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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닥해지는 발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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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16회 작성일 18-08-11 17:34

본문

갑자기 번호가 사라진 시인에게서 메일이 왔다

죽었냐는 질문에

빨리 전화 번호를 가르켜 주지 않으면 죽을거라고 답이 왔다.

휴대폰을 잃어버렸던 모양이다.

더울텐데 건강이 걱정이다.

살아서 다시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편은 머리를 빡빡 밀었다.

날씨가 너무 더웠던지

땀방울처럼 머리를 밀었다.

이전부터 마음이 편치 않으면

그런 버릇이 있었는데

또 무슨 편치 않음이 있었는지

걱정이다.

 

이제 덕구(새끼를 낳고 나서

젖을 먹이더니 배가 고파 허덕허덕해서

이름을 덕구라고 지어 주었다)의 아기들은

내 퇴근길의 어미 남매들처럼 제법 겅중겅중

마당을 가로질러 다닌다. 어미 남매들과

아빠뻘 되는 노랑이가 밥을 먹으면 그 사이로

끼어들어 함께 먹기도 한다.

아마도 죽은 이방이의 아이인듯한 금눈이(눈이

금색이라서 금눈이다)는 욕실 지붕과 천정 사이에서

욕실 지붕과 천정이 무너지도록 슬피 울더니

어미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마당으로 내려와

이모와 삼촌들과 밥을 먹고, 이모(덕구)의 젖을 함께

빨아 먹는다. 가만히 남의 아기에게 젖을 내어주는

덕구가 대견하다.  사람보다 낫다.

 

오전반을 그만 두었다.

오후반이 더 수입이 많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켜 주어 시원했기 때문이다.

그만두고 보니 당장 속이 시원하고

또 당장 다음달 살아 갈일이 걱정이라

가장 쉽게 고민할 수 있는 것이

이 재혼의 정리였다. 나 혼자 있으면

이렇게 많이 노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쉬운 결론이 자주 나를 뒤흔든다.

이제 누군가 억센 손으로 내 날개뼈를

꼭 누르고 있는 것처럼 몸이 뻑뻑하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노동을 해야하고

노동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언제나 나를 가로 막는 것은

그가 아니라 마당의 고양이들이다.

내가 없어지면 밥을 얻어먹지 못해

동네 쓰레기 봉투를 찢고 다니다가

성가시다며 동네 어른들이 놓은 쥐약을 먹고

죽은 난이처럼 바닥에서 버둥거리다 거품을

물고 죽는 장면을 떠올리면 나는 아무 말 없이

벼룩시장과 나눔터 교차로를 뽑는다.

어제 가져온 정보신문은, 거리의 정보 신문

통에 갓 배달 된 것이였는데, 갓 구워낸 식빵처럼

따뜻하고 기분 좋은 잉크 냄새가 났다. 이전보다

내용이 빈약해진 구인구직란의 구인 조건들은

늘 그기서 그기였다. 나는 또 얼마나 구인 광고를

접고 정보 신문을 둘둘 말아 베개로 삼고 잠을

자야 구인광고를 보지 않게 되는 것일까? 돈을 받기

위해 인내 하는 온갖 끔찍함으로 부터 일시적으로

피해서 다른 직장에 가면, 또 서너달이 흐르고

나는 날마다 보아야 하는 인간의 흉칙함에 치를 떨며

다시 그만둔다.

 

시를 쓰느라 새벽까지 웅크리고 앉았다 더워서

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 쓰고 잠을 청하면

점점 딱딱해져 가는 발바닥이 종아리에 닿는다

할머니들의 감촉이 느껴진다.

길을 돌이켜야 하는 것인가

이젠 내 발바닥이 길보다 딱딱해졌는데

가던길 그대로 그냥 가자

 

일단 오전반은 쉬자.

머리도 묶이고 꼬리도 묶인 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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