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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기브엔 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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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46회 작성일 18-07-29 17:05

본문

폭염에 벌겋게 달궈진 달이 화독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것을 보았다

잠깐 뺨을 한대 후려 갈기듯 소낙비가 다녀가긴 했으나

끓는 물에 데쳐진듯, 세상은 더 시들었다.

 

엊그제 카드로 백만원을 긁어 주었는데

뒷 타이어를 갈아야 한다며 또 십만원을 달라하더니

날마다 만원 이만원 손을 내미는 큰 아이 때문에

폭염의 체감 온도는 그 돈의 액수만큼 올라간다.

아들에게 매미보다 더 소리를 질러대며 잔소리를 하고

집구석에 들어와보니, 웃통을 벗고, 드러누운

36.5도의 난로가 또 하나 켜져 있다. 겨울에는 추위가

핑계가 되더니, 지금은 더위가 핑계다. 겨울에는

춥다며, 오늘은 그냥 쉬어라, 지금은 이 더위에 어디를

돌아다니겠나, 오늘은 그냥 집에 있어라는 내가,

그래도 어려우면 남한테 폐 끼치는 것보다 엄마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낫지 않겠냐? 혼자 끙끙앓지 말고

항상 엄마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한 내가

가장 근본적인 난로다.  어쨌거나 덥다. 나를 꺼버리면

세상이 시원해질 것 같다.

 

요즘엔 새들과 곤충들도 허수아비에게 속지 않는지

길다란 장대에 매달린 비닐 독수리들이 들판을 지킨다.

다른 날은 비닐 독수리들도 더위를 먹고 장대에 매달려

축 쳐져 있더니, 오늘은 제법 높이 비행을 하며 제 구실을

하고 있다. 저 가짜가 나라는 생각이 든다.

장대에 묶여 있어 날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 비닐이여서 날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나마 장대에 묶여 있을 때는 바람이 불면 날아오르는

시늉이라도 하지만 끈을 끊어 버리면 비료 포대와

아이스바 껍데기들과 함께 바닥에 떨어져 흙에 묻히는 것이다.

자신의 둘레라도 지키고 살라고 만들어 놓은 것인데

자신이 독수리인줄 알고 사방을 설치는 것이, 영락없다.

 

오전반 일을 하고 있는데 백안의 청년이 큰 가방을 어깨에 매고

들어왔다. "잇모님! 모두 쑤짝업 한건데 하나 사세요. 저는

러씨아에서 공부하러 온 학쌩입니다. 학비를 벌려고 왔어요"

그가 마지막 인형이 물 한 방울처럼 작아질 때까지

양파처럼 인형을 까내며 말했다. 사만원이라고 말했다.

사주고 싶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은 만원밖에 없었다.

도리질을 쳤더니, 이번엔 나무로 깍은 볼펜과 열쇠 고리를 내밀었다.

아예 필요 없거나 굳이 필요 없는 것들이였다. 돈이 없어 사 줄 수

없으니 물이나 한 잔 먹고 가라고 했다. 그가 우거지 된장탕을 시켜

먹었다. "내가 볼펜이나 열쇠 고리는 다 있어서 사줄 수는 없고,

밥값을 내줄께요. 날도 더운데 먹고, 많이 팔아요"

댓가를 바라면 나쁘겠지만 내 아들도 저렇게 낯선 이국땅을

서툰 말을 하며 떠돌 때 누군가 물 한 잔, 밥 한그릇을 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지갑에 호신용으로 넣어다니는 만원을 이국 유학생의 밥값으로 내었다.

요구르트 장사를 할 때 치매 걸린 전직 교장 선생님이 집 열쇠가 없어 비를 맞고

있을 때도, 치매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길을 잃고 헤매일 때 누군가 우산을 씌워주고

파출소까지 모셔다 드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기브 엔 테이크는 이런 것이다.

받은만큼 주는 것이 아니라

받고 싶은 것을 먼저 주는 것이다.

속기 싫으면 속이지 말아야 하고

용서 받고 싶으면 용서 해야하고

사랑 받고 싶으면 사랑해야 한다.

서로 웃고 싶으면 내가 웃어야 한다.

 

창문을 열면 산의 밑동이 보이는 우리 집은

마치 숲의 치마밑을 보는 것 같다. 언뜻 언뜻

수풀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거웃처럼 보인다

그래도 나는 산을 큰 바구니처럼 엎어놓고 살지만

우리 마당의 고양이 새끼는 담장 대신 키워놓은

단풍나무 밑에 버려진 상자를 지붕 삼아

이 더위에도 한겨울처럼 오글오글 몸 붙이고 산다.

