중의 하나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생명체가 따로 존재해서 사랑이 사람의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이간하고 증오하며 사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육십이 넘은 그녀의 사랑이 성욕의 우회로 일까?

쌀집 아줌마의 사랑이 정미기로 뉘와 돌을 잘 걸러낸 정미라는 확신이 든다.

지구에 남자가 다 죽고 진호 아저씨 혼자만 남아도 않하겠다는 마음보다

지구에 아무리 남자가 차고 넘쳐도 진호 아저씨 혼자만 좋다는 마음이 이기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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