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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소하는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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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8회 작성일 18-07-26 09:29

본문

이 폭염이 오전반에는 재앙이고 오후반에는 축복이다.

손님이 겨우 서너 테이블 들어오는 오전반은 덥다.

손님이 없으면 에어컨을 켜지 않기 때문이다.

손님이 미어터져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오후반은

추울 지경이다. 많이 움직이면 몸만 축나는 것이 아니라

정신도 축나는 것 같다.

 

노회찬 정의당 당 대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나는

눈사람 친구와 오전반 일을 하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오후반 일을 마칠 때까지 마시고, 저승 입구까지 그를

배웅하기라도 하듯 빌빌 기어다니며 그 다음날을 보냈다.

술을 끊어야 겠다는 결심은 늘 세상의 바램으로 인해 깨진다.

술을 줄여야 겠다는 결심은 하지 않는다.

술을 마셔본 사람은 안다.  첫 잔을 마신다는 것은 온 몸에 장착된

음주의 회로에 스위치를 누르는 것과 같다. 술을 줄일 수 있는

지경은 한참 지나버린 것 같다. 끊지 않으면 멀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온 몸이 부서질 것 같다.

그러나 참회처럼 점점 기분이 개운해진다.

돌아보면 잘못 밖에 없는 것 같다.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땀과 뼈와 살이

내 죄라고 여긴다.

 

내가 일하는, 오후반 바로 옆집 고깃집 사장이

가끔 술을 마시러 온다.  나와 그는 잘 알지만

서로 전혀 모르는체 한다. 내가 시를 만나기 전에

그를 만났다. 시를 만난 이후로도 줄곧 내 삶은

부끄러움을 되풀이 했지만, 시를 만나기 전엔

그것이 부끄러운지도 몰랐다. 가끔 인사라도 건내볼까

생각하다, 눈빛을 걸어 잠근다. 그 때의 나를 살균처리

하듯, 자외선의 눈빛을 한다.

"술은 뭘로 드시겠습니까? 돈가스는 맵게 해드릴까요?"

주문을 받으면서, 텅빈 눈빛으로 그를 본다.

"아! 참이슬하고,  맵지 않게요"

그 또한 텅 빈 눈빛으로 대답을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연을 다 살아버린 것이다.

다행히도 그의 눈빛에서도 내가 너를 좀 안다는 것 같은

기름진 야비함은 읽히지 않는다.

"잘 살지? 여복 있네..아내가 참 이쁘네"

인사 정도는 건내도 될 것 같은데

한 번 떠나온 별은 참 멀다.

나는 오늘도 그가 운영하는 식당 앞에서

남편이 태워주는 트럭에서 내릴 것이다.

나는 발레리나처럼, 윗쪽에서 살짝 내 몸 전체가

끌어올려지는 느낌으로 걷는다. 내가 그를 보지

않고 걷듯, 그 역시도 나를 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그와 나는 같은 시공에서 옷깃도 스치지 않으며 서로의

죽음을 향해 당겨져 갈 것이다.

 

옛날의 내가 누구였던가, 나는 모른다.

지금의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사 든지 몇 년 만에 작정하고

버릴 것 다 버리고, 분류하고 정리하고 정돈하고

온 종일 대청소를 하는 기분으로 살고 싶다.

새로 싹 치운 집에 대자리를 펴고, 두 다리 쭉 뻗고

한 숨 푹 자는 것만이 작은 소망인 오십대를 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삼천배 절을 하듯 바닥을 기며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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