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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반, 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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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07회 작성일 18-07-1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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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오후반 쉬는 날, 오늘은 오전반 쉬는 날이다.

어제는 남편의 엄마를 모시고 장어를 먹으러 갔고

시어머니를 댁에 모셔다 드리고, 시어머니의 아들만

꼬셔서 코인 노래방에 갔다. 노래방에서 목포의 눈물을

목 놓아 부르지 않으면 안토도 없는 찐빵을 먹은 것 같다

한 집에 거처하는 남자라 할지라도 유혹하려고

작정을 하면 가슴이 설레인다. 내가 그를 새 남자 보듯

보려고 하니 눈빛부터 달라지고 애교도 떨고,

스킨 쉽도 한다. 그 또한 내가 새 여자처럼 보이는지

집으로 걸어오다 괜히 자신의 손바닥 안에 내 손을

집어넣어보다, 떡대 같은 내 어깨가 작게 보이는지

슬그머니 어깨를 팔로 감싸기도 한다. 처음 사 들고간

캔 맥주 두 개 중 하나를 반쯤 마시다 청소하는 아줌마

에게 압수 당하고, 홧김에 마트에 가서 소주를 한 병

더 사와서 가방에 숨겨 놓고 안주도 없이 둘이 한 모금씩

돌아가며 마셨다. 그는 내가 목포의 눈물을 부르듯

이차선 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이차선 다리를 목이 터져라

부른다. 뒤에서 껴안아 보니 땀냄새가 옅게 베인 살냄새가

싱그러웠다. 맘껏 껴안아도 죄가 되지 않는 남자를 가져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술이 뇌의 어느 부위에 침투 했는지

술만 취하면 바다가 있는 마을로 무작정 떠날 것이니

아파하지 말라는 말을 하다 잠이든 것 같다. 하도 자주

그말을 되풀이 해서 남편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오전반 쉬는 날인 오늘은 피시방에 갔다. 뭘 쓴다고 끼적거리다

커피와 핫식스에 독이 오르듯 각성만 되어 거리로 쏟아졌다.

갓길에 줄을선 차창마다 큰 은빛 밤송이들을 한 덩이씩 던져

놓고도 태양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어제 오전반 식당에서

담아 놓은 매실은 설탕을 눈처럼 맞고 저 햇빛의 달콤함을 잊어

갈 것이다. 제법 볼이 붉은 매실들이 할머니처럼 쭈글어 들어야

할머니 무릎에 누워 옛날 이야기를 듣는 어린날의 졸음 같은

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엊그제는 매실 원액을 뜨내며 쭈글쭈글

쪼그라든 매실 한 알을 씹어 보았다. 우리의 노년도 뭔가

우려 줄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될수록

깊은 맛이 나는 매실이 부러웠다.  탱탱한 청춘의 시들을

흉내 낼 것도 없이 쭈글탕 주름 사이에서 흘러나온 시를 쓰야겠다.

배가 아픈 날은 원액으로 마셔도 좋고,

더운 날에는 얼음을 띄워서 희석 시켜 마셔도 좋고

배가 고플때는 매실 짱아찌도 좋고

배가 부를때는 후식으로도 좋은 시를 썼으면 좋겠다.

내 허리까지 오는 매실 담은 통을 화장실에 두자고

오전반 사장이 말했고, 나는 밝은 해의 기운이 깃들어야

건강하게 삭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니는 내 의견을

따라 주었다. 이 매실을 뜨게 될 때까지 나도 하루 하루

숙성 되어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년 쯤엔 나도 차가 되거나 음식에 들어가는 액이 되거나

배앓이에 듣는 약이 되어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칠월의 햇볕은 짱짱해서 좋다. 추위속의 따뜻함이야 더할나위가

없지만 때론 더위속의 따뜻함도 잘 마른 빨래처럼 촉감이 좋다.

햇볕에 내어넌 일불이 앞뒤로 흔들리듯, 일부러 느리게 느리게 걸어서 집으로 왔다.

일하러 나서는 남편을 붙들어서, 덥다, 그냥 오늘은

내랑 놀자고 했다. 착한 그에게 이런 내가 될 수 있어서

가끔은 내가 좋다.

 

너무 더위서 발목까지 덮는 흰 바지를 가위로 잘라 칠부로 만들었다.

딱딱하게 잘린 끝이 보기 싫어 손톱으로 아무리 뜯어도

풀리지 않던 올이 세탁기에 한 번 돌리니 옷집에 파는 옷처럼

보기 좋게 풀어져서 늘어졌다. 시도 이렇게 풀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시가 풀리는 날엔 온 세상에 막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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