어깨가 축 쳐진 뿔 기와 위로 구슬치기를 하듯

낙과를 굴려대는 감나무만 새 기와처럼 잎을 반들거리는,

밤이면 큰 방 작은 방, 마루의 불빛 조차 서로 기대지 않고는

남루한 어둠을 부축하지 못하는 우리집 앞에

논 서너마지기를 가득 메워 만든 새 집이 한 채 들어섰다.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굳이 부러워하지 않는다.

새집을 지을 수 없어서, 그기 있던 누군가의 집들을 허물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 굴에 한 부족이 모여살 개미집 부터

억수 같이 비가 쏟아지는 날만 외출하는 두꺼비의 집과, 들쥐들과

무수한 식구들의 삶터가 달랑 한 식구의 삶터가 되느라 철거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집은 그 낡은 틈새에 고양이들과 지네들과 쥐며느리와

개미들의 가정을 거느리고 살지 않는가,

가끔 두꺼비가 마당으로 기어나와 방울 토마토 화분 사이에서

눈을 껌뻑이고 있으면 혹시 고양이가 잡아서 쥐처럼 가지고 놀까봐

고양이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먹이를 주기도 한다.

인류가 멸종에 이르러 땅굴을 파고 살게 된다면

들개나, 독사에게 구하게 될 관용을 베푸는데 본능만 있으면 되는

내 특이 체질에 감사하는 순간이다. 고양이도 두꺼비도 아주 오랫동안

정물의 자세를 취할 수 있는 동물들이다. 여름 내내 겨울 내내

정물의 자세를 취할 수 있는 동안은 사람도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목숨들이다.

 

저급한 가난은 경멸스럽지만

고급진 가난은 존경스럽다.

필수가 아니라

사치가 되는 가난을 우리는 살수 있다.

소로우와 법정과 옛 정승의 가난을

소유하는 것이 무소유 같다.

꼭 필요도 없는 목걸이처럼

귀걸이, 반지, 한 권의 시집처럼

가난할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쌀이 떨어지면 한 끼니 굶고

돈 없으면 도서관에 가서 책이나 빌려 읽고

술 없으면 몇 일 일해서 술값이라도 벌고

뭐라도 있는 집에 사람 끓는다는데

가운데 토막도 없으니 도둑이라도

사람처럼 들었으면 좋겠다 하며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는 것이다.

요즘 왠만해선 굶어죽을 자유가 없다.

김에 간장 발라 한 공기 뚝딱 비우지 않고

반찬 가짓수 늘리고, 종류 바꾸면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마티즈 모닝 타지 않고 외제차 타는 것이

삶의 윤택이라고 누가 그러던가?

부질없고, 몇년만 지나면 퇴색하는 풍요의 가치에

복역하지 않으면 사람은 절로 부티가 난다.

뭘 먹거나 입거나 바르거나 개의치 않으면

절로 여유가 생기고, 흉내낼 수 없는 수수의 빛이 난다

요즘 여자들은 서너벌 이상의 야상을 가지고 있다.

이전에 군에서 입던 옷의 변형이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식과 선만을 남긴

생존의복이 사치품이 된 것이다.

절실한 것은 거짓이 없다. 거짓이 없는 것에서는

참된 멋이난다. 부러워하면 진다는 말이 속된 유행어가 아니다.

부러움이 사라지면 발이 제가 선 자리에 차분히 밀착되고

서성이지 않고 헤매이지 않고, 가만히 성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부를 팔아 가난을 사려고 줄을 설 것이다.

비싼 돈을 주고 다 찢어진 청바지를 사는 것이 현실 아닌가?

절박함에서 멋을 읽어내는 눈만 있으면

우리들의 가난은 부티가 좔좔 흐르게 되는 것이다.

가난, 너 멋있다.

아무것도 부러워하지 말고 흉내내지 마라

그러면 부가 너를 흉내내고, 따라 다닐 것이다.

 

가난아! 돈독 들지 마라

스텐레스와 바꾸던 방짜 유기의 무게와 빛을 팔지 말자.

너는 무엇이라도 줄 수 있다.

너의 기브엔 테이크가 자본에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는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다.

사람에게 정작 필요한 그 모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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